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7월 7일과 8일의 역사 - 솔로몬 제도 독립과 한글, 코난 도일과 셜록 홈즈, 월스트리트저널 창간

스마일루 2013. 7. 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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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에 영국에 의해 섬들이 솔로몬 제도로 묶여 보호령이 되었고,

100여년도 되지 않은 1978년에 그들은 독립에 성공한다.

 

하지만 독립 이후 서로 언어조차 다른 섬들간의 갈등은 불안을 낳았고,

그들은 결국 2012년에 언어를 한글로 통일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긴 되겠지?

뭐 같은 한글 쓰는 우리나라가 개판이라 좀 민망하긴 하다만...

 

 

 

 

 

 

- 링 크 -

 

{7월 둘째주} 7월 8일의 역사

바스코 다 가마, 록펠러

http://blog.daum.net/smileru/8888071

 

 

 

 

- 순 서 -

 

83년전, 1930년 7월 7일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사망

 

35년전, 1978년 7월 7일

솔로몬 제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다.

 

124년전, 1889년 7월 8일

월 스트리트 저널의 초판이 발행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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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과 8일의 역사

Wikipedia

 

7월 7일

1456년 - 잔 다르크화형당한 지 25년 만에 사면받다.

1887년 - 러시아 표현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 탄생.

1898년 - 미국하와이를 자국의 영토로 병합하다.

1930년 -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사망.

1937년 - 노구교 사건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한다.(~ 1945년)

1937년 - 일본의 소설가, 작가 시오노 나나미 탄생.

1970년 -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이 개통되다.

1971년 - 백제 무령왕릉이 발굴되었다.

1974년 - 다나바타 호우가 발생했다.

1978년 - 솔로몬 제도영국으로부터 독립하다.

1980년 - 중국계 미국인 피겨 스케이트 선수 미셸 콴 탄생.

2005년 - 영국에서 G8 정상회의가 개최되던 중 런던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다.

2011년 -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다.

 

 

7월 8일

1497년 - 바스코 다 가마인도를 향한 항해에 나서다.

1833년 - 러시아오스만 제국운키아르 스켈레시 조약을 체결하다.

1839년 - 미국의 사업가 록펠러 탄생.

1889년 - 월 스트리트 저널의 초판이 발행되다.

1967년 - 대한민국중앙정보부동백림 사건을 발표하다.

1994년 -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이 사망하다.

2011년 - NASA의 마지막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 호가 발사되면서 미 항공우주국의 우주왕복선 프로젝트가 끝을 맺음.

 

 

 

 

 

   1898년 - 미국하와이를 자국의 영토로 병합하다.

 

참고글 : 11월 18일과 19일의 역사 - 게티즈버그 연설, 파나마운하와 미국의 대전략, http://blog.daum.net/smileru/8888140

 

 

   1937년 - 노구교 사건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한다.(~ 1945년)

 

참고글 : 1월 27일과 28일의 역사 - 일본이 가장 강력했을 때, http://blog.daum.net/smileru/8888195

 

 

 

 

 

 

 

 

 

 

 

   1930년 -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사망.

 

   지난 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가릿 미첼에 이어 또 다시 소설가 이야기다. 길진 않은데...

   추리소설 '셜록 홈즈'로 유명한 아서 코난 도일... 명탐정 '코난'과 남'도일'이 떠오르는데...

 

   코난 도일은 1859년 5월 22일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알콜 중독은 가족을 불우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누추한 아파트에서 살기도 했지만 부유한 삼촌의 도움으로 학교도 다니고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는 17살이 되던 1876년부터 1881년까지 에든버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는데, 그 때 부터 짧은 단편소설을 써 잡지에 투고했다. 하지만 짤막한 첫 소설인 "Goresthorpe의 유령 '그레인지'"는 잡지사로부터 거부당했는데, "Sasassa 계곡의 미스터리"라는 소설은 다행히도 잡지에 실릴 수 있었고 이것이 코난 도일의 출간된 첫 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1882년 부터는 의학 박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동시에 의료실습을 시작하는데, 이 때부터 환자를 기다리면서 본격적으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 무렵 쓴 소설들 중 일부는 미완성작품으로 남아 2011년까지 출판되지 않기도 하는데, 그러던 1886년에 출간한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가 몇몇 신문들로 부터 좋은 평을 받으면서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 '주홍색 연구'는 탐정 '셜록 홈즈'와 친구이자 의사인 '왓슨'이 등장하는 코난 도일의 첫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서 의사 '왓슨'은 당연히 의학박사인 코난 도일 자기 자신의 투영이기도 했고, '셜록 홈즈' 역시 잡학다식한 코난 도일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주홍색 연구'에서 왓슨은 셜록 홈즈의 지식 수준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문학 - 전혀 모름
 천문학 - 전혀 모름
 정치학 - 허약함

