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화주의자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전쟁이 발발함으로 인해서,
어쩌다 서로 국가가 다르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내가 죽임 당하거나, 내가 누굴 죽이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게
정말로 싫을 뿐이다.
응당 모두가 그래야 하는거 아닌가?
- 링 크 -
{7월 첫째주} 7월 1일의 역사
라이프니츠, 유럽공동체
http://blog.daum.net/smileru/8888067
- 순 서 -
108년전, 1905년 6월 30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문을 출판하다.
105년전, 1908년 6월 30일
퉁구스카 폭발사건이 일어나다.
77년전, 1936년 6월 30일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출간되다.
97년전, 1916년 7월 1일
1차 세계대전에서 양군 합쳐 100만명의 사상자를 낸 솜므 전투가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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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과 7월 1일의 역사
Wikipedia
1905년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문을 출판하다.
1936년 -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출간되다.
1967년 - 일본의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현직 총리로서는 최초로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하다.
1985년 - 미국의 올림픽 최초 7관왕,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 탄생.
1999년 -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건이 일어나다.
1646년 - 독일의 수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탄생.
1863년 - 미국 남북 전쟁의 분수령이 되는 게티스버그 전투가 시작되다(~ 7월 3일)
1916년 - 1차 세계대전에서 양군 합쳐 100만명의 사상자를 낸 솜므 전투가 시작되다.
1955년 - 김성환 화백의 시사만화 고바우가 처음으로 동아일보에 연재되다.
1976년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뤼트 판 니스텔로이 탄생.
1991년 - 바르샤바 조약 기구가 공식적으로 해체되다.
1997년 - 영국의 조차지였던 홍콩이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되다.
1905년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문을 출판하다.
오늘은 어쩌다보니 1900년대 초반의 역사를 다루게 된 듯?
상대성이론에 대해서는 블로그에서 이미 너무 많이 이야기 한 것 같다. 아래 링크된 글을 제외하고도 수시로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따라서 딱히 말할 내용은 없다. 단지 기념하고,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말 놀라운 일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과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은 말이다. 그냥 그렇다고 우린 모두 알고 있지만, 상상을 해봐라. 정말 엄청난 과학적 사실아닌가? 생각해보면 생각해 볼 수록, 여전히 경악스러울 정도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넘어서는 이론이 또 나올 수 있을텐데, 그는 얼마나 더 충격적일까? 초끈이론이나 M이론 같은, 우리 우주 밖의 우주와 11차원을 논하는 이론들의 결론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게다가 그를 조금이라도 일상생활에서든 특수목적으로든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말도 안되는 일들이 가능할 것이고, SF영화 정도의 수준은 단번에 뛰어넘어버릴 것이다. 망상같나? 모두가 실현되기 전에는 망상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 망상은 늘 현실이 되어왔고.
뉴욕타임즈에 실린 'Brane Theory'(M이론)에 대한 그림.
- 참고글 -
문명4BTS-(#4-11) 맨하탄 프로젝트, http://blog.daum.net/smileru/8887503
11월 4일과 5일의 역사 - 일반상대성이론, http://blog.daum.net/smileru/8888128
[Cosmos] #3. 빛의 속도를 넘는다고 물리학이 무너지고 타임머신이 가능해지는건 아닙니다. http://blog.daum.net/smileru/8887946
특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고 3년 뒤인 1908년 6월 30일 오전 7시 17분... 북위 60° 55′, 동경 101° 57′ 지점의 숲 상공에서 서쪽 하늘에서 날아오던 불덩이가 공중에서 폭발, 나무 60,000,000여 그루가 파괴되고 1,500마리의 순록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폭발력이 엄청나서, 해당지역에서 450km 떨어진 지역의 기차가 땅울림과 돌풍에 전복되었을 정도였다고... 제주도 하늘에서 뭐가 터졌는데, 용산역 KTX가 전복된 꼴이다. 상상이 되는지?
