오늘의 역사

8월 31일과 9월 1일의 역사 - 폴란드민주화, 태양대폭풍, 늑대습격, 종부세발표

스마일루 2014. 8. 3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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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흐 바웬사]

레흐 바웬사는 평범한 노동자였지만

폴란드 공산주의 정부를 상대로 하여 노조를 세우고

계속된 탄압에도 끊임없이 저항하여 폴란드의 민주화를 이뤄낸 인물이다.

그의 업적은 폴란드를 넘어 공산주의 블럭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어쩌면 근현대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 링 크 -

 

9월 1일과 2일의 역사

- 간토(관동) 대지진, 국회의사당 준공,

안중근-노무현 탄생, 톨킨-루이14세 사망 등

http://blog.daum.net/smileru/8888331

 

 

 

- 순 서 -

 

155년전, 1859년 9월 1일

- 1859년 태양대폭풍.

엄청난 양의 코로나질량방출이 지구를 덮쳐

사상 최대 규모의 지자기폭풍을 일으키다.


34년전, 1980년 8월 31일

-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Solidarity), 레흐 바웬사 주도로 설립.

 

18년전, 1996년 8월 31일

- 8월 31부터 2주간 인도 비하르 주와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대규모 늑대 습격으로

각각 100명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부상, 6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


11년전, 2003년 9월 1일

- 대한민국 정부,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관련 세법 개정 추진 발표.

 

 

 

 

 

 

 

 

8월 31일과 9월 1일의 역사

Wikipedia

 

 

8월 31일: 말레이시아, 트리니다드 토바고, 키르기스스탄독립기념일

548년 - 백제 사신 약엽례(掠葉禮)가 백제로 귀환함.

1876년 - 압뒬하미트 2세오스만 제국 황제로 즉위하다.

1887년 - 미국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영사기 특허 취득.

1961년 - 소련, 핵실험 재개 선언.

1968년 - 이란 동북부에 대지진, 1만2천여 명 사망.

1971년 - 대한민국 국무회의, 비적성(非敵性) 공산국가와 교역 허용 의결.

1980년 -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Solidarity), 레흐 바웬사 주도로 설립.

1987년 - 대한민국,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8인 정치회담, 직선제 개헌안 협상 타결.

1992년 - 파스칼 리수바콩고 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1993년 - 대한민국 감사원, `평화의 댐' 특별감사 결과 금강산 댐의 수공위협은 과장됐다고 발표.

1996년 - 8월 31부터 2주간 인도 비하르 주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대규모 늑대 습격으로 각각 100명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부상, 6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

1997년 - 영국의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

1998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발사하다.

1998년 -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를 새 총재로 선출.

1999년 - 말레이시아의 초고층 빌딩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준공되다.

2003년 - 대한민국,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현대비자금 200억 수수혐의로 구속기소.

2012년 - 대한민국위성 DMB 서비스 종료.

2013년 - 경부선 대구역에서 열차 3중 충돌사고 발생.

 

 

9월 1일: 슬로바키아제헌절

1449년 - 토목의 변: 명나라 정통제되르벤 오이라트에게 잡혀가다.

1859년 - 1859년 태양대폭풍. 엄청난 양의 코로나질량방출이 지구를 덮쳐 사상 최대 규모의 지자기폭풍을 일으키다.

1914년 - 여행 비둘기가 멸종됨.

1917년 - 제1차 세계 대전동부 전선독일군대독가스를 대량 투입함으로써 러시아 제국군대는 패배하고, 現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를 빼앗겼다.

1923년 - 리히터 규모 7.9의 간토 대지진일본간토 지방을 강타하다.

1939년 - 독일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다.

1946년 -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1952년 - 대한민국, 국군 징병제 실시.

1955년 - 대한민국, 전국 인구조사 사상 첫 실시.

1975년 - 대한민국,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1983년 - 대한항공 007편소련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격추돼 탑승자 269명이 전원 사망하다.

1991년 - 리펑(李鵬) 중국 총리, 소련 공산주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고수 방침 천명.

1996년 -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군함 2척,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부산에 입항.

2003년 - 대한민국 정부,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관련 세법 개정 추진 발표.