 식물학 -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만 잘 아는 편, 독초나 아편 등에는 해박하나 정원사로서는 실격
 지리학 - 특정분야에 대해서 박식함. 언젠가 나(왓슨 박사)에게 런던 각 지역의 먼지를 구분하여 보여 줌
 화학 - 해박함
 생물학 - 박식하나 체계적이진 않음
 바이올린 - 수준급
 목검술, 권투, 검도에 능함
 영국법에 해박함
 철학 - 전혀 모름
 범죄 관련 문헌 - 놀라 자빠질 정도 

 

   이후 셜록홈즈는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당시의 추리 소설, 범죄 소설, 법정 소설들은 '알리바이', '정황'에 주력한 반면, 셜록홈즈 시리즈는 사소한 증거들의 모음을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전례없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실제 사건 수사의 발전 방향과도 일치하는 듯? 아무튼 그러한 방식 자체도 흥미로울 뿐더러, 그러한 증거를 찾아내는 셜록홈즈의 모습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외에 동시대를 소설의 배경으로 하여 각종 실제 사건들과도 연관을 시키고, 년도나 날짜도 세세하게 정하는 등 디테일함이 살아있던 것도 인기의 요인 중 하나였다.

 

   그렇게 1886년의 '주홍색 연구' 이후 셜록홈즈 시리즈가 인기를 끌게되었고 코난 도일은 말그대로 '성공'하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다른 소설이나 다른 분야의 글들이 셜록홈즈 때문에 묻혀버리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고, 그 때문에 셜록홈즈 시리즈를 끝내고자 1894년 단편집 '셜록홈즈의 회상록'에 등장하는 12편의 단편중 마지막 단편인 '마지막 사건'에서, 셜록홈즈를 홈즈의 숙적인 '모리어티 교수'와 함께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떨어져 죽는 것으로 처리해버린다. (이후 라이헨바흐 폭포는 엄청난 관광지가 되고, 그곳에는 영국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이 끔찍한 장소에서 1891년 5월 4일, 셜록 홈즈가 모리어티 교수를 사라지게 하다" 라는 명판이 세워지게 된다.)

 

   하지만 셜록홈즈가 등장한지 8년만인 1894년에 그의 죽음으로 소설이 끝나자 독자들이 난리가 났고, 결국 7년뒤인 1901년에 셜록홈즈 사망 이전을 배경으로 한 '바스커빌 가문의 개'라는 소설을 한차례 출간하지만, 이는 '셜록홈즈 부활'요구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1905년에 '셜록홈즈의 귀환'이라는 단편집에서 홈즈는 폭포에서 추락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으로 처리되어 다시 등장하게 되며, 이후 '다시는 죽지 않았다.'

 

   한편, 1900년대 이후 부터 코난 도일은 초자연현상이나 심령현상 같은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1906년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1918년에는 1916년의 '솜 전투'(참고글 : 6월 30일과 7월 1일의 역사 - 솜 전투, http://blog.daum.net/smileru/8888297)에서 심각하게 부상당한 그의 아들 '킹슬리 도일'이 장기 치료 중 폐렴으로 사망하게 되며, 1920년대에는 그의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심령술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이르렀던 1930년 7월 7일, 심령술에 통달했다며 자신에 집 연단에서 연설을 하려던 중, 심장마비로 인해 가슴을 쥐고 쓰러진 채 발견 되었고, 두번째 아내인 니나에게 "You are wonderful."이라는 말을 남기고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뭔가 좀 당황스러운 결말이긴 한데, 다행히 셜록홈즈가 필요한 그런 결말은 아닌듯? 아무튼 말년에는 심령술에 심취했었지만, 증거의 중요성과 관찰을 통한 추리의 재미를 알려준 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1978년 - 솔로몬 제도영국으로부터 독립하다.

 

 

   솔로몬 제도는 오세아니아 대륙 북동쪽에 위치한 인구 50만명의 섬나라다. 1800년대 중반부터 영국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1890년대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데, 영국이 주변의 섬들을 합쳐 '솔로몬 제도'라는 보호령을 만들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 솔로몬 제도는 영국의 보호령 상태이던 1942년에,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게 점령당해 통치자 '툴라기'가 살해당하고 격렬한 해전으로 큰 피해를 입는 수난을 당한다. 다행이 일본은 패망하여 물러가게 되고 태평양 전쟁 종전 이후 솔로몬 제도 주민들은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결과 1970년부터 조금씩 자치권을 얻기 시작해, 1975년 자치정부로 승인되었고, 1978년에 7월 7일에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도 잠시, 두개의 큰 섬인 '과달카날'과 '말라이타' 주민들 간의 갈등은 크지도 않은 섬에서의 내전으로 이어졌고, 수천명의 사망자를 낳는다. 이에 2002년에 호주가 개입하여 내전을 종식시키지만, 여전히 정치갈등은 극심하여 쿠데타가 일어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덕분에 경제적으로도 최빈국이라고.

