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참사,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어떠한 경우든, 또 관련자이든 아니든,
자연스럽게 남은 사람들에겐 저마다 숙제가 주어지기 마련이다.
그 숙제를 해 낼때까지 비극은 계속 우리 곁에 머물며
우리를 괴롭히고 또 다른 비극과 좌절에 빠뜨리게 된다.
결국 남은 숙제를 해 내야만 비로소 비극은 마침표를 찍게 되고,
그제서야 우리는 그를 과거의 역사로 묻어 두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그 때의 아픔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 링 크 -
4월 28일과 29일의 역사
[일본특집] 영친왕, 일본 독도영유권 주장의 배경, 윤봉길 의사 등
- 순 서 -
21년전, 1993년 4월 27일
잠비아 축구 대표팀 25명을 태운 DHC-5 비행기 가봉 근해에서 추락.
승무원 5명 포함, 탑승객 30명 전원 사망.
11년전, 2003년 4월 28일
애플의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가 출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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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과 28일의 역사
Wikipedia
1521년 - 포르투갈 태생 에스파냐 제독 페르디난드 마젤란 탄생.
1667년 - 시각장애와 가난에 시달린 존 밀턴이 《실낙원》의 저작권을 10 파운드에 팔다.
1908년 - 제4회 하계 올림픽이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다.
1947년 - 양키 스타디움에서 베이브 루스 데이 행사가 열리다.
1953년 - 대한민국에서 소리 나는 대로 쓰자는 한글 맞춤법 개정안이 공포되다.
1978년 - 아프가니스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다음날 무함마드 다우드 대통령이 살해되다.
1993년 - 잠비아 축구 대표팀 25명을 태운 DHC-5 비행기 가봉 근해에서 추락. 승무원 5명 포함, 탑승객 30명 전원 사망.
1994년 - 넬슨 만델라가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남아공의 대통령에 당선되다.
1994년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태리의 73번째 총리로 취임하다.
2008년 - 대한민국 서울에서 성화봉송 행사에서의 중국인 폭력시위 사건이 발생하다.
2010년 -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인 대한민국의 새만금 방조제가 준공되다.
1545년 - 조선 중기의 무신, 초대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탄생.
1920년 - 대한제국의 영친왕이 일본 왕족 마사코와 정략 결혼하다.
1945년 -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의 연인 클라라 페타치가 이탈리아를 탈출하려다 피격당하다.
1952년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어 연합국의 일본 점령이 끝나다.
1969년 - 샤를 드골이 프랑스 대통령직을 사임하다.
1995년 - 대구 도시철도 공사장 인근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나 102명이 사망, 117명이 부상을 당하다.
2003년 - 애플의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가 출시되다.
1945년 -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의 연인 클라라 페타치가 이탈리아를 탈출하려다 피격당하다.
1993년 - 잠비아 축구 대표팀 25명을 태운 DHC-5 비행기가
가봉 근해에서 추락, 탑승객 30명 전원 사망.
쭉 보다보니까 이 소식이 눈에 들어오더라. 참 이런 대형사고들이 일어나서는 안되는데...
잠비아는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FIFA에 가입했는데, 비록 월드컵에는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진출 직전까지는 수시로 올라갈 정도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당시에는 아프리카 월드컵 티켓이 겨우 한장이었으니 진출이 더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82년부터 2장, 1994년부터 3장, 현재는 5장)
잠비아 위치
하지만 80년대를 전후로는 침체기를 겪었는데, 그러다가 1985년에 '칼루샤 브왈랴'가 벨기에 리그 득점왕을 달성하고, 88년에는 박지성의 팀으로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네덜란드의 'PSV에인트호벤'에 입단해 25골을 넣으며 '올해의 아프리카 선수상'을 수상하면서, 잠비아 축구는 조금씩 부활하기 시작했다.
