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6월 23일과 24일의 역사 - 7년전쟁과 유럽, 프레데릭 더글러스, 쿠베르탱과 올림픽의 부활

스마일루 2013. 6. 2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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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은 결론적으로,

훗날 세계대전을 두번이나 일으킬 독일과

그를 제압하고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미국이라는

두 나라의 씨앗을 뿌린셈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떤 사건이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을까?

 

 

 

 

 

 

 

 

 

 

 

- 링 크 -

 

{'12. 6월 넷째주} 6월 24일의 역사

클리블랜드, 최초의 미확인 비행물체

http://blog.daum.net/smileru/8888065

 

 

 

 

- 순 서 -

 

1758년 6월 23일, 1760년 6월 23일

7년 전쟁: 크레펠트 전투.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독일의 크레펠트에서 이기다.
7년 전쟁: 란데슈트 전투.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간에 벌어진 전투. 오스트리아가 승리했다.

 

125년전, 1888년 6월 23일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공화당의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로 지명되다. 


1894년 6월 23일

프랑스의 역사학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주창에 의해

고대 올림픽 부활을 위한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설립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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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과 24일의 역사

Wikipedia

 

6월 23일

1314년 - 배넉번 전투가 일어나다.

1534년 - 일본 센고쿠 시대 무장 오다 노부나가 탄생.

1758년 - 7년 전쟁: 크레펠트 전투.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독일크레펠트에서 이기다.

1760년 - 7년 전쟁: 란데슈트 전투. 오스트리아프로이센 간에 벌어진 전투. 오스트리아가 승리했다.

 

 

1887년 - 캐나다 의회가 로키 산맥 공원법을 통과시켜 캐나다의 첫 국립공원인 밴프 국립공원이 만들어지다.

 

1888년 -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공화당의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로 지명되다.

1894년 - 프랑스의 역사학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주창에 의해 고대 올림픽 부활을 위한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설립되다.

1894년 - 미국의 동물학자 알프레드 킨제이 탄생.

1912년 - 미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 탄생.

1925년 - 중국 광저우에서 반제국주의 시위대에 영국군이 발포하여 50여 명이 사망했다.

1940년 -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 아돌프 히틀러가 점령한 프랑스의 파리 시를 방문하다.

1942년 - 제2차 세계 대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가스실에서 최초로 처형당할 첫 번째 유태인들이 파리 시에서 열차에 실리다.

1961년 - 남극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 행동 금지를 담고 있는 남극 조약이 발효되다.

1967년 - 경기도청수원으로 옮겨졌다.

2009년 - 대한민국에서 5만원권이 시중에 유통된다.

 

 

 

6월 24일: 베네수엘라카라보보 전투 기념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79년 - 티투스가 로마 황제가 되다.

1340년 - 백년 전쟁: 슬로이스 해전이 일어나다.

1662년 - 네덜란드마카오의 무력 점령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다.

1910년 - 대한제국의 경찰사무가 일본 제국에 이양되다.

1911년 - 마추 픽추가 발견되다.

1947년 - 알려진 것 가운데 최초의 미확인 비행 물체 목격: 케네스 아놀드미국 워싱턴 주에서 찻잔 모양의 빛나는 비행 물체 아홉 개를 목격하다.

1987년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 탄생.

2009년 - 대한민국에서 첫 존엄사가 실시되다.

 

 

 

 

 

 

 

 

   1758년 - 7년 전쟁: 크레펠트 전투.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크레펠트에서 이기다.

   1760년 - 7년 전쟁: 란데슈트 전투. 오스트리아프로이센 간에 벌어진 전투.

 

 

   7년전쟁(1756-1763)은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패배해 슐레지엔을 빼앗긴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과 벌인 전쟁...이나 결국 유럽 나라들이 우르르 참가하게 되면서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에서도 전투가 벌어지는 등, 전장의 규모면에서는 1차 세계대전보다도 큰 전쟁이었다.

