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3월 30일과 31일의 역사 - 알래스카 매매, 스타크래프트 출시, 버진아일랜드 매매

스마일루 2014. 3. 27.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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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를 구매하는데 쓰인 720만달러짜리 수표.

 

알래스카의 판매는 러시아가 먼저 미국에게 제안한 것이었다.

미국도 자원을 기대하고 알래스카를 산 것이 아니었다.

또한 오늘날 알래스카에서 많은 자원이 발견되었다고는 하나,

어찌되었든 미국은 그 자원과는 별개로 알래스카를 구매한 목적을 달성했다.

 

 

 

 

 

 

- 링 크 -

 

지난 3월 31일 '오늘의 역사' 없음.

 

 

- 순 서 -

 

147년전, 1867년 3월 30일

미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하다.

 

93년전, 1917년 3월 31일

덴마크가 덴마크령 서인도를 미국에

2,500만 달러에 양도하여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되다.

 

16년전, 1998년 3월 31일

스타크래프트, 북미에 출시되다.

대한민국에서는 4월 9일에 출시되었다.

 

 

 

 

 

 

 

 

 

3월 30일과 31일의 역사

Wikipedia

 

3월 30일

1282년 - 마피아 의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전해지는 시칠리아 만종 사건이 일어났다.

1450년 - 조선 4대 국왕 세종 승하.

1822년 - 플로리다 준주가 설립되다.

1853년 -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탄생.

1856년 - 크림 전쟁을 끝내는 파리 조약이 조인되다.

1867년 - 미국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매입하다.

1895년 - 동학의 지도자 전봉준 사망.

1964년 - 미국의 퀴즈 쇼인 《제퍼디!》가 첫 방송을 시작하다.

1981년 - 미국의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수도 워싱턴 D.C.에서 피격당하다.

2011년 -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서 부산 도시철도 4호선이 개통되었다.

 

 

3월 31일

1492년 - 스페인가톨릭 군주알람브라 칙령을 발표해 모든 유대인들을 개종하게 만들거나 국가에서 추방시키다.

1854년 - 일본미국가나가와 조약을 맺고 시모다하코다테 두 항구를 개항하다.

1889년 - 파리의 상징인 에펠 탑이 준공되다.

1917년 - 덴마크덴마크령 서인도미국에 2,500만 달러에 양도하여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되다.

1972년 - 수려선 전 구간 폐선.

1992년 - 미국 해군의 전함인 USS 미주리가 퇴역하다.

1998년 - 스타크래프트, 북미에 출시되다. 대한민국에서는 4월 9일에 출시되었다.

 

 

 

 

 

 

 

 

1867년 - 미국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매입하다.

 

 

   오늘은 미국의 토지매매 특집이 된 듯 하다. 무거운 정치역사들 안 다루는 것도 오랜만인듯?

 

   우선 알래스카...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배경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나도 솔직히 세세한 이야기는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몇번 다뤘던 미국의 토지 매매 역사에서 큰 이유를 추정할 수 있었는데, 역시나 정확히 그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지정학적 이점 때문이다. 아래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절대 경제적 이점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정학적 거점을 차지하고자 하는 미국인들의 대전략... 이 정도면 소름끼칠 정도다. 하나하나 이야기해 보자.

 

   우선 알래스카는 과거 빙하기 때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인류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와 인디언들이 되었고 말이다. 알래스카에서는 3천년전에 만들어진 온돌이 발견되기도 했을 정도로 추운 지역이다. 알래스카 인구의 40%가 살고 있는 '앵커리지'시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 1도라고...

 

   그런 알래스카는 1741년 '비투스 조나센 베링'(왼쪽 사진)이 발견했다. '베링 해협'이라는 이름도 그의 이름에서 딴 것인데, 러시아 표트르 1세의 의뢰를 받아 북태평양을 탐험하다 베링 해협과 알래스카를 동시에 발견했다. 그리하여 알래스카는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고, 그는 전세계적으로 공인받게 된다.

 

   그리고 100년이 흘러 1856년, 러시아 제국은 영국, 프랑스에게 압도당하면서 크림 전쟁에서 패배한다. 그러자 러시아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방어하기엔 너무도 먼 알래스카를 침공해 자연스럽게 빼앗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그것이었다. 당시에는 캐나다 지역이 영국의 식민지이기도 했기에 그런 고민은 당연했다. 

