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4월 14일과 15일의 역사 - 북한 미군정찰기 격추, 차베스 복귀, 공진현상, 3S정책 등

스마일루 2013. 4. 11. 21:27
728x90

 

 

 

 

 

 

 

 

 

 

 

1969년 4월 15일, 미군의 정찰기가 북한 전투기에 격추되는 모습을 그린 그림.

김일성의 생일이었다. 이번에도 미사일을 쏠 것 처럼 하며 공중도발을 할 것이 다소 우려되는데...

 

:

 

북한의 도발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60년대를 전후해서는 미국에까지 도발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 때도 미국은 항공모함을 보내며 북한을 위협했지만,

대내외적인 사정 때문에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핵이 완성되려는, 어쩌면 완성된 지금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냥 넘어 가서는 안되며, 넘어 갈 곳도 없다.

 

 

 

 

 

 

 

 

 

 

- 순 서 -

 

182년전, 1831년 4월 14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군인들이 다리 위를 행진하다 이로 인해 다리가 붕괴되다.


101년전, 1912년 4월 14일, 15일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충돌하다. /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다.

 

30년전, 1983년 4월 14일

장충체육관에서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리다.

 

11년전, 2002년 4월 14일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쿠데타에 의해 쫓겨난 지 이틀 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하다.

 

44년전, 1969년 4월 15일

동해상에서 미해군 소속 EC121 정찰기가 북한 공군에 의해 격추되는 사건이 일어나다.

 

 

 

추천? 손가락 클릭!

 

 

 

 

 

 

 

 

 

 

 

 

4월 14일과 15일의 역사

Wikipedia

 

4월 14일

1759년 - 작곡가 조지 프리드릭 핸델 사망.

1831년 - 영국 맨체스터에서 군인들이 다리 위를 행진하다 이로 인해 다리가 붕괴되다.

1865년 - 존 윌크스 부스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하다.

1894년 - 토머스 에디슨영사기 발명을 발표하다.

1912년 - 타이타닉 호빙산에 충돌하다.

1915년 - 오스만 투르크아르메니아를 침공하다.

1956년 - 비디오 테이프가 시카고에서 처음 선보이다.

1958년 - 소비에트 연방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가 162일간의 임무를 마치다.

1981년 - 우주왕복선 콜롬비아 호가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하다.

1983년 - 장충체육관에서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리다.

2002년 -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쿠데타에 의해 쫓겨난 지 이틀 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하다.

2003년 - 인간 게놈 프로젝트 - 99.99%의 정확도로 인간 유전자 해독을 99% 완료하다.

 

4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태양절

1865년 - 앤드류 존슨미국의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1892년 - 미국의 전기회사 제너럴 일렉트릭이 설립되다.

1912년 -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다.

1912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주석 김일성 출생.

1919년 -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제암리 학살 사건이 발생하다.

1923년 - 당뇨병 치료에 인슐린이 처음으로 사용되다.

1949년 - 대한민국 해병대경상남도 진해에서 창설.

1969년 - 동해상에서 미해군 소속 EC121 정찰기가 북한 공군에 의해 격추되는 사건이 일어나다.

1989년 - 영국의 셰필드에 있는 힐즈브러 스타디움에서 힐즈브러 참사.

1989년 - 후야오방의 죽음으로 베이징에서 시위가 시작. 이는 후에 천안문 사태로 이어짐.

 

 

   오늘은 소개할만한 소식들이 풍부한것 같다. 더 많이 쓰고 싶지만 자제해야 할 정도... 그나저나 위키를 보고 있는데, 4월 15일의 역사에 '김일성 출생'에 대한 부분이 '북한반란수괴 원조김돼지 김일성'으로 되어 있더라. 북한에 대한 분노야 이해한다만, 애들도 아니고 백과사전에서 뭐하는건가? 오히려 그런 유치함이 더 반감을 가지게 할 수도 있다는걸 모르는지? 본래대로 돌려놓았다.

 

 

 

 

 

 

 

 

 

1831년 - 영국 맨체스터에서 군인들이 다리 위를 행진하다 이로 인해 다리가 붕괴되다.

 

   찾아보니 4월 14일이 아니고 정확히는 영국시간으로 4월 12일이다. 그러나 일단 그냥 써 본다. 1831년 4월 12일, 멘체스터에 있는 브로스턴 다리가 붕괴된다. 74명의 영국 소총병들이 다리를 건너다가 맨 앞 병사가 다리를 다 건널 무렵 갑자기 다리가 붕괴된 것이다. 다행히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지만 병사들이 큰 부상을 당했다. 조사 결과 다리 자체가 다소 약하게 만들어졌음이 확인되기도 했는데, 결정적인 원인은 74명의 병사들이었다.

 

  74명의 병사들이 행진곡에 발을 맞춰 걸으면서 다리를 건너자 '공진현상'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다리에 '치명타'를 가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의심했을 것 같은데, 꼭 19년 뒤인 1850년 4월 16일, 프랑스 앙제 다리가 483명의 군인들이 발을 맞춰 걷다 붕괴되어 226명이 사망하면서 다시한번 공진현상의 위력이 입증되었다.