 

   참고글 : 문명5G&K-(#1-티져) 마리아 테레지아, http://blog.daum.net/smileru/8888076

   본래 전쟁 자체는 1755년 북아메리카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놓고 전쟁을 벌이면서 시작되었다. 영국은 동맹관계이던 오스트리아와 결별하고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었는데, 그렇게 되자 반대로 오랫동안 대립중이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동맹을 맺으면서 대항하기 시작하고, 이 싸움에 스웨덴과 러시아가 가담하고 전쟁이 벌어지면서 소국들까지 휘말려, 결국 '오스트리아-프랑스-작센-스웨덴-러시아-나폴리' vs '프로이센-하노버-대영제국-이로퀴-포루투갈-헤센'이 대결하는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그 와중에 있었던 전투가 1758년 6월 23일의 크레펠트 전투, 1760년 6월 23일의 란데슈트 전투다. 그런데 사실 별로 중요한 전투는 아닌지, 위키에 특별한 내용도 없다.

 

   여튼 유럽에서의 전쟁은 전반적으로 소모전 양상을 보였는데, 전쟁을 처음 유발한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의 전장보다는 아메리카 식민지 전장을 신경쓰게 되면서 발을 빼던 전쟁 후반, 러시아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 사이에서 태어난 여제, 옐리자베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러시아군이 철수하게 되면서 프로이센 쪽이 승기를 잡게 된다.

 

   한편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프랑스군이 초반에 승승장구 하지만, 프랑스 군이 영국 본토를 침공하려는데 집중하던 시기, 영국은 유럽에서는 프로이센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프랑스 군을 차단하고 아메리카에 집중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전쟁 후반 영국군이 승승장구하면서,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아메리카 식민지를 완전히 몰아내는 성과를 얻게 된다.

 

   이 7년전쟁은 유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선 프로이센은 대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훗날 '프리드리히 2세'의 전술은, 근 200년 뒤 독일 나치가 일으킨 2차세계대전에서 '전격전'으로 거듭나게 된다.

 

   한편 프랑스와 영국은 전쟁 후 막대한 빚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자국 내의 세금으로 부채를 메꿔가려 했고 귀족들에게까지 세금을 거두려 했는데, 이는 결국 7년전쟁이 종결되고 26년뒤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영국은 프랑스로 부터 얻은 식민지로 부터 세금을 거두려 했는데, 이는 마찬가지로 7년전쟁이 종결되고 12년 후에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독립을 외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그렇게 '미국'이 탄생하게 된다. 미국도 걸프전과 이라크전쟁으로 안그래도 증가추세이던 빚이 폭증했고, 근래의 금융위기가 그를 증폭시켜 세금논란이 계속 되고 있는 상황이던데, 1, 20년 뒤에 미국은 어떻게 될까? 

 

 

 

 

 

 

 

   1888년 -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다.

   -> 수정 : 1888년 -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공화당의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로 지명되다.

 

   링컨이 암살되고 23년이 흐른 1888년 6월 23일, 대선에 나갈 공화당 대선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켄터키 주에서 '한 표'를 받아 대선 경선 후보로 지명된다. 위키에는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고 쓰여있던데, 찾아보니 정확히는 공화당 경선 후보가 된 것이더라. 수정했다. 여하튼 경선에서 승리해 대선후보가 되지는 못했다.

 

    과거로 돌아가... 원래 프레데릭 더글러스는 흑인 노예 어머니와 백인 주인 아버지 사이에서 1818년에 태어났다. 결국 노예가 되었지만 스스로 공부하여 글을 깨우쳤고, 결국 20살이 되던 1838년에 농장에서 도망쳐 사랑하던 흑인 여인과 함께 뉴욕으로 향했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프레데릭 베일리에서 프레데릭 더글러스로 바꾼다. 흑인 여인 '안나 머레이'와 결혼도 한다.