 

   결국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는 이를 영국, 프랑스와 친하다 '할 수 없는' 미국에게 팔기로 결정한다. 빼앗기느니 돈이라도 벌어야 겠다는 것이었다. 러시아 대사 '에두아르트 스테클'은 미국 국무장관 '윌리엄 슈워드'에게 알래스카 매매의사를 타진한다.

 

   미국 정부는 고민을 시작했다. 사실 미국에게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추운 불모지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또 미국 역시 독립 이후 영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역시 알래스카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생각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매입하는 것을 통해, 러시아와는 가까워지면서 동시에 영국을 러시아와 함께 압박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지 않나? 동시에 영국의 캐나다 식민지를 지리적으로 포위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결국 알래스카로 인하여 반대로 캐나다가 영국에게 지켜내기 곤란한 지역, 가치가 없는 지역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었다. 그러한 배경에서 알래스카 매입을 강력하게 지지했던 국무 장관 윌리엄 슈워드는 3월 30일에 미화 720만 달러, 오늘날의 가치로 약 17억 달러(1조 9천억원)에 알래스카 매입 협상을 마무리 짓는다.

 

   이후 슈워드를 비롯한 상원 의장 '찰스 섬너'는 알래스카 매입의 당위성등을 홍보했지만, 그에 대한 비난은 적지 않았다. 뉴욕 월드는 알래스카를 '다 빨아먹은 오렌지', 뉴욕 트리뷴은 '얼어붙은 황무지'로 불렀고, 그 외에도 알래스카는 '북극곰 정원', '슈워드의 냉장고'로 불리며 쓸모 없는 영토로 묘사되며 알래스카 매입은 어리석은 결정으로 공격받았다. 찰스 섬너는 알래스카 매입에 대하여, "실질적인 경쟁으로, 어떤 사업에 종사하기 위해 혹은 애국심을 위해, 두려움을 모르는 항해자들이 떼지어 해안으로 움직여 갈 것이다. 상업이 새로운 무기를 찾을 것이며, 국가는 새로운 방어자를 찾을 것이며, 새로운 손에 의해 국기가 높은 곳에 계양될 것이다." 라고 말했는데, 사실 우리 정치인이 이런 소리를 했다면 말만 번지르르하다고 비난했을 그런 소리였다. 그만큼 알래스카 매입으로 얻을 수 있는 미국의 이익이라는 것은 분명히 추상적이었고, 최소한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실제로 미국 정치인들도 그런 생각이었고...

 

   그럼에도 알래스카 매입의 전략적 필요성은 정치인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그 결과 조약은 1867년 4월 9일에 상원을 통과했으며, 1867년 10월 18일에 알래스카에 미국 국기가 올랐다. ('알래스카의 날') 매입 비용 지출 승인 안건은 하원의 반대로 인해 1년이 지난 1868년 7월에 통과되었다고...

 

 

   그렇게 미국의 영토가 된 알래스카... 다들 알다시피 이후에 자원들이 발견되었다. 애초에 알래스카에서 채광되던 철광석도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이 드러나, 철광석 만으로도 매입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았다. 그에 더해 1880년대에는 금이 발견되었고, 후에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되면서, 알래스카는 러시아가 사실상 미국에게 공짜로 넘긴 셈이 되었다. 그리하여 1912년에 알래스카는 미국의 '준주'가 되었으며, 1959년에는 공식적인 미국의 '주'가 되었다.

 

 

알래스카의 석유생산량은 80년대 말에 정점에 달했고, 현재는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러 생산을 하지 않고 숨겨두고 있다는 말이 있지만 일종의 '음모론'에 불과하다.

물론 석유, 가스가 아니어도 지열, 수력, 메탄하이드레이트 등의 자원도 풍부하다고....

 

 

 

   하지만 놀라운 것은 자원의 발견이 아니었다. 그것이야 러시아나 미국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도,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었다. 진정 놀라운 것은, 끝내 캐나다가 미국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알래스카 매입때문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은 캐나다의 각 식민지들이 미국으로 흡수합병 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알래스카가 매입되고 약 3개월 뒤인 1867년 7월에 식민지를 통합하는 '대영 북아메리카 조약'을 통과시켜 캐나다 동부 식민지들을 묶은 뒤 1800년대 말까지 캐나다 전지역을 정치적으로 통합시키게 되는데, 이것은 결국 1900년대 초부터 캐나다가 별도의 독립국가가 되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캐나다가 주권 국가로서 미국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알래스카 매입의 영향이 아예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러시아가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냉전시절 대결 구도는 어떠했을까? 정말 러시아의 우려대로 영국이 알래스카를 차지했다면, 그래서 막대한 자원을 영국이 손에 넣었다면 세계 힘의 구도는 어떻게 변했을까? 덕분에 캐나다가 영국영토로 유지되거나 캐나다가 큰 힘을 가지게 되었다면? 어찌되었건 지금 모든 것은, 미국이 원하는대로 되었다.

