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4월 7일과 8일의 역사 - 초전도현상, 야마토전함침몰, 교향곡 3번 '영웅'

스마일루 2013. 4. 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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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에 발견되었지만 아직도 특수한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초전도 현상...

 

초전도 현상은 '금속의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이기 때문에 공학적가치가 극히 크다.

따라서 실제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 모든 전자제품에 일대 혁명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넘어, 알루미늄&플라스틱 시대인 오늘 그 다음세대는, 초전도 물질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초전도현상이 보편화 되는 그 때, 우리는 세상이 뒤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순 서 -

 

208년전, 1805년 4월 7일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이 빈에서 초연되다.

 

68년전, 1945년 4월 7일

제2차 세계대전 일본 야마토전함 침몰.

 

102년전, 1911년 4월 8일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가 초전도 현상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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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과 8일의 역사

Weekly Voice

 

 

4월 7일: 1994년 르완다 집단 학살 국제 반성의 날, 세계 보건의 날

1795년 - 프랑스에서 미터길이의 단위로 채택되다.

1805년 - 루트비히 판 베토벤교향곡 3번 《영웅》에서 초연되다.

1896년 - 서재필이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하다.

1939년 - 알바니아의 국왕 조구 1세가 퇴위하다.

1945년 - 제2차 세계대전 일본 야마토전함침몰.

1947년 - 포드 자동차 회사의 창립자 및 경영자 헨리 포드 사망.

1969년 - 인터넷의 상징적인 생일: RFC 1이 발표되다.

1969년 - 대한민국의 시인 신동엽 사망.

2008년 - 뉴질랜드중화인민공화국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4월 8일

217년 - 로마 제국의 황제 카라칼라가 암살되다.

1742년 - 조지 프리드릭 핸델오라토리오메시아》가 초연되다.

1911년 -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초전도 현상을 발견하다.

1911년 - 미국의 화학자 멜빈 캘빈 탄생.

1970년 -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가 발생하다.

1973년 -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 사망.

1992년 - 미국의 은퇴한 테니스 선수 아서 애시수혈을 통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발표하다.

2008년 -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이소연이 탄 소유스 TMA-12 우주선이 발사에 성공하다.

2008년 - 대한민국 삼성건설이 건설하는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버즈 두바이가 630m로 착공 38개월 만에 세계 최고 인공 구조물 기록을 갱신하다.

2008년 - 대한민국 국방부는 2002년 6월에 발생한 서해 교전의 공식 명칭을 제2연평해전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1805년 - 루트비히 판 베토벤교향곡 3번 《영웅》에서 초연되다.

 

   요건 내용이 짧다. 그냥 위키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왔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영웅" 내림 마장조(작품 번호 55)는 1803년에 처음 작성되어 1804년에 완성된 교향곡이다. 처음에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을 기리며 이 곡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하려고 했으나, 1804년 5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이름을 지워 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1805년 4월 7일에 빈에서 베토벤 자신의 직접 지휘로 초연되었다.

 

 

 

 

 

 

 

 

   1945년 - 제2차 세계대전 일본 야마토전함 침몰.

 

   1차세계대전 이후 서구 열강들은 군축협상을 시작했다. 경제는 피폐해지고 군사력은 거대해진 기형적인 상황이 원인이기도 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 1차세계대전 직후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진 미국(군사력 1위)과 영국(군사력 2위)이 다른 패권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었다. 특히 지리적으로 먼 아시아가 걱정됐고, 그리하여 그 군축협상에는 군사력 세계 3위인 일본도 포함됐다. 동아시아, 특히 중국에서 잘나갔던 일본은 다행히도(?) 그 당시 중국에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서 쉬어갈 필요성을 느꼈고, 결국 워싱턴 회의 끝에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군축협상에 합의하였으며 중국도 잠시 숨통을 틀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1922년의 워싱턴 회의 결론에 따라 각국은 1만 톤급 이상의 주력함 척수의 비율을 영국 5, 미국 5, 일본 3, 프랑스 1.75, 이탈리아 1.75로 줄여야 했다. 과거에 건조한 함선을 포함해 그 비율을 초과하면 안됐다. 해군력에 대한 강력한 규제조치였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건 '비율'이다. 군축이라기보다는 영국과 미국을 넘지말라는 정치적 의미가 더 강했다)

 

   하지만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중국을 다시 본격 공격하기 시작, 워싱턴 회의 체제를 무력화 시킨다. 이후 해군력을 증강시키고자 1934년부터 비밀리에 초대형 전함 건조계획을 진행하게되고,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격이 있고나서 수 일 후인 1941년 12월 16일에, 진수식 조차 비밀리에 치뤄진 만재배수량 72809톤의 초대형 전함, 야마토 전함이 취역한다.

 

   당시 독일의 '비스마르크', 미국의 '아이오와' 같은 '초대형'이라는 전함들이 50000톤급이었던 것을 보면 엄청난 크기였다. 또 야마토 전함의 함포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7대의 함재기도 탑재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일본 제국 연합함대의 기함이 되었다.