1990년 월드컵예선에서는 3승3패 승점 1점차이로, 4개국이 두장의 티켓을 나눠갖는 최종라운드에 진출하는데 실패하였지만, 1994년에는 월드컵 티켓이 3장으로 늘어나면서 잠비아는 처음으로 월드컵 진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94년 월드컵 진출을 위한 지역예선에서 첫경기인 세네갈과의 대결을 승리한 잠비아 대표팀은, 세네갈에서의 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다 이륙 직후 엔진이 꺼지며 비행기가 추락, 대표선수 18명과 감독, 코치, 스텝 등 30명이 전원 사망하는 참사를 당하고 만다. (5명은 승무원)
알고보니 이륙전 비행기 점검에서 이미 비행기 엔진에 이상이 있었음이 확인된 상태였다. 연료필터에서는 있어선 안 되는 검은 탄소입자가 발견되었고, 심지어 엔진 내부에 일부 케이블이 끊어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행기는 예정대로 이륙했던 것인데...
한편, 잠비아의 축구 영웅 '칼루샤 브왈랴'는 네덜란드에서 직접 이동하기로 해 화를 면할 수 있었고, 부상으로 화를 면한 선수도 있었다. 결국 이들을 포함해 새롭게 모인 선수들은 남은 예선을 치르게 되는데, 이번엔 최종예선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하지만 마지막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0:1로 패하면서 승점 1점차로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모로코, 나이지리아, 카메룬이 진출) 그래도 1974년 이후 20년만에 처음으로 최종예선에 진출했고, 정말 말그대로 월드컵의 문턱까지 갔던 기적적인 선전이었다.
그리고 19년이 지난 2012년, 잠비아는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서 승부차기 끝에 사상 처음으로 우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행기가 추락했던 '리브르빌'에서 우승컵을 차지했다. 잠비아 축구협회 회장이 된 '칼루샤 브왈랴'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정말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그야말로 잠비아 축구의 부활이었으며, 남은 선수들은 참사 이후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한 것이었으니...
음, 그런데 찾아보니까 잠비아는 이번 2014년 브라질월드컵 진출은 실패했더라. 하지만 글쎄, 앞으로는 어떨까? 분명히 잠비아 축구는 바닥을 쳤다. 우리가 아프리카 축구하면 떠올리는 카메룬의 자리를 잠비아가 차지할 날도 오지 않을까? 참사를 이겨내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2003년 - 애플의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가 출시되다.
스티브 잡스 '최후의 꿈'은 무엇이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애플'의 제품과 서비스들을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의 흐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조금씩 가지를 뻗어가는 모습이 상당히 흥미로운데, 사실 애플 제품이 별로 없어서 그런 모습이 두드러질 뿐인 것 같기도 하지만, 확실히 그들이, 아니 스티브 잡스가, 어떤 전략, 비전, 그리고 꿈과 미래에 대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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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냅스터', 1999년 11월 '벅스뮤직', 2000년 5월 '소리바다'...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 이전의 음악 공유 서비스와 음악 공유사이트다. 냅스터와 소리바다는 아시다시피 P2P 서비스다. 요즘 많이들 사용하는 'Torrent'와 다르게 서버를 거쳐야 하는 방식이어서, 후에 저작권 문제로 서버가 멈추자 서비스가 중단되고 만다.
생각해보면 '벅스뮤직'은 은근히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와 비슷했다. 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벅스는 자신만의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기본적으로 '다운로드'를 할 수 없었고 스트리밍으로만 음악을 듣게 하는 전략을 택했다. MP3 플레이어 확산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일까, 저작권 보호시스템의 한계 때문이었을까? (다운로드 서비스는 2005년부터.)
애플은 달랐다. 1997년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일단 중심이 될 컴퓨터를 만들었다. iMac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MP3플레이어인 iPod를 만들었고, 동시에 iMac과 iPod를 동기화 시켜주는 iTunes도 만들었다. 2001년이었다. 그리고 2003년 4월 28일에, 최대 40Gb를 지원하는 3세대 아이 iPod를 출시하면서 'iTunes Music Store' 서비스를 시작한다. 그리고 서비스 공개 후 18시간 만에 27만 5천곡이 판매되었고, 5일만에 100만곡이 팔려나가게 된다.
그리고 10월에는 애플이 고집을 꺾고 윈도우용 iTunes를 출시한다. iPod와 iTunes의 생태계를 확산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었을까? 여하튼 그것은 iTunes를 크게 대중화 시켰고, 2003년 12월 15일에는 아이튠즈를 통한 음악판매가 2500만 곡을 돌파하게 된다.
