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8월 11일과 12일의 역사 - 바이마르 헌법과 독재 사이, 애플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탄생

스마일루 2013. 8. 8. 21:08
728x90

 

 

 

 

 

 

 

 

 

1차세계대전 이후 왕정이 무너지고 세워진 바이마르 공화국의 바이마르 헌법은

인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현대적인 헌법이었다.

 

그렇게 독일은 현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고 산업도 빠르게 근대화 되었지만,

이후 내부 갈등으로 인한 진보세력의 자멸, 그리고 경기침체 이후의 우경화는,

끝내 국민들이 나치당의 히틀러를 선택하는 결과를 낳았다.

 

세계대전에서의 패전 이후 독일 국민들의 절망감과 이어진 민족주의와

사건 조작을 통한 히틀러의 좌파 탄압등도 그에 큰 몫을 했고 말이다.

 

중요한 건,

국민들은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잘 모른 채

바이마르 헌법이 히틀러의 마음대로 무력화 되기까지 1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일본의 아소 다로 부총리는 히틀러가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시킨 바로 그 방식,

'전권 위임법'을 아베 총리에게 제안했다는 사실이다.

 

 

 

 

 

 

 

 

 

 

- 링 크 -

 

{'12. 8월 둘째주} 8월 12일의 역사

청교도 혁명, 한일어업협정

http://blog.daum.net/smileru/8888090

 

 

 

- 순 서 -

 

94년전, 1919년 8월 11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바이마르 헌법을 채택하다.

 

63년전, 1950년 8월 11일

미국의 프로그래머, 해커,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탄생.

 

 

 

 

추천? 손가락 클릭!

 

 

 

 

 

 

 

 

 

 

 

 

 

8월 11일과 12일의 역사

Wikipedia

 

8월 11일: 차드의 독립기념일 (1960년)

1511년 - 스페인, 멕시코 정복

1907년 - 일본군, 강화도 강점

1914년 -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

1919년 - 바이마르 공화국바이마르 헌법을 채택하다.

1919년 - 미국의 강철 사업가 앤드류 카네기 사망.

1929년 - 베이브 루스가 500개의 홈런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다.

1950년 - 미국의 프로그래머, 해커,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탄생.

1972년 - 베트남 전쟁, 미국의 마지막 지상 전투 부대가 남베트남에서 철군하다.

1980년 - 대한민국의 수영 선수 조오련대한해협을 수영으로 건너는 데 성공하다.

1987년 - 앨런 그린스펀미국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하다.

1988년 - 테러 단체 알카에다가 결성되다.

1992년 -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서 발사 성공

1995년 - 대한민국 광복 50주년 맞아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 변경하기로 발표

 

 

8월 12일

1642년 -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다.

1762년 - 영국의 조지 4세, 영국 국왕 탄생.

1851년 - 아이작 메릿 싱어재봉틀에 대한 특허를 얻다.

1877년 - 아사프 홀화성의 위성인 데이모스를 발견하다.

1887년 -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어빈 슈뢰딩거 탄생.

1940년 - 독일, 영국 본토 공습 개시

1960년 - 첫 통신 위성에코 1호가 발사되다.

1961년 - 대한민국,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朴正熙) 의장, 1963년 여름에 민정이양 약속

1981년 - IBMIBM PC의 출시를 발표하다.

1985년 -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일본항공 123편군마 현에 추락, 승객과 승무원 520명이 사망하고 4명이 생존하다.

1993년 - 대한민국,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명령' 으로 금융 실명제 실시.

2000년 - 바렌츠해에서 러시아 해군 소속 핵잠수함 쿠르스크 호 침몰. 승무원 118명 전원 사망함.

2004년 - 리셴룽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하다.

2010년 - 대한민국의 디자이너 앙드레김 사망.

 

 

 

 

 

 

 

 

 

 

   1919년 - 바이마르 공화국바이마르 헌법을 채택하다.