이는 거대한 운석이 충돌해서 생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0~15Mt정도의 파괴력을 보였는데(히로시마 원폭은 0.01~0.02Mt), 지름이 대략 60m 정도에 달하는 어지간한 아파트 만한 운석이 8km 상공에서 폭발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고 그렇게 많이 알려져있다.
허나 사실 놀랍게도 정확한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일각에서는 일부 목격자들이 '서쪽 하늘에서 날아오던 불덩이'가 직선으로 날아오지 않고 S자로 휘어서 날아왔다는 증언 때문에 UFO의 폭발설까지 나오고 있다고...
아무래도 예전 사건이라 초기에 과학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서 그런 듯 한데, 그러다보니 영문위키에 보면 다양한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물론 다수의 의견은 앞서 말한 운석의 공중폭발이지만, 다음의 '마이너'한 의견도 있다. 2005NB56 혜성이 대기에 충돌했다가 튀어나가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설, 중수소가 농축된 혜성이 대기권에 진입하며 자연적으로 핵융합반응을 일으켜 수소폭탄처럼 폭발했을 가능성, 소형 블랙홀의 충돌가능성, 우주에서 유입된 반물질 덩어리와의 충돌, (어째 갈수록 이야기가...) 지표면으로 나온 1천만톤의 천연가스의 폭발이 그것이다.
역시 이것들은 좀 아닌 듯... 아무튼 왠 숲에 떨어져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도시하나가 그대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글의 분량도 엄청나게 늘어났겠지?
1936년 -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출간되다.
한글 위키에 마거릿 미첼에 대한 내용이 좀 빈약하기에 살짝 몇줄 보태봤다. 재밌는 듯? 자주 위키 편집에 참여해야겠다.
특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기 5년 전, 1900년 11월 8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마거릿 미첼이 태어난다. 어린시절 부터 독서광이었던 그녀는, 남부의 역사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벌어졌던 남북 전쟁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라왔다. 이후 뛰어난 글쓰기 능력을 보였던 그는, 남부의 애틀랜타 워싱턴 신학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드라마,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1918년 워싱턴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여성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의 추천으로 북부의 명문대학인 스미스 대학교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거릿 미첼은 '클리포트 웨스트 헨리'라는 하버드 출신의 젊은 육군 중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헨리는 미첼에게 약혼반지를 주고, 막바치로 치닫고 있던 1918년의 1차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떠나는데, 헨리는 결국 독일군에 의해 1918년 9월 14일에 부상 당했고, 그 부상으로 인해 10월 17일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1차세계대전은 11월 11일에 종결된다)
이후에는 수천만명의 인류를 사망하게 만들었던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미첼의 어머니가 사망하기에 이른다. 어머니의 위독 소식에 북부에서 남부의 고향으로 서둘러 돌아오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지 하루 뒤에 집에 도착하고 말았다. 여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돈 문제로 인해 학업을 이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미첼은 스미스 대학교를 1919년에 중퇴하고 애틀랜타로 돌아오고 만다.
1922년에는 글쓰기 능력을 바탕으로 기자생활을 시작하는데, 그 와중에 애틀랜타 출신의 '업쇼(Upshaw)'라는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알콜중독자였고, 그로 부터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입은채 1924년에 이혼하게 된다.
이후 1926년에는 존 마쉬(Jone Marsh)와 결혼한다. 그 후 미첼은 결혼 전 다친 발목으로 인해 아예 신문사를 그만 두고 전업주부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미첼은 책을 좋아했기에 근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를 본 남편 마쉬는 수천권의 책 대신에 책을 써보라며 타자기를 사주었고, 이것이 시작이 되어 자신의 글쓰기 능력과 어린시절 들은 이야기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이 모든 일들을 결합해 남북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하니, 그것이 바로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였다.
