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6월 9일과 10일의 역사 - 라마 9세, 6.10만세운동-6월항쟁-촛불집회 등

스마일루 2013. 6. 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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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이고 뭐고 그런걸 떠나,

우리에게 존경할만한 과거의 지도자,

국가적 스승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 링 크 -

 

없음.

(1년전 작성한 '오늘의 역사' 없음)

 

 

- 순 서 -

 

67년전, 1946년 6월 9일

현존하는 국가 원수 중 가장 오랜 기간동안 재임중인 라마 9세가 타이의 국왕이 되다.

 

6월 10일

대한제국 순종의 장례식을 기해 6·10 만세운동이 일어나다.

대한민국에서 6월 항쟁이 시작되다.

2008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위 사태가 최고조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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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과 10일의 역사

Wikipedia

 

6월 9일

68년 - 네로로마 원로원에 의해 황제 자리에서 쫓겨난 후 자살하다.

1672년 -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 1세 탄생.

1863년 - 미국 남북전쟁게티즈버그 전역: 브랜디 역 전투

1942년 - 체코슬로바키아의 리데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파괴되다. 이 마을은 전후에 다시 재건되었다.

1946년 - 현존하는 국가 원수 중 가장 오랜 기간동안 재임중인 라마 9세타이의 국왕이 되다.

1987년 - 연세대학교 학생인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사건이 발생해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1991년 -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했다.

1999년 - 코소보 전쟁: 유고슬라비아NATO가 평화 협정을 맺다.

2005년 - 경상북도독도의 달을 제정한다.

2007년 -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양준혁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다.

 

6월 10일

1926년 - 대한제국 순종의 장례식을 기해 6·10 만세운동이 일어나다.

1940년 - 베저위붕 작전: 노르웨이독일에 항복하다.

1987년 - 대한민국에서 6월 항쟁이 시작되다.

1990년 - 페루 대통령 선거의 결선투표에서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당선되다.

1998년 - 프랑스에서 FIFA 월드컵이 개막되었다.

2003년 - NASA의 화성 탐사선 스피릿 로버가 발사되었다.

2008년 - 2008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위 사태가 최고조에 이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약40만명 이상이 운집한 것으로 추산.

2010년 -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인공위성인 과학기술위성 2호가 탑재된 나로호가 5시 1분에 발사되었으나 137초후에 통신이 두절되고 페어링 분리 전에 추락했다.

 

 

   1672년 -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 1세 탄생.

 

   참고글 : 5월 26일과 27일의 역사 - 표트르1세&상트페테르부르크

 

 

 

   1987년 - 연세대학교 학생인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1987년 - 대한민국에서 6월 항쟁이 시작되다.

 

   참고글 : 1월 13일과 14일의 역사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6월항쟁

 

 

 

 

 

 

 

 

 

    1946년 - 현존하는 국가 원수 중 가장 오랜 기간동안

   재임중인 라마 9세타이의 국왕이 되다.

 

   '푸미폰 아둔야뎃'은 태국 '짜끄리 왕조'의 '라마 9세'로, 1927년 12월 5일 태어났다. (오른쪽 사진에서 중앙 아이) 어머니가 평민이었는데, 그가 태어나기 몇년전에 부모중에 평민이 있더라도 왕자로 불릴 수 있게하는 법이 통과되면서 왕자로 불렸다.

 

   그가 태어날때에는 그의 삼촌 '프라차티뽁'(라마 7세)이 왕위에 있었다. 삼촌의 재위시절이던 1932년 태국은 절대 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변화하게 된다. 왕의 권위가 크게 약해진 것이지만, 그래도 태국 사람들은 왕에 대한 존경을 계속 가지고 있었고, 훗날 십여차례 이상 발생한 쿠데타들도 왕의 '승인'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었다. 지난주에 언급한 이란의 '종신 지도자' 느낌과 비슷한 듯? 물론 그 정도 급은 아니지만...

 

   아무튼, 라마 9세의 아버지 '마히돈 아둔야뎃'은 하버드대 의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라마 9세가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아 학위를 마친 뒤 태국으로 귀국한다. 이후 태국에 있는 학교를 다니던 라마 9세는, 7살이 되던 1933년에 어머니와 함께 스위스로 가 학교를 계속 다니게 된다. 한편, 라마 9세가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니던 도중인 1935년에는 형 '아난타 마히돈'(라마 8세)가 왕위에 오른다.

 

   1942년에 라마 9세는 스위스 로잔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법학을 배우다가,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1945년에 태국으로 귀국하게 되는데, 1946년, 갑자기 형 라마 8세가 왕궁의 침대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망 당시 미국 장교가 선물한 콜트 45구경 권총을 손질하다 총이 발사되어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는데, 누운상태로 총을 맞았기 때문에 말이 많았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라마 9세가 왕위를 노리고 살해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태국에서는 왕실에 대한 불경죄로 쉬쉬하게 되면서,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채 그냥 묻히고 말았다.

 

   결국 1946년 6월 9일에 라마 9세가 왕위에 오른다. 19살의 나이였다. 이후 큰아버지 '차이낫 랑싯 프라유라삭디'를 '섭정'으로 임명하고 1947년에 스위스로 돌아간다.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전공을 법학에서 정치학으로 바꿔 학위를 마친다.  