 

 

 

   최근 '기특한'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나치가 헌법을 바꾼 방법을 배우면 어떤가?" 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있었다. 지금도 진행중이고... 그가 말한 '나치가 바꾼 헌법'이 바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바이마르 헌법이다.

 

   1차세계대전이 결국 독일의 패배로 종결되어가며 휴전협상이 시작되었던 1918년 10월... 독일 해군은 휴전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도 큰 작전을 진행한다. 이에 독일 수병들은 그를 거부하고 11월 3일에 독일 북부 '킬 항구'에서 봉기를 일으킨다. (11월 혁명) 1차세계대전 패배에 대한 국민들의 좌절이 왕권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던 상황에서의 이 봉기는, 결국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번지게 되면서 전국적인 반란으로 이어졌고, 11월 4일에는 독일 북부의 '킬'의 지방 정부가 무너지고 '노동자-병사 평의회'로 대체되었으며, 11월 7일에는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 지역에서 독일 사회민주당(SPD)에 의해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되니 그것이 바로 바이마르 공화국이다.

 

   혼란스런 수도 베를린을 피해 바이에른 지역에서 선포된 바이마르 공화국은, 대통령제와 의회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독일 최초의 공화국이다. 사회주의 공화국이면 북한 같은 독재국가 아니냐구? 그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시길.

참고글 : 문명4BTS-(#7-6)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http://blog.daum.net/smileru/8887864

 

   그렇게 바이마르 공화국이 11월 7일에 선포되었고, 11월 9일에는 황제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로 망명하였으며(왼쪽 사진, 11월 9일 베를린), 동시에 '막스 폰 바덴' 총리가 사퇴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에 임시정부 수립 권한을 넘기게 된다. 바이마르 공화국 임시정부를 맡게된 독일 사회민주당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회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려 했고, 과거 세력들의 탄압이나 숙청보다는 화해를 추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것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당연히 있었다. 바로 사회주의내의 사회민주주의 쪽이 아닌, '공산주의' 계열이었다. 훗날의 '독일 공산당'으로 연결되는 '스파르타쿠스단'은, 의회주의와 기존 지배층과의 타협에 반발하며 독일 사회민주당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이후 1919년에 접어들어 봉기를 일으키게 되지만 결국 실패하고, 스파르타쿠스단의 지도자는 1919년 1월 15일에 처형당하고 만다. 

 

   이후 휴전협상이 마무리되면서 1919년 6월 28일에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고(공표는 1920년 1월 10일), 다음해인 1919년 8월 11일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선포되면서 동시에 '바이마르 헌법' 또한 공식적으로 채택되게 된다. 이 바이마르 헌법은 기존의 '비스마르크 헌법'을 기초로 하면서, 국민 기본권에 대한 내용을 추가한 헌법이었다. 그리하여 20세 이상의 투표권, 상원과 하원 등을 명문화 하였으나, '삼권 분립'까지로는 이어지지 않아서 현대 민주주의에 비해서는 대통령이 권한이 굉장히 막강한 그런 헌법이었다. 여튼 이렇게 바이마르 헌법이 선포되면서 전후 사태가 종료되었다. 하지만 모든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가혹했던 베르사유 조약으로인한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빼앗긴 영토는 독일 국민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탄압당했던 좌파, 상황을 정부의 책임이라 주장한 우파로 인해 나라는 혼란스러워져만 갔다. 그래도 바이마르 공화국은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고 외국과의 외교를 정상화하는 등 경제 회복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독일의 경제는 10년도 되지 않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재기한 독일... 하지만 그 흐름은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고난을 이겨낸 그들은 더 강력한 독일을 외치며 민족주의로 뭉치기 시작했고, 이는 1925년에 '왕정 복고파'인 '힌덴부르크'의 당선으로 이어진다. (참고글 : {'11. 10월 첫째주} 힌덴부르크, http://blog.daum.net/smileru/8887950) 하지만 1929년의 '세계 대공황'으로 인한 경기 침체는 왕정 복고파에게도 큰 타격을 주게 되고, 결국 '더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등장하니 그가 바로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다. 1932년 힌덴부르크가 재선되긴 하지만, 이미 상당수의 중도 정치인들은 파시즘의 필요성을 느끼며 그로 전향한 상태였다. 중산층과 노동자, 농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힌덴부르크는 히틀러에게 연합정부(연정)를 제안하여 1933년 1월에 히틀러를 연합정부 총리로 세우지만, 그는 나치당의 세를 더욱 키워주는 결과만 낳았다.