 

   이후 일찍이 스스로 글을 깨우쳤던 프레데릭 더글러스는 노예제 폐지에 대한 연설을 하기 시작했는데, 뛰어난 연설로 유명해지게 된다. 그리고 1845년에는 자서전을 발간하게 되는데, 결국 그 자서전으로 인해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노예 신분임이 밝혀지면서 추적을 당하게 된다. 프레데릭 더글러스는 추적을 피해 영국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새롭게 사귄 친구들이 700달러를 대신 내 주어 1846년, 26살에 노예신분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오른쪽이 그 무렵의 사진)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연설가로의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시작되자 링컨은 더글러스에게 연설을 요청한다. 이에 더글러스는 요청을 수락, 노예제 폐지와 흑인들의 전쟁참여에 대한 연설을 했고, 많은 흑인들이 링컨의 북군에 참가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북군이 승리하게 되고, 더글러스는 링컨의 상담역으로 활동하게 된다. 링컨은 암살되고 말지만, 이후 20년간 미국 대통령의 상담 역할을 하면서 흑인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동시에 1877년에는 컬럼비아 특별구 경찰서장, 1888년에는 공화당 경선 후보, 1889년에는 아이티 공사 등으로 활동하는데, 이렇게 미국 정부 고위직에서 활동한 흑인은 처음이었다.

 

   말년에 그의 활동은 인권 전반으로 까지 넓어져, 1894년에는 미국의 사형제도를 규탄하는 '마지막 연설'이라는 연설문을 발표하는데, 이는 정말로 그의 마지막 연설이 되어, 1895년 2월 20일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더글러스는 흑인 인권운동을 위해 노력했고, 정치무대로 진출해 그를 도왔으며, 링컨이 노예제를 폐지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뿌리깊은 미국인의 차별의식은 사라지지 않았었다. 허나 50여년 뒤인 5, 60년대에는 마틴 루터 킹이 남은 그 의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다시 50여년이 흐른 뒤에는 더글러스와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에 이른다. 100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아니 사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눈에 띈 사람들 몇몇과 눈에 띄지 않은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흑인들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1894년 - 프랑스의 역사학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주창에 의해 고대 올림픽 부활을 위한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설립되다.

 

   1863년에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교육자이자 역사학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청년시절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을 하다 스포츠가 청소년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오늘날에는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그를 깨달은 1883년 20살의 쿠베르탱은 스포츠가 건강은 물론, 단체 플레이와 페어 플레이 정신이 사회성과 도덕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를 통해 프랑스 교육 현장에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런데 그 무렵, 1875년에 독일인들에 의해 발견된 그리스 유적, '올림피아'가 고대 그리스 올림픽 장소였음이 밝혀진다. 그 소식을 들은 쿠베르탱은 고대올림픽을 부활시켜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에 1892년 올림픽 부활의 구상을 발표하고, 기어이 1894년 6월 23일에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 즉 'IOC'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IOC를 설립하려 할 때 쿠베르탱은, 첫 올림픽 개최지를 모국인 프랑스의 파리로 하려 했다. 하지만 쿠베르탱의 뜻에 동의해 IOC 설립 추진에 동참했던 그리스의 사업가 '드미트리우스 비케라스'는, 첫 개최지가 고대 올림픽이 이뤄졌던 그리스 아테네여야 한다고 쿠베르탱을 설득한다.

 

   쿠베르탱은 그에 동의한다. 결국 1894년 6월 23일 IOC의 설립과 동시에, 만장일치로 1896년 제 1회 올림픽 개최지가 그리스 아테네로 결정된다. 그렇게 한 교육자이자 역사학자의 노력으로, 393년 제 293회 올림픽을 끝으로 1503년간 중단되었던 올림픽은 부활하게 되었고, 세계 최대의 축제로 거듭나게 된다. 그로 인해 수 많은 스포츠 인들, 관련 산업들이 빠르게 육성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겠다. 크, 정말 멋진 듯.

 

   여튼 IOC 초대 위원장으로는 아테네에서 1회 올림픽이 개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비케라스가 추대되었고, 쿠베르탱은 2대 위원장을 맡는다. 쿠베르탱은 나중에 국제 교육학 협회를 설립하기도 했다고. 오늘은 여기까지.

 

 

 

 

 

 

 

6월 23일과 24일의 역사

 

- fin -  

 

 

 

 

 

 

오타 수정 (201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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