 

   그런 과달카날과 말라이타 주민들간의 오랜 갈등은 사실 이해도 되는 것이, 애초에 다른 부족으로 살아가던 두 섬 사람들이 영국에 의해 강제로 묶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간 역사가 100여년 정도밖에 안되는 상황... 게다가 심지어 과달카날 주민들은 언어로 '카리어'를 사용하고, 말라이타 주민들은 '꽈라아에어'를 사용해 언어조차 다르다.

 

   이에 2012년 과달카날과 말라이타의 주지사가 모여 서울대학교에 한글을 보급해달라고 요구했다. 섬나라 원주민들의 언어가 제각각이고 문자가 없어 문맹율이 98%에 이르다보니 안 생길 갈등도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 서울대학교는 요청을 받아들여, 이호영 언어학 교수 등이 따라 한글 보급운동을 현재 진행하고 있다 한다. 언어의 통일을 통해 기록과 의사소통이 수월해지게 되면, 오랜 솔로몬 제도의 갈등도 끝이 나게 될까?

 

 

 

 

 

 

 

 

 

   1889년 - 월 스트리트 저널의 초판이 발행되다.

 

   1889년 7월 8일, 월 스트리트 저널의 초판이 발행된다. 창간자는 다우존스 컴퍼니의 공동창업자인 '찰스 다우'로, 기업과 금융 관련 취재 및 보도를 하기위한 목적이 있었다. 참고로 '다우존스 컴퍼니'는 1884년에 우량주식 평균값인 '다우존스식 주가지수'라는 최초의 주가표현 방식을 만들어냈고, 1897년에는 시장 전체의 동향을 살피는 '다우존스평균'을 만들어낸 회사다. 아무튼 경제, 금융관련 회사라는 이야기고 거기에서 만든 신문이 '월 스트리트 저널'이라는 거다. 우리나라 경제신문 생각하면 될 듯? 우리경제신문들도 월 스트리트 저널 따라하느라 무슨 주가지수 같은거 만들고 그러던데... 기사나 잘 쓰지.

 

 

1889년 7월 8일 월 스트리트 저널 Vol. 1. - No. 1. 

 

 

 

   아무튼 초기에는 기업과 금융시장에 대한 정확하고 심도 있는 기사로 인기를 얻었던 월 스트리트 저널이었지만, 1920~30년대의 대공황을 거치면서 경제 외적인 문제도 '특집기사' 형태로 다루기 시작했고, 1940년대 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경제 외의 기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0년대에 들어서는 1면에 싣는 2가지 특집기사에서 경제 뉴스를 간간히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경제소식이 줄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다른 뉴스에 대비해 봤을때 경제뉴스는 분명 많은 편이었고, 특히 특집 기사나 사설등에서의 심층있는 보도는 여전했다. 오히려 그러한 성격이 다른 분야의 뉴스로 연결되어, 정치, 사회, 외교 등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기사를 내보내왔고, 월 스트리트 저널은 창간 이후 퓰리처 상을 26회나 수상하게 된다.

 

   그런 월 스트리트 저널은 최근까지 미국내에서 발행 부수 1위를 유지해왔는데, 2007년부터 'USA 투데이'와 엎치락 뒤치락하기 시작했지만 다시 1위를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말이 나온김에 'USA 투데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USA 투데이는 1982년 창간된 신문으로 월 스트리트 저널에 비해 100년이나 젊은 신문이지만, 젊은 신문답게 기사들을 인포그래픽으로 화려하게 구성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보면 정말 멋지다. 한번 찾아보시길. 또 미국의 신문들이 큰 땅덩어리 때문인지 지역을 기반으로 발행되는데, 이 신문은 창간 당시부터 전국 신문 목표로 걸었고 그것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1982년 9월 15일, USA 투데이 창간호

 

 

 

   참... 이런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 신문들은 아직 먼 것 같다. 그나저나 중앙일보와 한겨례 신문이 사설을 주고받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USA 투데이처럼 '이쁘고 깔끔하게' 만들거나, 월스트리트 저널 처럼 '깊이 있게'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어찌된게 우리 나라 신문은 아우성 뿐인 듯 하다.

 

 

 

 

 

 

 

 

 

  

7월 7일과 8일의 역사

 

- fin -

 

 

 

 

 

 

 

오타 수정 (20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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