 

   이렇게 국가가 우경화되는 동안 좌파 정치인들은 뭘하고 있었을까? 사회민주당과 공산계열은 과거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 선포 이전에 사회민주당이 공산계열을 탄압한 사건 때문에 우파에 대항하는 과정에서도 불화가 생겨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그 때 연합정부의 총리가 된 히틀러는 1933년 1월 31일에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사회주의 세력이 일으킨 것으로 조작(완전히 조작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선동으로 유명한 '괴벨스'의 첫 작품이라는 말이 많다)하여, 공산당을 금지하고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의 '인권' 부분을 정지시키는 '비상사태법'을 발동시켜 사회주의 세력들을 대대적으로 탄압, 숙청하기 시작했다. 이후 총선에서 나치당이 1당이 되며 승리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끝이였다. 독일에는 '나치'와 힌덴부르크 밖에 남지 않았고, 그래도 명목상 대통령이던 힌덴부르크는 끝으로 '전권 위임법'을 제출한다. 1933년 3월 23일, 나치당 친위대로 둘러싸여 공산당원들이 출입 못한 국회의사당에서, 사회민주당 의원 94명의 반대와, 히틀러 앞에서 진행되어 유명한 사회민주당 수장 '오토 벨스'의 전권 위임법 반대연설을 끝으로, 전권 위임법은 찬성 441, 반대 94의 결과로 통과된다.

 

   전권 위임법은 그냥 '독재' 그 자체의 법이었다. 히틀러는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했다. 공산당 의원들의 의석 박탈과 지방 자치권 박탈은 물론, 4년간 시한부로 정해놓은 전권 위임법 자체도 스스로 다시 갱신하는 전능한 능력을 보였다. 이후의 일들은 뭐...

 

   그래도 바이마르 헌법이 없어지진 않았었다. 유지는 되었지만 히틀러가 바이마르 헌법보다 위에 있었기에 쓸모가 없었다. '유명무실'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후 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패망하면서 완전히 소멸된다.

 

 

 

 

   결국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평화 헌법 개정이나 '집단적 자위권'의 재해석과 관련하여, '나치가 헌법을 바꾼 방법을 배우면 어떻겠는가' 라고 말한 것은 '전권 위임법'을 통과시키면 어떻겠는가, 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아베를 일본의 독재자로 세우고, 이후 바꾸고 싶은 법 다 바꾸자는 이야기다. 소름끼치지 않을 수 없다. 아소 다로 부총리는 결국 파시스트 독재국가로 가자, 라고 말한 것이라는거다. 세계인들은, 일본인들은, 아니 이 글을 보는 당신을 비롯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 의미를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래서 역사를 배워야 하나 싶기도... (국사만이 아니다. 근현대 세계사는 필수다.)

 

   더불어, 우경화의 끝이 어디인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도 어려운 경제 상황속에서 '경제 대통령'을 선출한 바 있다. 그 다음으로는 과거 대한민국의 경제를 크게 성장시킨 지도자의 딸을 뽑기도 했다. 여기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말 경제는 잘 할 수도 있는거고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선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자문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니 우파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차원에서 논쟁할 문제인 것이지만,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인권과 민주주의는 무시되어도 돼, 좌파는 탄압받아야 해' 라는 것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당장 나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단합해야 한다"는 말이 언젠가는 "그러니까 모두 닥치고 내 말대로 해"로 이어지는 것은 순간이라는 걸 잊지 말기 바란다. 사회민주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등장하여 바이마르 헌법에 인권 조항이 추가된 이후, 전권 위임법이 통과되고 독일이 파시즘에 열광하는 국가로 바뀌기 까지는 정확히 14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1950년 - 미국의 프로그래머, 해커,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탄생.