 

   공진현상은 1940년 타코마 대교 붕괴사고에서 다시 등장하며 그 위력을 다시 알린다.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테크노마트가 흔들리면서 붕괴 논란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일사불란한 에어로빅'이 원인이었다. 공진현상은 그 만큼 굉장한 것이다. 참 신기한 것 같다.

 

(타코마 대교 붕괴영상도 못 보신 분들은 한번 보시길. http://en.wikipedia.org/wiki/File:Tacoma_Narrows_Bridge_destruction.ogg)

 

 

 

 

 

 

 

 

 

 

 

   1912년 - 타이타닉 호빙산에 충돌하다.

   1912년 -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다.

 

   너무 유명해서 더 쓸말은 없지만, 너무 유명해서 차마 아무말도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틀에 걸쳐 적혀있는 이유는, 4월 14일 밤 11시 40분에 빙산과 충돌했고, 2시간 40분 뒤인 4월 15일 2시 20분에 완전히 침몰했기 때문이다.

 

 

 

 

 

 

 

 

   1983년 - 장충체육관에서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리다.

 

   1983년 4월 14일,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린다.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이자 스포츠였던 씨름... 이것이 1983년 '대회'가 되어 등장한 이유는 당시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 때문이었다. 3S 정책이란 '스포츠 (Sports), 섹스 (Sex), 스크린 (Screen)'의 첫 이니셜을 따 만들어진 말로,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 사회에서 멀게할 목적으로 시행된 '우민화' 정책을 말한다. '우민'화 정책이라니 세상에...

 

   흥미롭게도 3S정책이라는 말의 유래는 다소 오리무중인 듯 하다. 일단 1945년 2차세계대전 이후 패전국 일본을 장악한 연합군 최고 사령부가 통치를 위해 펼친 정책을 3S정책이라고 한다는데, 일본에서 3S정책이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1985년 '야스오 카'라는 학자가 2차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에 대해 언급하면서였다. 훗날 돌아보며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1983년 신문에 처음으로 '3S정책'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3S정책이 먼저 시행된 것은 일본이었지만, 그 말이 먼저 쓰인 것은 우리나라였던 것이다.

 

   위키에도 '3S정책'이라는 문서는 한국어와 일본어로밖에 없는데 그 내용도 완전히 다르다. 결국 봤을 때, 한국과 일본 별개로 한국의 군사정권과 일본의 연합군 사령부가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한 정책을 폈고, 당시의 한국 언론인들, 훗날의 일본 학자가 자국의 상황과 역사를 돌아보며 '3S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훗날 그 별개의 위키 문서가 같은 이름을 쓴 이유로 하나로 엮이게 된 것이고...

 

   괜히 한번 지나치게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스포츠'라는 것의 '해악'이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스포츠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멀어지게 하는 것 같긴 하다. 또 올림픽 같은 것을 보면, 스포츠로 인해 자국이기주의, 민족주의들이 더 거세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있는게 낫긴 나은 것 같다. 장점도 많고. 내 머리가 '우매해' 진건 아니겠지?

 

 

 

 

 

 

 

 

 

 

   2002년 -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

   쿠데타에 의해 쫓겨난 지 이틀 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하다.

 

   사실 차베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기 시작하면 이 글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다른 소식들이 많으니 다 각설하자.

 

   차베스는 좌파대통령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노조와도 상당히 오랫동안 대립하였다. 2002년 4월 9일에는 베네수엘라 노총이 총파업을 시작한다. 무려 50만명의 시위대가 4월 11일에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 회사로 행진하여 해고당한 관리의 복직을 요구했다(오른쪽 사진). 이후 그들은 대통령궁으로 향한다. 친차베스 시위대와 반차베스 시위대가 충돌하기 시작했는데, 차베스는 해산을 요구했지만 곧 시위대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나는 등 시위가 폭력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경찰과 국토방위대가 투입되었고, 저격수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베네수엘라 군사령관 루카스 린콘 로메로가 갑자기 전국방송을 통해, 차베스가 대통령직을 사임했으며, 그는 현재 군사기지에 억류되어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상공위장 '페드로 카르모나'를 임시대통령으로 임명했으며, 카르모나 임시대통령은 곧 국회와 사법부를 해산하고 금융제한을 풀었으며, 차베스가 석유가격 조절을 위해 실시했던 석유 생산 제한을 풀어버렸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친차베스 진영에서는 난리가 났고, 전국적인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친차베스 병사들은 '맞쿠데타'를 기획하여, 순식간에 대통령궁을 점령하고, 군사기지에 억류되어있던 차베스를 해방시켰다. 그렇게 차베스는 이틀만인 4월 13일에 대통령직에 복귀하게 된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날짜가 틀리네?