  

 

  

 

 

 

 

1917년 - 덴마크덴마크령 서인도미국

2,500만 달러에 양도하여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되다.

 

 

   버진아일랜드... 생소한 곳 같아도 은근히 다들 아시지 않을까 싶다. 바로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에 많이 나오기도 했고? 하지만 그곳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이고, 오늘 다루고자 하는 버진아일랜드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다.

 

 

 

 

   버진아일랜드는 섬 하나가 아니라 정확히는 섬들(Islands)이다. '제도'라는 말이다. 이 버진 제도에는 100여개 이상의 섬이 존재하는데, '세인트토머스'섬을 비롯한 서쪽 절반 50여개는 미국령이고, '토르톨라'섬을 비롯한 동쪽 절반 60여개는 영국령이다.

 

   이 버진아일랜드, 버진 제도는 1493년에 콜럼버스가 발견했는데,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1666년 영국이 아메리카에 진출하던 시절부터 영국령이었고, 오늘날 미국령의 버진아일랜드는 본래 1600년대부터 덴마크령이었으나, 1917년에 알래스카와 마찬가지로 덴마크가 미국에 판매를 제안, 미국이 2500만 달러에 사들이면서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되었다.

 

   버진아일랜드는 군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바로 유럽대륙에서 파나마 운하로 이어지는 최단거리 항로가 버진아일랜드를 지나기 때문이다. 파나마 운하가 1914년에 완공되어 미국이 운영을 하기 시작했고, 1917년에 덴마크가 버진아일랜드를 미국에 팔았으니, 또 한번 미국은 원하는 것을 얻은 셈이었다.

 

   하지만 사실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우선 미국은 1800년대 중반부터 버진아일랜드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남북전쟁으로 인해 카리브해의 해군기지를 물색했었는데, 그래서 버진 제도의 섬 2개를 사려고 했고 실제로 1867년에 덴마크와 협상도 완료되었지만 미국 상원에서 그를 거부했었다고 한다. 1899년에는 유럽 국가의 미국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이번엔 덴마크 의회에서 막히고 말았다.

 

   그러던 1914년, 1차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블로그에서 여러번 소개한 것처럼 1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중립적인 입장이었다. 다만 걱정이었던 것은 주축국이 독일을 장악하고 이후에 아메리카로 공격을 감행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2차세계대전 때도 같은 고민을 했다) 특히 독일이 잠수함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대서양 방어능력은 장담할 수 없어졌다.

 

참고글 : 문명5BNW-(#1-20) 세계경찰 : (1) 예외주의, http://blog.daum.net/smileru/8888388

문명5BNW-(#1-11) 1차세계대전 : (2) 확전 (중간 '민주주의 병기창' 부분), http://blog.daum.net/smileru/8888353

 

   한편 중립국이었던 덴마크는 독일과 전쟁상태는 아니었지만 독일군의 잠수함에 의해 상선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었는데, 덴마크 역시 독일이 미국을 견제하거나 공격할 목적으로 카리브해의 섬을 점령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자신들의 버진아일랜드가 그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또 그렇게 되면 이미 중립국을 건드린 독일이 더이상의 망설임 없이 덴마크의 본토도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이미 덴마크의 '영광'이 과거로 사라져가던 시점에서 덴마크는 버진아일랜드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또 덴마크가 전쟁에 휩싸이는 것을 막기 위해, 버진아일랜드를 미국에 팔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덴마크가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미국이 전쟁이 참가하고 난 뒤에 미국에게 전략적 요충지인 버진아일랜드를 팔면, 어느 한쪽 편을 돕는 셈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중립국 의무 위반이었고 그는 독일의 덴마크 침공을 유발할 수 있었다. 따라서 덴마크는 미국이 참전하기 전에 버진아일랜드를 미국에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1915년 5월에 미국에게 판매를 제안하게 된다.