 

 

   스티브 잡스에 대한 영화도 개봉하는 것 같더라? 하지만 대단한 또 한명의 인물이 있으니 바로 '스티브 워즈니악'이다. (왼쪽 사람이다. 진짜다.) 2인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유명한데, 사실 그 유명세도 1인자중 1인자인 스티브 잡스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대단한 사람이다.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의 현대모델이, Paypal을 창업하고 민간우주기술회사 Space X와 전기차로 최근 유명한 Tesla Motors를 역시 창업한 '앨런 머스크'로 알려져 있는데, 스티브 워즈니악도 토니 스타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아이언맨' 만화는 오래전에 나왔고, 당시 실제 모델은 '하워드 휴즈'다. 디카프리오가 열연한 영화 '에비에이터'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일단 워즈니악의 아버지는 냉전시절 군수업체 '록히드' 사의 미사일 엔지니어였다. '토니 스타크' 처럼 군수업체의 CEO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후에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아버지가 엔지니어이며 록히드사에서 미사일 개발 관련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는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 즈음이었다. 따라서 항공 우주 관련 분야는 극비중에 극비였을 터이니 아버지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도 해 줄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매일 직장에 나가 하는 일에 대해 일절 함구하셨다. 돌아가시는 날에도 아버지의 일을 가늠할 만한 실마리를 단 한 가지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워즈니악은 토니 스타크 처럼 천재였다. 그에 대해서는 스스로 이렇게 썼다.

 

   '6학년이 되자 나는 수학과 과학에서 현저한 두각을 나타냈으며 아이큐 검사에서 200이 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이러저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무튼 '천재' 워즈니악은 대단한 공학자였다. 고등학교 4년 후배인 스티브 잡스와 게임업체인 '아타리Atari'에서 만났다가 후에 '애플'을 창업하게 되는데, 애플의 첫 컴퓨터인 '애플I'은 스티브 워즈니악이 다 만든 것이었다. '애플II'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현대 PC를 그가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그럼 스티브 잡스는 뭘했느냐... 기능과 외면에 대한 컨셉을 제공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장사'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뭐 훗날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 스티브 잡스는 제품 홍보 프리젠테이션을 하거나, 앞으로의 제품 디자인과 컨셉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인물이지, 직접 제품을 만드는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 "만드는건 공돌이 니가 해야지!" 뭐 그런 느낌? (물론 기술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 직접 만드는 인물을 애플 초기 워즈니악이 했던거고 말이다.  

 

   훗날 워즈니악은 애플에서 나오게 되고, 잡스로 부터도 안 좋은 기억들을 많이 가지게 된다. 또 돈도 잡스에 비하면 많이 벌지 못했다. (그래도 상당히 부자이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스의 뛰어남을 지속적으로 인정하기도 했을 정도로 뭔가 착한? 대인배? 그런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착한 옆집 아저씨로 유명하다고 하더라. 인상도 좋고 말이지... 뭔가 순수한 열정을 가진 공학자로 보면 될까나?

 

   아무튼 잡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워즈니악은 살아있고, 워즈니악에게 잡스와 같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워즈니악은 또 잡스가 하지 못하는 워즈니악 나름의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그는 이미 유명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유명하지 않은 것은 뭔가 불공평한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잡스가 PC라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시켰을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이 사람이 집집마다 놓을 수 있는 'PC' 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잊지 마시길.

 

 

 

 

 

8월 11일과 12일의 역사

 

- fin -

 

 

 

 

 

오타 수정 (2013.8.11)

 

 

추천? 손가락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