2004년 - 러시아 연방 북오세티야공화국에서 베슬란 학교 인질 사태발생. 334명 사망.

 

 

 

   1997년 8월 31일 - 영국의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

 

   참고글 : 7월 28일과 29일의 역사 - 다이애나와 '로열베이비'

 

 

 

 

 

 

 

1859년 9월 1일

- 1859년 태양대폭풍.

엄청난 양의 코로나질량방출이 지구를 덮쳐

사상 최대 규모의 지자기폭풍을 일으키다.

 

 

   1859년 8월 28일부터 9월 2일까지, 영국의 천문학자 리처드 크리스토퍼 캐링턴은 태양에서 유난히 많은 흑점과 함께 태양 대기의 폭발현상인 '플레어'를 관측했다. 그 중에서도 9월 1일, 엄청난 크기의 플레어를 관측했는데, 이 플레어는 똑바로 지구를 향했고, 이는 태양에서 엄청난 양의 입자들을 쏟아내는 '코로나질량방출(Coronal mass ejection, CME)' 현상을 일으켜 그 입자들이 지구로 쏟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코로나질량방출 현상이 꼭 플레어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보통 일반적인 코로나질량방출현상은 3, 4일 정도만에 지구에 도착한다고 한다. 그런데 1859년 9월 1일의 CME는 17시간만에 지구에 도착하게 된다. 그만큼 강력하게, 정확히 지구를 향하여 입자들이 방출된 것이다. (동시에 9월 1일 전의 폭발 현상들이 주위의 플라스마들을 정리했기 때문이라고...) (위의 이미지는 캐링턴이 당시 스케치한 흑점)

 

   그 결과 9월 1일부터 2일까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자기 폭풍(지구 자기장이 요동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추운 고위도 지방에서만 겨우 볼 수 있는 오로라가 하와이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관측되기 시작했다. 미국 로키 산맥에서는 오로라가 너무 밝아서 광부들이 아침인줄 알고 아침식사를 준비하기까지도 했다고 한다. 신문도 볼 수 있었다고. 서양의 전신시스템(마르코니가 무선 통신을 발명하기 전이니 유선 통신이었다)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장비를 다루던 전신기사는 전기충격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신주에서 불꽃이 튀었고, 나침반들은 요동쳤으며, 어떤 전신 시스템은 전원이 끊어졌는데도 작동이 되었다고 한다. (안테나로 유입된 전류가 너무 컸던것 같다. 오늘날의 무선충전기술과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 듯)

 

   실로 엄청난 태양대폭발의 결과는 빙하에도 흔적을 남겨, 훗날 질산염 및 베릴륨이 그린란드의 빙하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태양대폭발을 확인할 수 있음을 알게된 과학자들은 더 깊은 곳의 빙하도 시추하여 확인해 보았는데, 이러한 태양대폭발은 500년에 한번정도 발생하는 것이었다고... 아무튼 이 '어마무시'했던 사건, 오늘날 천문학자 캐링턴의 이름을 따 '캐링턴 이벤트'라고 부르고 있다.

 

 

 

  

 

 

 

1980년 8월 31일

-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Solidarity), 레흐 바웬사 주도로 설립.

 

 

   오늘의 역사를 이것저것 살펴보다보니 기대하지 않았던 이 소식이 생각보다 흥미롭더라.

 

   1970년 12월, '12월 사건'이 발생한다. 12월 사건이란 폴란드 정부가 생필품가격을 30%나 한번에 인상하면서 발생했던 소요사태로, 1500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로 인해 조선소에서 일하던 노동자 레흐 바웬사는 노동조합, 즉 노조 결성을 결심한다.

 

   재미있는건, 당시 폴란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것이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사회주의 체제였지만,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별도의 노조같은 단체는 불법이었고(공산주의라는 계획경제체제에서는 당연히 노조는 용인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폴란드의 노동자들은 정부가 정말로 자신들을 위해주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생필품의 가격을 올리기까지 했으니 분노는 폭발할만 했다.