 

   그러던 1948년, 라마 9세는 스위스의 도로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치고 오른쪽 눈을 실명하고 만다. 그곳에서 사촌동생이자 프랑스 주재 타이 대사의 딸인 '몸라차웡 시리낏 끼띠야꼰'(왼쪽 사진 여성)이 라마 9세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자주 방문하면서 둘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지게 되는데, 결국 1949년에 약혼식을 올린 뒤 1950년에 4월 28일에 결혼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주일 뒤, 학업으로 미뤄뒀던 왕 즉위식이 거행된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왕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라마 9세는 지금까지 왕위에 있다. 66년간 재위하고 있는 것인데, 이후 십여차례 있었던 군부의 쿠데타 속에서 왕은 태국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오랜 옛날부터 왕의 인기가 상당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결과 오늘날 거의 '신'에 가까울 정도로 추앙을 받고 있는데, 일례로 극장에서는 영화 시작 전에 국왕찬가가 나오고,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 경의를 표한다고 한다.  

 

   여튼 1990년대의 태국 민주화에도 힘썼고, 부정부패로 논란이 있었던 탁신 총리를 거부하며 탁신 총리를 몰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라마 9세... 현재 86세인데, 태국 국민들은 라마 9세가 없다면 태국의 왕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한다. 글쎄, 라마 9세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태국의 입헌 군주제는 어디로 가게 될지, 또 태국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26년 - 대한제국 순종의 장례식을 기해 6·10 만세운동이 일어나다.

   1987년 - 대한민국에서 6월 항쟁이 시작되다.

   2008년 - 2008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위 사태가 최고조에 이름.

 

 

   딱히 할만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눈에 띄더라. 흠... 최근 터키도 난리라지?

 

   일제에 저항한 6.10 만세운동은 애초에 여러 사회 인사들이 조직적으로 계획해, 순종의 장례 행렬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자 군중들이 동참하게 되었고, 6월 항쟁은 1월 박종철군의 사망과 6월 9일 이한열 열사의 사망 이후 6월 10일에 정치인, 종교인, 학생등의 각종 사회 인사 2000여명으로 구성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규탄 집회를 열자 택시와 버스들이 경적으로 호응하고 시민들이 참가하면서 촉발되었다. 2008년의 촛불집회는 광우병쇠고기 논란 이전에 '입시제도 3년전 예고제'가 지켜지지 않은채 입시제도 급변이 시도되자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다.

 

 

   음... 이런거 말고 그냥 시위, 집회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요즘에는 각종 시위들이 '선동'으로 폄하되는 경우가 많다. '배후세력'이야기도 나오고 말이다. 보면 항상 집권층은 배후세력 타령을 하더라. 요즘 터키에서도 그러던데...

 

   자발적인 시위, 집회들도 있지만, 선동이나 배후세력으로 시위가 시작될수도 있다. 6.10 만세운동에서의 민족지도자들, 6월 항쟁에서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도, 일제의 입장에서, 전두환 정권의 입장에서는 배후세력이고 그들이 시위를 선동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선동이나 배후세력이라는 다소 폄하적인 단어가 아니더라도, 분명 애초에 시위를 시작하는 누군가는 당연히 있기 마련이고, 시작된 이후에 자연스러운 조직이 생겨나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으로, 역사를 살펴보면 누가 그 시위를 주도했던간에, 시위가 결국 커지기 위해서는 시위가 커질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었다는 것이다. 별말 아닌 것 같지만 이게 중요한 것 같다. '이유'가 없다면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집회를 제안해도 집회가 커질리가 없다. 집회에 참가하는것은 완전히 개개인의 선택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대적 이슈'에 대해 '분노'하는가에 따라 시위의 확산 여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고, 따라서 시위가 커져 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당위성을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적인 의사표시의 결과랄까? 배후세력이고 선동이고를 따지기 이전에, 집권층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중요한 것으로, 이 역시 역사적으로 검증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결국 집회를 키우는 것은 국가의 폭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작부터 죽창을 들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집회들이 있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집회로 그친다. 대대적인 군중 집회로 확산되지는 못한다는 거다.

 

   그런데도 많은 국가들이 방어적 진압을 하고 해당 사안에 대한 사과와 대책을 발표하는 것으로 집회의 열기를 약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해당 집회들을 '자신에 대한 저항'이라고 단정지어 그를 탄압할 명분(집회 법규 위반 같은 것)을 찾아 해산할 생각만 하고 강경진압하면서, '진짜 자신에 대한 저항'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애초에는 '가치판단'의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어온 사람들이, 폭력이라는 용납받을 수 없는 행위 앞에서 '정의'로 뭉치기 때문에 시위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이다.

 

   결국 진정한 해결책은 정부가 반응을 보이는 것 뿐이다. 작은 규모의 집회라도 해당 부처등이 반응을 보인다면, 생각보다 시위는 쉽게 끝날 수 있다. 설령 초기에만 반짝 반응을 보이고 진짜 문제의 해결이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걸 안하더라. 귀찮게만 생각하고, 애초부터 정치공격이라 폄하하곤 한다.

 

    국가 기관과 지도자가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과 공무원들은 심부름꾼과 같은 것이다. '국민주권'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시키는대로 다 해야 된다는 말은 아니고, 최소한 서비스가 좋은 음식점 처럼, 국민의 의견에 경청하고 반응을 보이고 조금이라도 개선되려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거면 시위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되지 않고 국민들이 어리석은 것으로 폄하한다던지, 시위, 집회에 참가하는 자들을 무시하면 무시할 수록,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6월 9일과 10일의 역사

 

- fin -

 

 

 

 

 

 

오타 수정 (20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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