 

    이후 1916년 8월까지 비밀리에 협상이 진행되었고, 8월 4일 뉴욕에서 미국과 덴마크 대표가 매매 조약에 서명하게 되었으며, 미국은 9월에 의회승인을 받은 뒤 '우드로 월슨' 대통령이 1917년 1월 16일에 비준을 하였으며, 덴마크는 1916년 12월 14일에 국민투표를 진행하여 22일에 의회가 조약을 비준했고, 최종 매매 비용 전달이 1917년 3월 31일에 이뤄지면서 버진아일랜드의 거래는 끝이 난다.

 

   한편, 독일의 아메리카 대륙 개입 야욕은 노골화되어가고 있었다. 버진아일랜드 매매 조약에 우드로 월슨 대통령이 서명을 하던 1917년 1월 16일에, 독일의 외무장관이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에게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할 경우 멕시코가 미국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도록 도와주겠다' 라는 내용이 담긴 암호문이 해독되었는데, 그것으로 미국은 1차세계대전 참전으로 기울게 되었고, 곧이어 영국 상선이 침몰하면서 많은 미국인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국은 버진아일랜드 매입 6일 후인 4월 6일, 미국은 1차세계대전에 참전한다. 미국과 덴마크가 우려했던 독일의 움직임이 실제로 확인된 것이었고, 그 때문에 미국은 사기를, 덴마크는 팔기를 원하던 버진아일랜드는 그야말로 완벽한 타이밍에 거래된 셈이 되었다. (오른쪽 이미지는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미국침공 계획 예상 중 하나. 실제 독일의 작전계획은 아니다.)

 

   참 재미있다. 톱니바퀴가 꽉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흥미로운 점은, 러시아나 덴마크가 '빼앗길까봐' 자국 영토를 미국에게 팔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덴마크의 고민은 더 깊었던 것이지만... 요즘 같으면 지킬 자신이 없다고 영토를 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토, 영해, 영공과 같은 것은 거래대상에서 거의 사라진 것이 요즘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전쟁행위가 빈번하다보니 쉽게 빼앗길 수 있어서 빼앗기느니 팔겠다는 생각이 나왔던 것이고, 요즘에는 쉽게 지킬 수 있으니 팔지 않고 버티게 되었다고 말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남중국해 제도들을 중국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지도 새삼 궁금해진다.   

 

  

 

 

 

 

 

1998년 - 스타크래프트, 북미에 출시되다.

대한민국에서는 4월 9일에 출시되었다.

 

 

   스타크래프트! 참 놀라운 게임이다. 특히 최근 국내 게임 시장이 MMORPG, 즉 캐릭터를 키우는 쪽으로만 쏠려있는 것에 반해, 당시 스타크래프트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RTS)이면서 크게 흥행했다는 점에서 그 놀라움이 더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요즘에는 RTS 게임들이 너무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시대흐름이 그런거겠지?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던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다. 원래 난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게임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는데, 당시에는 훗날 EA에 합병된 Westwood사의 Command & Conquer 시리즈(오른쪽 이미지)들을 엄청나게 즐겼었다. 물론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2도 재미있게 했었고 말이다. 그러던 중 블리자드에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제작중이라는 소식을 '게임잡지'를 통해서 접하게 되었는데 역시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토탈 어나힐레이션'(정확히는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이라고 한다)이 출시되면서 스타크래프트의 출시가 지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때문에 살짝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래서 찾아보니, 스타크래프트는 1996년부터 1월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단순히 워크래프트2의 우주버전 느낌을 기획했었다고 한다. 따라서 완전히 워크래프트2를 기반으로 했는데, 1996년 5월에 요즘에도 유명한 E3 게임쇼에서 스타크래프트가 공개되자 많은 사람들은 '워크래프트의 싸구려 우주판'이라고 혹평을 했다. (왼쪽 이미지)

 

   그러다가 1997년에 '케이브독'사의 '토탈 어나힐레이션'이 공개되면서 블리자드는 '멘붕'에 빠졌다. 토탈 어나힐레이션이 보여준 3D 지형과 그래픽, 거대한 스케일과 다양한 유닛들은, 워크래프트2를 그야말로 한 세대 전의 게임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워크래프트2를 기반으로 하여 유닛의 모양과 스토리만 변경되었던 스타크래프트에게는 재앙이었다. 

 

   그로 인해 블리자드는 1년여간 대대적으로 그래픽을 수정했고, 그 결과 우리가 아는 그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 3월에 베타테스트를 마친 뒤 출시 되게 된다. 그리고 흥행에 성공한다.