 

   이후 차베스는 진상조사를 벌였고,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차베스가 억류되어있던 군사기지인 오르키아 섬 공군기지에 미국 항공기가 착륙한적이 있었으며, 미국 함대와 비행 편대가 베네수엘라 근처에서 포착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미국 해군이 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글을 실기도 했다. 석유 문제에 개입한 걸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부시 대통령 시절이었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상태이다. 여기저기에서 미국의 개입이 당연한 것 처럼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1969년 - 동해상에서 미해군 소속 EC121 정찰기가

   북한 공군에 의해 격추되는 사건이 일어나다.

 

 

   1960년대는 한국전쟁 직후로, 북한의 도발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특히 60년대 후반, 1968년 1월 21일에는 북한 124부대원 31명이 청와대 공격을 시도한 '김신조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1968년 1월 23일에는 동해에서 북한을 정찰하던 미국의 '푸에블로 호'가 나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왼쪽 사진. 오늘날까지 북한에 전시되어 있다) 이후 린든 존슨 대통령의 미국은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구축함 2척을 한반도로 출동시켰다. 기세등등했던 미국이었지만, 11개월 뒤인 1968년 12월 23일, 미군 육군 소장 길버트 우드워드는 미국 정부를 대표해 북한 영해 침범 및 첩보 행위를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굴욕을 겪게 되었다. 물론 그 덕분에 나포된 푸에블로 호의 승무원 82명과 나포과정에서 사망한 1명의 유해를 인도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4개월 뒤인 1969년 4월 15일... 김일성의 생일이던 그 날, 미국의 정찰기 EC-121기는 소련에 대한 감시를 하고 있었다. EC-121기는 4년전인 1965년 4월 28일에 RB47 정찰기가 북한의 MIG-17 전투기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자 교체 투입된 최신 정찰기였다. 하지만 '최신'이었어도 정찰기였기에 무장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고, 결국 북한의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에 의해 MIG-21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격추되고 만다. 31명의 승무원은 전원 사망한다.

 

   닉슨 대통령은 즉각 반응했다. 다시 한번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그를 따르는 40여척의 71기동함대를 동해 앞바다로 투입한다. 훗날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당시 닉슨 대통령은 일반적인 전략핵무기보다는 약한 전술핵무기를 이용해 북한을 타격할 계획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상황은 종료된다. 북한의 승리였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당시의 북한은 핵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북한 공군기지에 대한 보복 공격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이시라면 이미 아실 것 같다. 1960년대 말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린든 존슨 정부시절 감행된 1964년 통킹만 사건 조작(이젠 명백한 사실이니 그냥 이렇게 말하기로 하자)으로 베트남 전쟁에 전면적으로 개입한 미국은, 60년대 말에 전쟁에 있어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반전여론도 극심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닉슨 대통령은 무력 행동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세달 뒤에 닉슨 대통령은 '괌 독트린'을 발표, 사실상 아시아에서 군사적으로 한발 물러서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북한은 푸에블로 호 나포와 EC-121기 격추로 재미아닌 재미를 봤다. 사실 이 사건으로 인해 북한이 뭔가 식량 지원을 받았다던지 하는 건 없었다. 일단 푸에블로 호와 EC-121기 모두 북한 영해와 영공을 침범했거나 또는 그러지 않았어도 그러한 정찰을 차단하고자 했던 소련의 사주로 북한이 행동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 사건은 북한에게 무력 도발까지도 포함하는 '벼랑 끝 전술'의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런 사건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베트남 전쟁 때문에 북한에게까지 신경을 쓸 미국의 힘이 약해져 있던 상황이었는데, 그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먹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요즘은 어떨까? 요즘엔 미국이 전쟁을 벌이는 국가가 많지는 않고, 경제위기로 국방비 지출에 고심이 크긴 하지만, 베트남 전쟁 때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F-22 전투기, B-2 폭격기, 그리고 미 본토의 기동부대까지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 북한은 이번에도 과연 얻고 싶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미국은 과연 이번에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인가?

 

   블로그에서 여러번 주장했던 사견을 다시한번 써보자면, 이번에야 말로 북한에게 교훈을 줄 때가 되었다. 다른 때도 아니고 북핵이 완성되려는 순간이다. 전쟁의 위협을 넘어 미래의 핵 위협 때문에라도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상황으로. 북한이 국지도발과 국지전을 도발해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 그럴 수 밖에 없는 때가 되었다. 어떤 경우에도 이번 만큼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굴복해서는 안되며, 군사적인 긴장상황을 유지하고 제재를 지속하여 결국 스스로 대화테이블로 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신들의 안전 때문에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북한에게, 결국 대화를 선택할 수 밖에 없을 북한에게, 대화 가능성을 계속 열어 두되 우리가 앞서 나가서는 안된다. 그런다면 기회는 올 것이다. 반드시 북핵을 퇴보시켜야 하며, 푸에블로 호 나포와 EC-121기 사건 때와 같은 일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이젠 끝내야 하며 그럴 때가 되었다.

 

 

 

 

 

 

 

 

 

4월 14일과 15일의 역사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추천? 손가락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