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무서운 인상을 가진 나이팅게일.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녀는 늘상 검은 옷만 입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헌신적인 간호사로 기억하고 들어왔지만,
그것은 나이팅게일에 대한, 그리고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다.
그녀를 '천사'라고 부르는 것은,
간호의 '신'을 평가절하하는 일이 아닐까?
- 링 크 -
296년전, 1717년 5월 13일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탄생
{'12. 5월 둘째주}, http://blog.daum.net/smileru/8888046
- 순 서 -
193년전, 1820년 5월 12일
영국의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태어나다.
5월 12일: 국제 간호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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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과 13일의 역사
Wikipedia
1797년 - 베네치아 공화국이 나폴레옹 1세에 의해 멸망하다.
1820년 - 영국의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태어나다.
1925년 - 일본 제국이 치안유지법을 시행하였는데 이 법은 해방 뒤 국가보안법으로 이어진다.
1956년 - 19시 30분 황태영이 설립한 KORCAD(코캐드)방송국이 대한민국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다.
2008년 - 중화인민공화국 쓰촨 성의 성도인 청두에서 북서쪽으로 약 90㎞ 떨어진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7.9의 쓰촨 성 대지진이 일어나다.
5월 13일: 많은 국가에서의 어머니날(2012년), 피지의 로투마의 날
1717년 - 오스트리아의 여제(女帝)·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탄생.
1830년 - 에콰도르가 대 콜롬비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선언하다.
1888년 - 이사벨 공주가 황금법(Lei Áurea)에 서명함으로써 브라질에서의 노예제를 공식적으로 폐지시키다.
1940년 - 런던에서 네덜란드 왕국 망명 정부가 수립되다.
1981년 - 바티칸 시국에서 메흐메트 알리 아자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총으로 쏴 심한 상처를 입히다.
1998년 - 중국어 인도네시아 향한 폭동은 인도네시아에 침입. 인도네시아 원주민 파괴하고 굽기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소유의 등록 정보와 1,000 명 이상의 중국어 인도네시아를 죽이고 강간.
1820년 - 영국의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태어나다.
나이팅게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나이팅게일에 대해서 알게 된게 몇년 안된 것 같다. 나이팅게일 그냥 뛰어난 간호사 아니냐고? 맞다 간호사. 하지만 '간호'만 하지 않았다는게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나이팅게일에 대한, 간호사에 대한 엄청난 편견이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1820년 5월 12일에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중이던 영국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피렌체'가 영어로 '플로렌스'인데, 그리하여 이름이 '플로렌스'가 되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언니의 이름은 '프랜시스 파르테노프 나이팅게일'인데, '파르테노프'가 당시 그리스 한 지역의 지명이었다. 흠... 나이팅게일의 부모님은 여행을 다니시면서 애 낳는걸 좋아하신듯? 원정출산?
아무튼 나이팅게일의 집안은 부유했고, 여자도 공부를 해야한다는 당시에는 보기 드문 아버지의 신념에 따라, 나이팅게일은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지리학 등의 다양한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데 나이팅게일은 17살때 갑자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선언한다. 당시에 간호사는 천한 직업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잘 가르쳐놨더니 불쌍한 사람들이 넘치고 그들을 아무도 돌보지 않는 현실에 눈을 떠버린 나이팅게일... 하지만 '간호사' 시도는 집안의 강한 반대로 좌절되고 만다.
이후 나이팅게일은 남자들의 청혼도 거절하며 결혼하지 않은채 의학 및 간호관련 공부를 했다. 해외에 가게 되면 병원과 빈민수용소등을 견학했다. 그러다 1849년, 그녀가 30살이 되던해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병원을 참관하고 정식 간호교육을 받아야 겠다고 결심, 결국 집안의 반대를 뿌리치고 독일에서 간호학을 공부한 뒤 1853년 런던으로 돌아와 숙녀병원의 간호부장이 된다.
하지만 정말 그녀는 간호사가 될 운명이었던 것인지, 간호사일이 지겨워지기도 전에 곧바로 큰 전쟁이 일어난다. 바로 크림전쟁(1853~1856)이었다. (참고글 : 문명4BTS-(#6-3) 크림 전쟁 : 러시아와 중동, http://blog.daum.net/smileru/8887690) 전쟁이 터진 것도 모자라, 이 전쟁은 비참하기 그지 없는 전쟁이었다. 훗날 2차세계대전에서 '롬멜'과 싸워 유명했던 '몽고메리'장군은 "크림전쟁은 이렇게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전략도 '무식'했고 보급도 비효율적이어서, 영국군의 경우는 전투 중 사상자가 5,000명이었던 반면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15,000명에 달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영국군은 뒤늦게 간호 자원 봉사대를 급파하게 되는데, 이 때 나이팅게일이 투입된다.