 

   그런데 보면 참 놀라운게,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야말로 놀라운 그래픽의 발전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2D 그래픽이었고, 따라서 토탈 어나힐레이션처럼 컴퓨터 필요사양을 고사양으로 올려 그래픽을 구현했다기 보다는 그래픽의 묘사에 있어 현실감과 디테일함을 올렸을 뿐인 것인데, 그것만으로 게임 자체가 완전히 달라보이게 되었다. 즉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 이것을 보면 워크래프트2의 성공에 안주하여 그를 '재탕'하려 했던 블리자드를 각성하게 해준 토탈 어나힐레이션에 블리자드는 큰 빚을 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이폰'이 준 충격과 같은 것이 RTS 게임계에 불어닥쳤다고나 할까?

 

   물론 스타크래프트가 토탈 어나힐레이션에 의한 자극으로만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게임 구성이 신선했다. 기존의 C&C나 워크래프트, 토탈 어나힐레이션 모두 1:1 대결 구도에 유닛도 1:1로 대응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듄2' 같은 특이사례가 있긴 했지만, (그것도 재미있게 했다) 그래도 유닛들은 종족간 어느정도 대응이 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진영간 밸런스 때문이었을 것이고?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3종족에 더불어, 3종족의 게임 방식이 완전히 다르도록 구성하여 흥미로움을 크게 높였다. 물론 이것은 스타크래프트 초기에 극심한 종족간 밸런스 논란으로 이어졌지만, 1997년 당시 '모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인터넷 확산세를 이용해 빠른 버전 업데이트를 보여주면서 그를 차차 해소해 나갔다. 그 외에 C&C나 토탈 어나힐레이션보다 게임 스피드가 빨라 박진감이 넘쳤고, 후발주자이면서 동시에 인터넷을 거의 처음으로 활용한 RTS게임이었기에('배틀넷') 확산도 빠를 수 있었다.

 

   뭐 이후의 이야기들은 여러분들도 다들 잘 알고 계실 것이다. 한국에서는 '게임방'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스타크래프트는 빠르게 확산되었고, 1998년 3월에 확장팩 'Brood war'가 출시되면서 게임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져 인기는 더욱 크게 치솟았다. 앞서 말한 스타크래프트 속 종족간의 특성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전략과 전술의 등장을 가능케 했고, 이는 스타크래프트가 'E-Sport'로 이어지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14년... 스타크래프트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2010년에 출시된 스타크래프트2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팔린 RTS 게임에 등극하였으며, 2013년에는 확장팩 '군단의 심장'이 공개되기도 했다. 게임방송도 계속하고 있고...

 

   하지만 E-Sport의 역사는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E-Sport라는 것이 시작된 한국에서는 2000년에 월드사이버게임즈(World Cyber Games, WCG)라는 게임대회를 만들었는데, 초반에는 대한민국에서만 개최되다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 2008년에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이후 조금씩 규모가 축소되기 시작하여 결국 2014년 2월 WCG는 대회 종료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유일한 E-Sport 올림픽의 종말이었다.

 

   물론 '리그오브레전드'(LOL)의 '월드챔피언쉽'이 열리고 있고 그것이 E-Sport계에 활력을 불어넣고는 있지만, 스포츠게임에서부터 RTS, 레이싱 게임까지 담고 있던 WCG의 대회종료는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올림픽이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면, 먼 훗날 어떤 모습이 될지 알 수 없는 E-Sport의 올림픽은 대한민국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참... 모르긴 몰라도 최근의 정부기조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충분히 도와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막연한 개인적 생각이다)

 

   그래 뭐 이야기가 살짝 새버린 것 같은데, 여하튼 스타크래프트1은 특히 대한민국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불어왔다. PC방, 광통신인터넷등이 스타크래프트1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1의 흥행이 막을 내림과 함께(저작권, 방송중계권, 승부조작 논란등이 있었다) 그 변화의 바람도 끝나고 말았다. 글쎄, 그러한 바람을 다시한번 불어넣을 게임은 무엇이 될까? 그러한 게임이 등장한다면, 그 게임은 어떤 장르, 어떤 형태의 게임일 것이며, 우리 사회를 또 어떻게 바꾸게 될까? 개인적으로는 가상현실 쪽에서 '스타크래프트1', '아이폰' 급의 대혁신이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머지 않았다고 본다.

 

 

 

 

 

 

 

3월 30일과 31일의 역사

 

- fin -

 

 

 

 

 

 

문장어색한부분수정 (201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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