2003년 10월, 윈도우용 iTunes가 출시되면서 나온 광고
사실 '자신만의 하드웨어'가 없어서 벅스뮤직이 iTunes보다 성공하기 어려웠다고 말할 수는 없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한계도 있었으며(그게 자신만의 하드웨어가 없어서일수도 있지만), 또한 한국 이용자가 미국보다 적었을 것이고, 기본적으로 냅스터보다 오래 지속된 소리바다가 벅스뮤직의 성장에 제동을 걸기도 했을것이다. (냅스터는 2001년에 서비스 종료.) 여하튼 결과적으로 확실히 하드웨어와 서비스를 모두 가진 애플의 시너지는 컸다. 새하얀 이어폰과 터치스크롤, 엄청난 용량의 iPod에 이끌린 사람들은 iTunes를 사용하게 됐고, 5대 메이저 음반 업계의 음원을 모두 손쉽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iTunes에 이끌린 사람들은 iPod를 이용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또 웃긴것이, 냅스터가 1999년에 등장하고 큰 호응을 얻은 뒤 논란끝에 2001년에 서비스가 종료되자, 2003년에 iTunes Music Store가 생겼다는 것이다. MP3플레이어가 한국에서 발명되고 나중에 iPod가 등장하고, 'iPhone의 기술들도 원래 다 있던 것이었다'는 이야기들과 같은 부분이다.
'따라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원조는 왜 성공 못했는가'에 대한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애플은 기존에 있던 '컨셉'을 이용해, 기존 것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폭발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로 재창조해냈고, 그것을 엮어 생태계를 만들면서 대박을 쳤다고 할 수 있겠다. 뭐 다들 하는 이야기를 또 한 것 같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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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2004년 11월에는 '멜론', 2005년 5월 '도시락'(현 '올레뮤직')과 같은 음원사이트가 등장했고, 벅스뮤직도 2005년 9월부터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멜론이 2005년 12월에 400만건의 음악 다운로드 수를 돌파하고 있을 무렵, iTunes Music Store는 8억곡이 넘는 음악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국내 시장 크기의 차이, 소득수준의 차이 같은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국내 음원 서비스들은 통신사 가입자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해나가 한계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그것은 동시에 다른 음원서비스의 진입도 막는, 정체된 시장을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통신사는 정말...)
한편 하드웨어와 서비스를 결합시킨 애플은 무한정 세계로 뻗어나갔다. 2007년 Apple TV와 iPod Touch, 그리고 iPhone 1G를 공개한 애플은, 2008년에 iPhone 3G와 App Store (앱스토어)를 공개하며, iPod와 iTunes Music Store가 보여주었던 사이클을 다시 한번 반복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이후 2010년 iPad를 선보인 애플은, 2011년에는 iPad2의 출시와 함께 iCloud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iCloud는 애초에 iTunes Music Store나 App Store처럼 컨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라기 보다는, 기존 제품들을 연결시켜주고 컨텐츠의 공유를 좀 더 용이하게 해주는 서비스였다. 오히려 iTunes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린 생각해 볼 수 있다. 애플은 어떤 하드웨어를 내 놓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떤 컨텐츠로 연결시키고 생태계를 조성할 것인가? 자연스럽게 TV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영화나 '다시보기' 서비스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iTV'에 대한 움직임은 없는 상태... 사실 새로운 기기를 새로운 컨텐츠와 연결시키는 것은, 모바일 체제하에서는 이젠 될만큼 된 상황이라고 본다.
결국 iTunes, iCloud와 같은 연결성을 높여주는 서비스들로 기존의 컨텐츠와 기기들을 최대한 활용하려 하지 않을까 싶다. 자동차와 연동되는 Car Play도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홈네트워크에 연결된 사물인터넷을 완전히 제어하는 컨셉을 구상할 듯 하다. 'Home Play'와 같은 것이 나와, 사물인터넷을 지원하는 각종 가전제품들과 기존의 애플 제품들, 그리고 TV, 그리고 집밖 자동차까지 연결시키려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스티브 잡스의 최후의 꿈이 아니었을까 싶다. 뭐 뻔한 결론 같긴 하다만, 반문해보기도 해야겠다. 우리 기업들은 꿈이 있는지, 그렇게 단계를 밟아가며 전략적으로 확장, 발전해 왔는지 말이다.
4월 27일과 28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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