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3월 17일과 18일의 역사 - 정인숙 살해사건, 골다 메이어 총리, 최영오 일병 사형집행 등

스마일루 2013. 3. 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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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는 왜 살해당했어야 했나?

 

 

 

 

 

- 순 서 -

 

44년전, 1969년 3월 17일

골다 메이어가 이스라엘의 제4대 총리에 취임하다.

 

43년전, 1970년 3월 17일

대한민국 제3공화국의 권력층 스캔들로 번진 정인숙 살해 사건이 발생하였다.

 

50년전, 1963년 3월 18일

최영오 일병 사건의 당사자 최영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됨.

 

 

 

 

 

 

(추천위치를 중간으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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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과 18일의 역사

Wikipedia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

1782년 - 스위스의 수학자 다니엘 베르누이. (베르누이의 정리)

1834년 - 독일의 기업가 고트리브 다임러.

1861년 -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되다.

1958년 - 미국 해군이 최초의 태양광 발전 인공위성밴가드 1호를 발사하다. 밴가드 1호는 현재까지 궤도를 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인공 물체이다.

1959년 - 14대 달라이 라마텐진 갸초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하다.

1969년 - 골다 메이어이스라엘제4대 총리에 취임하다.

1969년 -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1970년 - 대한민국 제3공화국의 권력층 스캔들로 번진 정인숙 살해 사건이 발생하였다.

1988년 - 서울 의대 김수태 교수팀, 국내 최초로 간 이식 수술.

2003년 - 미국·영국 UN 안보리 동의 없이 이라크공격 결정.

2008년 - 쥐머리 새우깡 파문이 일어나다. 농심은 다음날 주가가 4.43% 하락했다.

2009년 - 북한에서 미국여기자 2명이 억류당하다.

 

 

3월 18일

1229년 - 6차 십자군: 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2세예루살렘의 왕임을 선언하다.

1922년 - 시민 불복종을 이유로 수감마하트마 간디가 6년 만에 석방되다.

1963년 - 최영오 일병 사건의 당사자 최영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됨.

1965년 - 소비에트 연방보스호트 2호에 탑승한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처음으로 우주 유영을 하다.

1975년 - 동아투위가 결성됐다.

1982년 - 부산에서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나다.

1982년 - 바실리 추이코프, 소련의 군인 사망.

1988년 - 일본 최초의 돔 구장인 도쿄 돔이 완공되다.

2000년 -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총통 후보 천수이볜이 대만 총통에 당선되었다.

 

 

 

 

 

   1969년 - 골다 메이어이스라엘제4대 총리에 취임하다.

 

   골다 메이어는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이스라엘 총리에 있었던 인물로, 이스라엘 건국 당시의 '건국정치인'이자 이스라엘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이스라엘의 여성총리이다.

 

   애초에 유대인으로 1898년 러시아 제국(현재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그녀는 9살인 1906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가, 24살이던 1921년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 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건국 당시 노동부 장관으로 시작해 외무부 장관을 지내다가 총리가 되는데, 그녀는 임기동안 힘든일들을 처리해 가야만 했다.

 

   첫째로 영화 '뮌헨'으로도 만들어 졌던 '뮌헨참사'가 있었다. 뮌헨참사는 1972년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국가대표 선수 11명이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 '검은 9월단'의 습격을 받아 숨진 사건인데, 선수들이 인질로 잡혀있던 당시 전세계를 상대로 '우리 시민들을 구해달라'는 호소를 발표했지만 독일의 구출작전이 실패하면서 인질들이 사망하자, 골다 메이어 총리는 자신을 필두로 하여 비밀 위원회를 결성,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게 테러에 관여한 범인들을 끝까지 추적, 사살하는 '신의 분노' 작전을 실행하게 한다. 그 결과  골다 메이어 총리의 임기를 넘겨서까지 수년간 모사드는 뭔헨참사를 기획한 조직의 윗선까지 추적해 1979년 '알리 하산 사라메'를 암살하는 것을 끝으로 '신의 분노' 작전을 끝낸다(사실 '신의 분노' 작전이 언제 끝났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그렇게 해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원 20명 이상이 모사드에 의해 사살당하거나 폭사하게 된다.

 

   1973년 10월 6일에는 사이가 좋지 않던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침공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당일까지도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침공할 것이라는 걸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수시간전 침공징후가 농후해지자 골다 메이어 총리 주변에서는 시리아를 공격하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녀는, "유럽은 중동 석유에 크게 의존해 이스라엘을 돕기 어렵고, 결국 미국만이 이스라엘을 도울 수 있는데, 이스라엘이 먼저 선제공격을 하게 되면 미국이 이스라엘을 도울 명분을 가지기 힘들다"라고 말하며 선제공격을 하지 말 것을 지시한다.

 

   결국 이집트와 시리아가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휴일 '욤 키푸르'에 이집트와 시리아는 최신 소련무기로 이스라엘군을 공격, 겨우 수시간 전에서야 뒤늦게 침공 계획을 안 준비되지 않은 이스라엘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며 과거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던 지역들을 점령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골다 메이어 총리의 예상대로 이를 침략전쟁으로 규정한 미국이 곧장 개입, 미국으로 부터 무기를 지원받아, 5일만인 10월 10일 부터 반격을 시작, 이스라엘이 오히려 승승장구하기 시작하면서 시리아 수도 바로 앞까지 진격하고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 수도 카이로 100km까지 진격하는데 성공한다. 결국 그 쯤 되자 국제사회가 개입하였고 결국 10월 22일에 전쟁이 종전된다.

 

   그녀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었지만, 전쟁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국내여론의 비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욤 키푸르 전쟁' 피해에 대한 책임으로 1974년 4월 11일 사임하게 되며, 1978년 12월 8일 림프종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난다.

