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긍정적인 쪽으로든, 부정적인 쪽으로든...
수 많은 역사가 그를 증명한다.
지도자의 의지와 수고만 있다면,
민주주의 국가도 충분히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럴텐데,
아직 내 눈으로 그를 보진 못했다.
보고 싶다.
- 링 크 -
없음.
(작년 휴재)
- 순 서 -
1558년전, 455년 6월 2일
반달족이 로마를 약탈하다.
127년전, 1886년 6월 2일
그로버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결혼식을 올리다.
72년전, 1941년 6월 2일
미국의 야구 선수 루 게릭 사망.
24년전, 1989년 6월 3일
이란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사망.
추천? 손가락 클릭!
6월 2일과 3일의 역사
Wikipedia
1886년 - 그로버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결혼식을 올리다.
1897년 - 마크 트웨인이 뉴욕 저널 지에 ‘내 죽음에 관한 기사는 크게 과장된 것’이라고 기고하다.
1946년 - 이탈리아가 국민투표를 거쳐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체제를 바꾸다.
1953년 -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이 처음으로 TV에 중계되다.
1992년 - 덴마크가 국민투표를 거친 끝에 마스트리흐트 조약 비준을 부결하다.
1839년 - 청나라의 임칙서가 120만kg의 아편을 폐기함으로써 제1차 아편 전쟁을 촉발시키다.
1853년 - 페리 제독이 흑선을 타고 도쿄 우라가(浦賀)에 내항하다.
1899년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사망하다.
1961년 -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총리와의 첫 회담을 가지다.
1983년 - 일본 프로 야구 한큐 브레이브스의 후쿠모토 유타카가 통산 939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다.
1989년 - 이란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사망.
1997년 - 리오넬 조스팽이 프랑스의 총리로 취임하다.
음... 오랜만에 짧게 여러 이야기들을 다룰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난 한개를 깊게 다루는 것 보다는 짧게 여러개 다루는 걸 더 좋아한다. 그게 더 재미있더라. 그런데 막상 하려 하니 별로 할 것이 없다. 흠... 아무튼 오늘은 가볍게.
원래 흑해주변,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방에 살던 반달족은, 400년대에 문명5에도 나오는 훈족 '아틸라'가 동쪽에서 밀려오자 독일-프랑스 지역으로 이동해 프랑크족과 전쟁을 벌였으며, 이후에는 스페인 지역으로 이동해 알란족을 굴복시키고 정착한 뒤, 해적으로 변신해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 동유럽에서 중부유럽, 서유럽으로 이동한 뒤 북아프리카까지 이동한 것이다.
로마제국이 훈족 아틸라에 전력을 다하는 사이 로마 주변을 휩쓴 것인데,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한 반달족은 435년에 로마와 동맹을 맺지만, 4년만인 439년에 동맹을 깨고 한때 로마가 소금을 뿌려 불모지로 만들었던 '카르타고'를 수도로 한 '반달왕국'을 건설한다. 그리고 대규모 함선을 건조해 로마제국의 영토를 공략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453년, 아틸라가 죽자 로마도 이제 반달왕국에 집중하게 되는데,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생각에서였는지는 몰라도, 455년에 반달족은 로마를 침공한다. 그 결과 로마를 점령해 약탈하는 기염을 토하게 되는데, 이 때 교황 '레오 1세'는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와 대면하여 말로 담판을 벌여, 반달족이 로마의 시민을 학살하고 건물을 불태우는 것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대신 각종 재물들이 반달족 군인들에 의해 싹 쓸려버렸다고...
여튼 레오 1세가 반달족과 담판을 벌인 부분은 정확하진 않다고 하는데, 레오 1세는 452년에 로마 근처까지 온 훈족 아틸라에게도 담판을 벌여 물러나게 했다 하니 가능성이 적지는 않아 보인다. 그나저나 무슨말을 했을까?
반달족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로마를 약탈하는 성과까지 거둔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가 죽자 쇠퇴하기 시작해, 북아프리카에 고립되었고, 534년에 문명4에 나오는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멸망당한다. 역시 문명 지도자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 듯.
참고로 반달족의 영어명은 Vandals다.
1886년 - 그로버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결혼식을 올리다.
미국의 22대 대통령이자 훗날 24대 대통령도 지낸 민주당의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동료 변호사였던 '오스카 폴섬'이 1875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가족들을 돌보고 재산을 관리했는데, 그러다 오스카 폴섬의 딸(!!) '프랜시스 폴섬'과 연인이 되어, 1885년에 청혼, 1886년 6월 2일에 백악관에서 결혼하였다. 재혼이 아닌 첫 결혼이었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50살, 프랜시스 폴섬은 21살이었다. 역대 최연소 영부인이라고.
미국의 야구선수 '루 게릭'이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에 걸리자 이 병이 '루 게릭'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걸린 '병'만 기억되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엄청난 선수였다. 말 그대로 전설의 선수였는데, 위키의 내용이 생각보다 정말정말 충실하다. 한번 전문을 꼭 읽어보시길.
1989년 - 이란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사망.
1900년 태어난 호메이니는, 이란내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가 된 뒤 이란 황제 '샤 팔라비'의 여성해방정책 등에 반대하며 이슬람 사회는 이슬람 율법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줄곧 해왔다. 결국 1979년 이란 황제 '샤 팔라비'가 민중혁명으로 밀려나게 되자, 황제에 의해 터키로 추방당했던 호메이니는 이란으로 돌아와 '종신 최고지도자'가 된다. 1980년에 대통령이 선출되긴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이란이라는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따로 있는 것이고, 그는 이슬람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군통수권, 입법, 사법, 행정 관련 최종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결국 아마도 터키와 유사한 길을 갔을지도 모를 이란은 완전히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 변하고 만다. 호메이니는 철저한 이슬람 국가를 만들고자 했고, 술, 담배, 여자, 서구적 가치관 등에 대해 극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그 결과 우리 시각에서 볼 때 이란은 뭔가 퇴보했다 싶을 정도로 급변한다.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물론, '샤 팔라비' 시절과 달리 미국과도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것이 10년만에 모든 것을 바꿔놨고 오늘날의 이란을 만들었다. 그래도 호메이니 역시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고 하니, 글쎄, 이슬람인들의 시각에서는 이슬람식의 유토피아를 완성한 것이고 그에 걸맞는 지도자와 함께했던 것일까?
여튼 호메이니는 혁명 10년만인 1989년 6월 3일에 테헤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고,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이란의 대통령이자 호메이니의 후계자인 '알리 하메네이'가 곧바로 '종신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물론 변한 것은 없다. 호메이니 이후 이란은 근본적으로 변했으며, 호메이니의 이란은 계속되고 있다. 아마 이슬람교와 함께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6월 2일과 3일의 역사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추천? 손가락 클릭!
'오늘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 16일과 17일의 역사 - 물리학자 이휘소 사망,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e하루616 시작 (0) | 2013.06.16 |
---|---|
6월 9일과 10일의 역사 - 라마 9세, 6.10만세운동-6월항쟁-촛불집회 등 (0) | 2013.06.07 |
5월 26일과 27일의 역사 - 표트르1세&상트페테르부르크,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종료 등 (0) | 2013.05.25 |
5월 19일과 20일의 역사 - 인류역사 전환의 대흐름 : 앤 볼린, 잉글랜드 공화국 (0) | 2013.05.17 |
5월 12일과 13일의 역사 - 국제 간호사의 날, 나이팅게일이 위대한 이유 (0) | 2013.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