 

   레흐 바웬사는 12월 사건 이후 바로 노조를 설립하고자 했는데, 그러한 움직임 때문에 곧바로 해고됐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노조 설립을 위해 조선소, 정부와 싸웠고, 1980년 8월 14일부터 조선소 노동자들과 파업 투쟁을 시작, 농민들과도 연대하며 규모를 키워가게 된다. 당시 또 다시 시작된 식료품값 인상으로 전국적인 반정부 움직임도 있었는데, 결국 국민적 반발에 직면한 정부는 1980년 8월 31일에 레흐 바웬사가 만든 비공산주의 민주적 노동조합, '연대'(솔리다르노시치)를 승인을 비롯 각종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는 당시 정부의 통제하에 있었던 어용노조들과 구분하여 '자유노조'라고 부른다. (이름 자체가 '자유노조' 그 자체로 불리기도 했다)

 

   '연대'는 비폭력을 추가하며 반공산주의 투쟁을 시작했다. 이는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큰 지지를 받았는데, 그로 인한 폴란드 카톨릭의 지지는 '연대'에 큰 힘이 되었다. 또한 그것이 아니어도 정부에서 독립된 자유노조라는 점 때문에 노동자들의 가입이 물밀듯 이어졌고, 결국 1년만에 노조원수가 900만명, 당시 폴란드 인구(3600만?)의 25%를 넘어서게 됐다.(현재 한국의 민주노총 같은 경우 노조원이 인구의 1%대이다) 그러자 폴란드 정부는 아차 싶었는지, 1년 뒤인 1981년 12월에 계엄령을 내리고 '연대'를 불법화했다. 그리고 지도부 체포작전에 나서 1981년 12월 11일에 레흐 바웬사는 체포되었고 1년간 복역하게 된다. 

 

   하지만 '연대'는 불법으로 선언된 이후에도 지하활동을 계속하며 세력을 유지했다. 아니 오히려 키워갔다. 또한 비폭력적인 투쟁방식으로 인해 1983년 레흐 바웬사는 노동자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후에도 '연대'는 반공산주의 운동을 계속했는데, 1988년에 폴란드에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전국적인 파업 및 반정부 운동이 발생하자 국가 자체를 유지할 수 없게된 폴란드 정부는 레흐 바웬사에게 '원탁회의'를 제안, 파업을 일단 종료시킨다. (왼쪽 사진은 레흐 바웬사의 노벨상을 부인이 대신 받는 장면. 레흐 바웬사는 그대로 추방 당할까봐 폴란드를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1989년 4월, 폴란드 공산당, 정부, 노조, 지식인 대표가 참가한 원탁회의에서 '연대'를 비롯한 자유노조들의 합법화와, 상원의회를 신설하여 자유선거를 하는 것, 하원의회 460석중 35%인 161석을 자유선거하는 것, 대통령직을 설치하는 것등의 합의가 이뤄진다. 리고 그 결과... '연대'가 상원의회 100석 중 99석, 하원의회 자유선거 161석중 161석을 차지하면서 완승을 거두게 된다. 그렇게 민주적인 의회가 도입되었고, 공산당은 몰락했다. 폴란드 3공화국의 시작이었으며 '무혈 민주화' 그 자체였다.

 

   이후 일단은 '연대' 탄압에 앞장섰던 군인출신의 '보이치에르 야루젤스키' 국가평의회 의장이 폴란드 초대 대통령직을 승계하였지만, 그의 더딘 개혁에 반발한 폴란드인들은 그의 퇴진을 압박했고 결국 1년뒤인 1990년 그가 사퇴, 5년 임기의 대통령제가 채택되었고 폴란드 2대 대통령이자 최초의 폴란드 민선 대통령이 탄생하니, 그가 바로 '연대'를 만든 '레흐 바웬사'였다.

 

 

   이 역사, 레흐 바웬사와 자유노조 '연대'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2차세계대전 이후 동유럽과 소련이 채택한 공산주의 균열의 시작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1980년 '연대'의 설립과 합법화 자체가 공산주의 블럭의 큰 충격이었으며, 특히 1989년 4월에 끝내 폴란드가 공산주의 블럭에서 처음으로 민주화되어버린 일은 계획경제에 실패한 공산주의가 국민적 반발을 이겨내지 못함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이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가 독립을 선포했고, 불가리아 공산정권이 무너졌으며, 8월에는 전에 한번 다뤘던 '범유럽 피크닉'이 시작되었고, 10월에는 헝가리 공산정권 붕괴, 11월에는 베를린 장벽 붕괴, 12월에는 루마니아 공산정권 붕괴, 그리고 같은 12월에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 종전 선언으로 이어졌다. 아시다시피 1991년에는 소련이 붕괴했고 말이다.