그녀는 무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소설을 썼다. 1926년부터 쓰기 시작한 소설은 1936년에 완성되는데, 사실 소설 스토리 자체는 1935년에 완성되었지만 '맥밀란'이라는 에디터가 이 소설을 출간하기로 결정한 뒤 미첼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해가며 소설 속 사실의 정확성을 높이느라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추가로 걸렸다. 그리하여 1936년에 1037 페이지의 방대한 양에 달하는 마거릿 미첼의 데뷔작이 출간되기에 이른다.
앞서 말한 것 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는 마거릿 미첼의 삶이 녹아있다. 시기는 남북전쟁이 벌어지기 전 부터 시작하며, 그녀의 고향 애틀랜타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속 주인공 여성은 첫 남편이 전쟁에 참가해 전사하는 시련을 맞이하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고통을 겪으며, 이후 가난으로 일을 해야 했다. 다 마거릿 미첼의 이야기들이다.
그러한 한 여성이 전쟁과 함께 겪는 우여곡절의 인생 스토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37년에는 퓰리쳐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대를 다루고 10여개 이상의 남북전쟁 전투를 다룬 서사적, 역사적 소설의 가치를 인정받아서였을 것이다.
아, 그리고 1938년에는 이 소설이 영화화가 된다. 당연히 영화도 인기가 상당했는데, 공교롭게도 1939년에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러브 스토리의 이 영화와 소설이 더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2차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보면 군인들이 보는 흑백영화가 거의 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더불어, 마가릿 미첼은 남북전쟁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적십자사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했고 소설 등으로 얻은 수입을 적십자의 채권을 구매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한 그녀의 노력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인기는, 그녀의 고향이자 소설속 주인공의 '고향'인 '애틀랜타'를 이름으로 하는 해군함정을 두대나 생기게 했다. 애초에 미첼이 함정의 건조를 지원하기도 했다고. 왼쪽 사진은 1941년 'USS 애틀랜타'(CL-51)에 적십자 복장을 입고 승선한 마가릿 미첼인데, 이 배에 이름을 붙였다가 훗날 침몰하자, 1944년에 또 다른 군함 CL-104의 건조를 지원했고 역시 '애틀랜타'라는 이름이 붙였다. 1944년 그 배의 진수식에 미첼은 역시 또 참가했다고.
그렇게 젊은 시절의 불행함을 훗날 그녀의 유일한 소설의 성공과 함께 몇 배로 보상받았고, 그를 군인들을 위한 노력으로 되돌려주려했던 마거릿 미첼... 그런 그녀는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9년 8월 11일에, 남편 존 마쉬와 함께 애틀랜타의 한 영화관으로 향하던 도중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남편도 함께 사망한 듯?)
비극적인 '결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결과적으로 '소설스러운 결말'이기도... 아무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인기는 계속되고 있다. 또 2008년에는 미국인이 성경 다음으로 좋아하는 책에 꼽히기도 했다고... 무엇보다 제목 자체가 정말 멋진 것 같다. 아무래도 그 인기와 상징성은 계속되지 않을까?