 

   그런 골다 메이어 총리의 별명은 바로 '철의 여인'이었다. 1979년 영국에서 '마가렛 대처' 총리가 자리에 올라 이후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이어받을 때 까지 '철의 여인'하면 골다 메이어 총리였던 것이다. 사임한 골다 메이어 총리 후임으로 '이츠하크 라빈'이 총리자리에 오른다. 그러고보니 전에 '이츠하크 라빈'에 대해서 다뤘었다. 흠, 아무래도 굴곡진 이스라엘 역사 때문인지 이스라엘 지도자에 대해 두번이나 다루게 되었나보다. 골다 메이어 총리도 분명 기억해 둘 만한 인물인 듯 하다.

 

   참고글 : 11월 4일과 5일의 역사 - 이츠하크라빈, http://blog.daum.net/smileru/8888128

 

 

 

 

 

 

 

 

 

 

   1970년 - 제3공화국의 권력층 스캔들로 번진 정인숙 살해 사건이 발생하였다.

 

   과거 내가, 우리가 잘 모르던 우리나라의 사건들을 다루는 것은 참 흥미진진한 것 같다. 물론 경우에 따라 화가 나기도 하지만...

 

   10년째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를 하던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의 한 승용차 안에서 넓적다리에 총을 맞아 신음하고 있는 한 남자와 가슴과 머리에 총을 맞아 이미 사망한 한 여인이 발견된다. 두 남녀는 남매지간이었고 이름은 '정종욱(34세)'과 '정인숙(25세)'이었다.

 

   1주일 후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는데, 범인으로 넷째 오빠이자 총상을 입은채 발견되었던 '정종욱'이 지목된다. 여동생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했던 오빠 정종욱은 어느날 그녀의 문란한 생활을 지적했다가 다투게 되었는데, 그러다 격분해 총으로 살해했다는 것이 검찰 수사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건은 곧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우선 정인숙의 소지품에서 정관계 고위층 명함 수십장이 발견되게 되는데, 그 명함에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 이후락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 등, 5.16 쿠데타를 일으킨 핵심 중에서도 핵심 인물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5대 그룹 재벌회장, 장차관들, 국군장성, 국회의원들의 명함까지 있었다.

 

   정인숙은 당시 고위공무원에 딸로 태어나 대학을 나와 한일회담이 이뤄지기도 한 최고급 요정인 '선운각' 등에서 일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녀의 3살된 아들이 정일권 국무총리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또 검찰의 수사 결과의 증거라고는 오빠 정종욱의 진술 밖에 없었다. 정종욱이 사용한 권총 조차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러자 차 외부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의 '숨겨둔 아들'의 어머니인 정인숙을 저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국민들이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노래로 이 사건을 풍자해 부르기 시작하자, 그 노래가 금지곡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또 이 사건으로 인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육영수 여사가 재떨이를 던지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다. 박정희와 정인숙의 관계를 육영수 여사가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위키를 직접 확인해 보시길)

 

   아무튼 논란속에서 사건은 검찰 수사 결과대로 종결되고, 오빠 정종욱은 사형에서 감형받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그리고 19년 뒤인 1989년, 정종욱이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감옥에서 출소한 정종욱은, "여동생과 관계를 맺은 고위층이 뒤를 봐준다는 아버지의 말을 믿고 거짓자백을 한 것이며, 괴한들이 동생을 살해했다"고 줄곧 주장하기 시작했다. 또 1991년에는 아들 '정성일'이 정인숙과의 관계를 당시 강하게 의심 받았던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를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하여 미스터리가 풀리나 했는데, 돌연 소송을 취하한 뒤 미국으로 떠난다.

 

   오빠 정종욱은 오늘날까지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2000년에는 MBC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를 주장했고, 고위층이 관련된 것으로 의심된 '장자연 자살 사건'이 2009년에 터지자 다시 재조명 받은 그는 2010년에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거듭 무죄를 주장하며 명예회복을 하고 싶다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쪽과 관련해서는 당분간 명예회복이 어렵지 않을까 싶다. 

 

 

 

  

 

 

 

 

 

 

   1963년 - 최영오 일병 사건의 당사자 최영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됨.

 

   이 사건도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사건인데, 보면서 참 뭐랄까... 아무튼 직접 느껴보시길.

 

   서울대학교 천문기상학과를 다니다 군에 입대한 최영오는, 도착한 애인의 편지를 선임병이 가로채 뜯어보고 그를 조롱하자, 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다 선임병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다. 이에 분노한 최영오는 선임병 두명을 1962년 7월 8일 오전 8시에 총으로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에 군사법원은 최영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각계각층에서 최영오를 구명하려 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3월 18일 오후 2시 40분에 군법에 따라 '총살' 당한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그날 밤 11시 50분에 한강에 투신해 자살한다.

 

   최영오는 사형 집행전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제가 죽음으로써 우리나라 군대가 관료주의적인 것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민주적인 군대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군법은 군법이고 살인은 살인이다. 당시는 한국전쟁이 끝난지 10년이 갓 지난 시기였고, 군사정권이 들어서던 시기이기도 해 군기강이 매우 중시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참 안타깝고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군대를 다녀온 입장에서 요즘 군대는 분명히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경험했으며, 확신한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구타나 괴롭힘이 존재하고 있을 것도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그로인해 고통받거나 살인충동을 느끼는 병사들도 있을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찾아보니 2011년 군내 자살자는 97명으로 10년내 최고치를 기록했다한다. 2012년 6월까지도 52건의 자살사건이 일어났으니 어쩌면... 그것이 다 선임병의 괴롭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 자체로 참 끔찍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군대 문제, 언젠가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3월 17일과 18일의 역사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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