 

참고글 : 8월 18일과 19일의 역사 - 범유럽 피크닉

 

   뭐 아무튼, 폴란드는 레흐 바웬사를 대통령으로 세웠지만, 다음 선거에서 레흐 바웬사는 재선에 실패했다. 레흐 바웬사를 이기고 폴란드의 대통령이 된 이가 바로 '알렉산드르 크바시니에프스키'인데, 공산당 출신이어서 패배한 레흐 바웬사는 '폴란드를 떠나겠다'라고 선포했을 정도였다고... 그는 레흐 바웬사가 평생을 싸웠던 공산당 출신이긴 했지만, 공산당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공산당 붕괴이후 좌파연합에서 활동했으며, 대통령이 된 후에도 레흐 바웬사의 친서방정책을 이어가 폴란드를 EU와 NATO에 가입시켰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폴란드의 반공산주의 기조는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레흐 바웬사의 유산 그 자체 아닐까?

 

 

 

 

 

 

 

1996년 8월 31일

- 8월 31부터 2주간 인도 비하르 주와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대규모 늑대 습격으로

각각 100명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부상, 6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

 

 

   이건 좀 소식이 특이해서 찾아봤는데, 정말 신기한 사실이 숨어있더라. 일반적으로 야생의 늑대는 인간을 보면 겁을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늑대가 '광견병'에 걸리게 되고 그것이 무리에서 전파되면 인간을 쉽게 공격하게 되는데, 그 때는 보이는 인간을 닥치는 대로 공격한다고 한다.

 

   그런데, 늑대가 사람을 공격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면 양상이 완전히 변하게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있었던 수 많은 사례의 늑대의 인간 공격을 연구한 결과, 결국 원인은 당연하게도 다양한 이유로 인하여 먹이가 부족해질 경우 발생하게 되는데, 그 때 늑대는 성인이 아닌 어린아이, 그것도 여자아이이면서 최대한 어린아이(5세 이하)만을 주로 공격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6년 오늘 발생한 인도 비하르 주와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2주간 발생한 대규모 늑대 습격이다. 내가 자료는 찾지 못했는데,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늑대 습격으로 사망한 60명은 모두 어린이였다고... 위키에 비교적 자세하게 남은 자료는 1993년에서 1995년까지 2년간 이어진 인도 비하르 주의 사례다. (비하르 주는 늑대로부터 자주 공격받는 듯?) 그 때도 60여명의 아이들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당했는데, 오후 5시에서부터 7시까지 집중적으로 공격당했고, 여자가 58%였으며, 89%는 3세 미만의 영아들이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정말 최근의 일이어서 충격적이고, 사건 자체가 참으로 끔찍한 사건이긴 하지만, 이렇게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동물들이 신기하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의 지능이 더 높은 것 아니겠나?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이다. 2000년 들어서는 집단적으로 공격당하는 일은 사라진 듯 한데 아직도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는 있다. 사례들이 정리되어 있으니 아래의 위키도 한번 보시길.

 

참고글 : 늑대의 인간 공격 - Wikipedia

 

 

 

 

 

 

 

2003년 9월 1일

 - 대한민국 정부,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관련 세법 개정 추진 발표.

 

 

   종합부동산세... 한국 조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세제아닐까 싶다.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세제로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여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그 해 9월, 참여정부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추진한다. 간단히 말하면 일정금액이상(6억원)의 주택과 토지, 즉 부동산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었다.