 

   이후 야마토 전함은 미드웨이 섬에서 미해군과의 결전을 위해 출항하게 된다. 하지만 한참 후방에서 지휘용으로 사용된 야마토 전함은 싸울 기회조차 없었고, 그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은 대패하여 야마토 전함이 취역하자마자 태평양 전쟁의 전세는 크게 기울기 시작한다.  

 

   야마토 전함은 일단 일본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근 1년간 야마토 전함은 정박하게 된다. 일본 해군 병사들로 부터 '호텔 야마토'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후에도 야마토 전함은 이렇게 소극적으로 운용되는데, 탄약 및 연료 보급 문제등이 있긴 했지만, 이 때의 소극적 운용에는 일본군도 야마토 전함의 능력을 믿지 못하였다는 이야기가 있고, 이미 거대전함의 시대가 끝나고 항공모함이 주력인 시대가 오면서 전술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이후 야마토 전함은 수송 호위임무, 또는 직접 수송임무를 수행했고, 숨어있던 잠수함의 어뢰에 피격당했다가 수리되기도 하는데, 1944년 10월에서야 비로소 함포를 적을 향해 발사하게 된다. 태평양 전쟁 중 취역한지 3년만이었다. 그것도 첫 발사는 함선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고, 상륙하던 미군을 향해 발사된 것이었다. 그래도 그 10월의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야마토는 여러척의 미군 함선에 피해를 입히는데 성공하는데, 그 해전에서 야마토 이후 만들어진 야마토급의 '무사시함'은 어뢰 17발과 폭탄 19발을 맞고 침몰하였으며 일본해군은 또 다시 대패한다.

 

   이후 미해군은 오키나와에 까지 공격을 시작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일본 해군은 '텐고 작전'을 계획하지만, 연합군이 암호를 해독해 작전내용을 완전히 간파하게 되고, 그렇게 1945년 4월 7일 오전 8시, 일본 함대는 280여대의 미해군 항공모함 함재기들의 습격을 받는다. 12시경 1차 공습이 종결 될 때 야마토를 보호하던 몇 척의 구축함들이 침몰했고, 야마토함은 폭탄과 어뢰를 몇발 맞으면서 어느정도 피해를 입는다. 이후 13시가 되지 않는 시점에서 연합군은 공습을 재개했고, 함재기들이 투하한 어뢰 수발을 또 다시 맞으면서 야마토는 내부에 물이 차오르자 왼쪽으로 15도 가량 기울어지게 된다.

 

   하지만 아직 침몰할 수준은 아니었는데, 13시 40분경 공습이 다시 재개되어, 네발의 폭탄과 네발의 어뢰가 야마토함에 명중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입는다. 결국 14시 2분에 배를 포기하라는 명령이 하달되게 되며, 14시 5분에 야마토함은 완전히 전복된다. 그리고 14시 23분에 결국 탄약고가 폭발하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는데, 6km 상공까지 버섯구름이 피어오를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그렇게 야마토함은 침몰하였고, 당시 승무원 3332명중 사령관 이토 세이이치를 비롯하여 상당수가 전사해, 200여명만이 살아남는다. 

 

   뭔가 굉장한 전함이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는, 야마토 함의 허망한 최후였다. 야마토함처럼 일본도 4개월 뒤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 결국 패망한다. 오늘날 야마토함은 이후 일본인들에게 망국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이루지 못한 꿈? 뭐 그런 느낌으로 남은 듯 하다. '야마토'라는 이름을 딴 만화와 영화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걸 보면 일본의 우경화가, 제2, 제3의 야마토 전함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 물론 그게 그렇게 허망하게 침몰해주면 좋겠고. 

 

 

 

 

 

 

  1911년 -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초전도 현상을 발견하다.

 

   1911년 4월 8일 발견된 초전도 현상이야 말로 시대를 앞서 발견된 놀라운 자연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온도에 따른 금속의 저항 변화'라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연구를 진행하다보면 충분히 일찍 발견될 수 있는 현상이긴 하지만, 낮은 온도에서 금속의 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은 그야말로 정말 놀라운 현상으로, 저항이 사라진 금속 내에서 흐르기 시작한 전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며, 현재 이론으로 추정하기에는 우주의 나이만큼이나 전기의 흐름이 유지될 것이라고 한다. 

 

   놀라운 이 초전도 현상은 아직은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된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발견된지 100년도 넘었는데도 말이다. 1900년대 초에 아인슈타인에 의해 발견된 일반상대성이론이나 특수상대성이론도 100년이 넘긴 했지만 애초에 널리 쓰이기에는 한계가 있고, 동시대에 역시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광전효과'도 여러 센서나 태양전지에 사용되는 수준이고 본래 그 이상을 생각하기 어렵지만, 초전도 현상은 '금속의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공학적가치가 극히 크고, 따라서 실제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 모든 전자제품에 일대 혁명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대학원 재학시절 작성한 과학에세이 주제로 '초전도 현상 발견 100주년'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했던 말인데,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넘어, 알루미늄&플라스틱 시대인 오늘 그 다음세대는, 초전도 물질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초전도현상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그 때, 우리는 세상이 뒤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글 : [TED] 눈이 휘둥그레지는 TED 과학 강연 두가지!!! : 초전도체 & 빛의 움직임!!!, http://blog.daum.net/smileru/8888130

 

  

 

 

 

4월 7일과 8일의 역사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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