1916년 - 1차 세계대전에서 양군 합쳐 100만명의 사상자를 낸 솜므 전투가 시작되다. 특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고 9년 뒤인 1914년, 1차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다행히 특수 상대성 이론의 'E=mc^2' 이라는 공식이 핵무기를 만들어내기에는 일렀고, 대신 독가스가 1915년 4~5월에 독일군에 의해 처음 전장에 투입된다. 그렇게 대량살상양상으로 전쟁이 한창 진행되던 1915년, 프랑스군 최고사령관 조셉 조프르는 또 하나의 대량살상 작전을 계획한다. 독일의 전력을 약화시키고자 독일의 예비병력을 소모시키는 작전이었는데, 애초에 소모전을 감안한, 아니 의도한 작전이었다. 이 작전에 1915년 영국 총사령관 더글러스 헤이그도 동의하게 되면서 부대들이 재편성되게 되는데, 다른쪽에서의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애초에 1916년 8월 1일로 계획되었던 작전이 7월 1일로 앞당겨지게 된다. 그리고 7월 1일이 되자 작전이 시작된다. 프랑스의 '솜' 지방에서 진행된 '솜' 전투의 시작이었다. 우선 당장 공격이 진행되진 않았고, 6월 24일부터 영국군과 프랑스군들이 엄청나게 포격을 해대기 시작했다. 독일군의 참호와 기관총 진지등을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일부 지역에서 본격적인 '솜' 전투에 앞서 지역을 확보하기 위한 보병들의 진격이 이어졌고 소정의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7월 1일, 본격적인 대규모 돌격이 시작되었다. 141일간 펼쳐질 솜 전투의 시작이었다. 첫날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60000명 이상이 다쳤고 그 중 20000명 이상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방어측인 독일군은 10000명 이상이 전사했다. 이후 2주간은 영국-프랑스군에게 재앙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영국군만 60000명이 다치거나 전사했는데, 이에는 생각보다 대규모 폭격이 독일군의 참호와 기관총진지들을 파괴하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었다. 특히 불발탄이 많았다. '솜' 지역에는 뻘 형태의 질퍽한 토양이 매우 많았는데, 그곳에 떨어진 포탄이 뇌관이 작동하지 않고 그대로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7월 11일에 독일군의 첫번째 진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는데, 이 날 부터 독일군은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지원군을 파견해 방어 병력을 2배 이상으로 늘리게 된다. 그 결과 솜 전투는 9월까지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그러다 9월 9일에는 141일간의 솜 전투 기간 중 최대규모의 돌격이 감행된다. 독일군은 130000명 이상이 다치거나 전사했는데,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사상자는 위키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소모전을 누가 당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9월 중순이 되자 상황이 다소 바뀌기 시작한다. 영국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한 것이었다. 바로 '탱크'였다. 최초의 탱크는 솜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50대가 오다가 26대가 고장나 24대만 투입되었지만 바로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9월에는 영국과 프랑스군이 예전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승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곧 탱크도 한계를 보였다. 솜 지역의 질퍽한 토양이 탱크의 진격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탱크가 파괴되거나 독일군에게 빼앗기기도 했다. 이후 영국군은 독일군이 사용한 독가스를 처음으로 솜 전투에 투입하기도 했고, 특수 상대성 이론보다 2년 더 빨리 등장한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를 전장에 폭격기 용도로 처음 투입하기도 했다. 그 결과 소모전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여튼 그렇게 진행되던 솜 전투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야금야금 진격을 하던 도중인 11월 18일에 엄청난 폭설이 내리면서 중단된다. 7월 부터 4개월하고도 보름간 진행된 이 '솜 전투'로 전사한 병사들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합쳐서 146431명, 독일군은 164055명이었다. 전사자를 포함한 전체 사상자는 영국-프랑스군 62만명, 독일군 46만명이었고 말이다. 이 숫자가 감이 안오긴 하지만, 이 숫자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숫자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피해를 내며 영국-프랑스군이 진격한 거리다. 진격한 거리는 12km... 인천대교 길이(18km)보다 짧다. 당시 참호전의 처참함을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해야 하려나? 파란색으로 칠해진 지역이 솜 전투로 영국-프랑스 군이 차지한 지역. 저 지역에서 30여만명이 사망했다. 더 놀라운건, 기어이 30여년 뒤 완성된 특수 상대성 이론을 기반으로 한 '핵무기'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어 생긴 사망자(27만명) 보다, 이 솜 전투의 사망자(30만명)가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핵무기가 단번에 그 만큼을 살상한 것에 더 놀라야 할까? 어찌되었건 양쪽 다 어처구니 없는 결말임에는 분명하다. 정말 이런 역사를 되돌아보다보면, 평화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전쟁의 그 어처구니 없음에 소름까지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역사는 여기까지다.
6월 30일과 7월 1일의 역사 - fin -
현재까지 진행 사항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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