 

   종부세의 추진 목적은 지방재정 균형발전과 부동산 투기 방지('건전한 국민경제 실현')였다. 당시 전국의 집값은 IMF 직후의 1998년 저점에 비해 기본 30%, 강남과 같은 서울의 경우는 40%이상까지 오른 상황이었는데, 특히 2001년부터 그 상승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참여정부 출범 직전 2년간 그만큼의 집값이 오른 상황이라고 보면 되었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종부세는 '고졸 대통령의 부자들 골탕먹이기'라는식의 정치적 프레임 공격을 당했다. 그 결과 실질적인 종부세 대상자는 전국민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자신의 집값이 6억원 목전에 있었던 사람들, 또는 그렇지 않아도 막연히 자신의 집값이 언젠가는 6억원을 넘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집'이 자산의 전부

이자 '희망'이었기 때문에, 종부세는 자신이 종부세 대상이든 아니든간에 꼭 좋게 보이지만은 않을 수 밖에 없었던게 사실이었던 듯 하다. 당시 자료를 찾아보니 워낙 제각각이긴 하지만 종부세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반반으로 나뉘었던 것 같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10%정도가 빠졌었던 것으로 보인다. 50%가 안되는 지지자 중에서 1/5~1/4가 떨어져나간 것이니 상당한 수치였다고 할 수 있겠다. 또 2005년 시행 후 2006년에 수정된 종부세의 일부 내용(세대별 합산 과세)이 위헌판결을 받으면서 역시 정부는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종부세의 내용도 다시 수정되었고 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굉장한 의의와 효과가 있었던 세제였다. 대표적인 것만 언급해보면, 첫째는 부동산값 상승을 막았다는 것이다. 꼭 종부세만의 업적은 아니었지만, 2003년 종부세와 함께 각종 부동산 정책들이 발표되면서 급등하던 한국 부동산은 곧바로 안정되었다(종부세는 2005년에 시행). 특히 6억 이하의 아파트들의 가격 상승이 6억 언저리에서 묶였다. '부동산 경기 침체'라며 사방에서 난리를 쳤지만, 사실 집값도 하나의 국민생활 필수품으로, '안정'되어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었다. 더불어서 2006년부터 집값은 종부세와 부동산 규제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 유동성 증가로 주식과 함께 급등했다가 2008년 서브프라임 상태로 타격을 입었는데, 참여 정부도 예상치는 못했겠지만 종부세를 비롯한 부동산 규제가 없어 2003~2006년 사이에도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었다면, 버블 붕괴로 한국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세수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이었다. 특히 종부세는 지방자치단체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지방재정에 상당한 도움이 되어, 후에 종부세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지방재정 안정화라고 불리게 되었다. 일례로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종부세 규제가 완화되고 서브프라임 사태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서울 강남 부근 외의 지역에서 종부세가 가장 크게 감소한 지역이 바로 성남시였는데(분당에서 나오는 종부세가 컸다), 그런 성남시는 2010년에 파산선언을 했다. 애초에 전임 시장이 벌려놓은 사업이 원인이기도 했지만, 종부세가 감소하지 않았다면 파산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파산 당시 성남이 2012년까지 갚아야 할 부채는 5200억. 성남시의 종부세는 2007년대비 2010년에 1400억 감소했다.)

 

   그런 효과 때문에 당시 참여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종부세는 당시 세금폭탄이라는 난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두명의 대통령 임기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강력한 정부의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국민들도 종부세의 필요성을 종부세 도입 초기보다는 크게 인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명박 정부에서 2008년에 종부세를 완화했을 때 75%의 국민들이 반대를 하기도 했다.

 

   끝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두가지 말하고 싶다. 첫째, 피할 수는 없겠지만, 부동산이 투자대상이 되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된다고 본다. 그런 곳에 돈이 흘러들어갈 바에는 금융기관이나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는게 맞다. 또 세금에서의 누진세, 직접세의 확대는 진리 그 자체다. 종부세는 직접세이자 일종의 누진세였다. 부동산이 많을수록 세금이 부과되는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국민 중 2%도 안되는 자산가들에게(평범한 사람도 포함되었을 수 있지만) 흠집도 안 날 세금를 거둬 막대한 세수가 생겨났으니, 정부 입장에서는 대박이자 조세제도가 가야 할 방향성을 분명히 보여준 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증세 이야기가 나오는데 반드시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 또 간접세를 늘려서는... 아무튼 이번 주 오늘의 역사는 여기까지다.

 

참고글 : 종합부동산세 - Wikipedia (개편안, 여론조사 등)

 

 

 

 

 

 

 

8월 31일과 9월 1일의 역사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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