나이팅게일은 훗날 크림전쟁 전장병원을 이렇게 평가했다.
"나는 유럽 대도시의 최악의 지역에서 집들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지만,
이곳 막사 병원의 밤 상황과 비교할 수 있는 곳은 가본 적이 없다."
병사는 사실상 소모품 취급되었고, 그 결과 의약품, 붕대, 의류, 모든 것이 부족했다. 이를 살펴본 나이팅게일은 당장 간호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 '천사 같은 간호' 보다는 '철저한 행정'일을 시작해, 상부에 강력한 건의를 통해 보급품을 얻어냈으며, 간호사들에게 간호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열악한 위생문제부터 해결하게 했다. 또한 병원내의 일을 철저히 분담하게 했고, 규율을 만들어 효율화에도 신경을 썼다.
그 결과는 엄청났다. 6개월만에 영국군 병원 환자의 사망률은 이전의 42%에서 2%로 떨어졌다. 군인들은 물론, 영국정부와 왕실 모두가 그녀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 놀라운 업적을 세운 뒤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이 끝난 1856년 영국으로 돌아온다. 런던 숙녀병원 간호부장이 된 지 겨우 3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그녀의 나이 37세였다.
영국에 돌아와 빅토리아 여왕의 환대를 받은 그녀는, 곧바로 영국군 의료체계의 대대적인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정부와 군부는 그를 귀찮아 했지만 나이팅게일은 그들과 싸워가며 개혁을 진행해 갔다. 영국군 야전 병원의 참상을 폭로하겠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정부와 군부를 압박했다.
1859년에는 크림전쟁 당시 영국에서 모금된 '나이팅게일 기금'을 통해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설립했고, 그 해에 '간호론'이라는 책을 펴내 근대 간호학의 시작을 알렸다. 150년전에 쓰여진 이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은 '간호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 모두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간호는 투약하거나 습포제를 바르는 것 정도로 그 의미가 제한되어 왔다.
그러나 간호는 환기, 채광, 난방, 청결, 정숙 등의 적절한 활용과 식이의 적절한 선택과 관리 등,
환자의 체력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의미해야만 한다.'
그렇다. 간호사의 역할은 단순히 환자를 간호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치료'를 할 때 그를 도움과 동시에, 환자 주변의 모든 환경이 환자에게 있어 최상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인거다. 괜히 가습기 만지러 오는게 아니라는거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나이팅게일에 대해 알게되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으로, 바로 통계에 대한 그녀의 능력이었다.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에서 부터 통계자료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애초에 영국군 야전병원은 부상자, 사망자의 숫자조차 제대로 집계하지 않았었는데, 나이팅게일은 입원, 부상, 질병, 사망 등등의 내역을 기록하고 물품들 역시 그러한 수치로 정확히 관리해나갔다. 이는 나이팅게일이 야전병원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 영국정부에게 야전병원의 참상을 알리고 지원을 받아내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사람들이 자신이 모아놓은 복잡한 수치들을 이해하지 못하자, 그림으로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 영국의 통계학자 윌리엄 파르의 도표를 개선한 '로즈 다이어그램'(오른쪽 이미지)을 창시한다. 오늘날 은근히 많이 쓰이는 그래프다. 이후 나이팅게일은 '세계통계대회'에서 병원의 기록 양식을 통일하자고 제안하기도 했고, 인도에 주둔하고 있는 영국군대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인도에서도 역시 크림전쟁때와 마찬가지로 위생과 같은 기초적인 문제들이 인도 주둔 영국군의 사망률 원인이라는 것을 파악, 그를 통계로 증명하고 개선책을 제시하여, 7%에 달하던 영국군 사망률을 2%이하로 낮추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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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들이 나이팅게일을 최고의 간호사라 부르는 이유다. 그녀는 '천사'라기 보다는 '천재'라고 부르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녀가 헌신적인 간호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 보고 그녀를 '천사'라고 부르는 것은, 간호의 '신'을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닐까?
5월 12일과 13일의 역사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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