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3월 24일과 25일의 역사 - 아르헨티나 근대사 - 페론 정권과 군사 정권

스마일루 2013. 3. 2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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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재선에 성공해 대통령자리에 있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그 뒤에 서 있는 먼저 대통령에 올랐던 남편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전 대통령. (2010년에 사망했다)

 

2003년 당선된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전 대통령은

2002년 파산한 아르헨티나의 급격한 성장을 이끌어 바닥에서 탈출시키는데 성공하였으며,

 

무엇보다 과거 군사정권 세력들을 사면해 주었던 법을 폐기하고 재조사를 실시하여 그들을 처벌했고,

쿠데타가 발생했던 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해 군사정권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날로 만들었다.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부인에게까지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경제도 성장시키고 역사도 바로잡으며 기억하게까지 한 대통령...

 

이것이 지도자 아니겠나?

 

 

 

 

 

 

 - 순 서 -

 

3월 24일: 아르헨티나의 진실과 정의 기념일

37년전, 1976년 3월 24일 - 아르헨티나 쿠데타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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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과 25일의 역사

Wikipedia 

 

3월 24일: 아르헨티나진실과 정의 기념일

1603년 -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 사망.

1603년 - 제임스 1세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모두 다스리는 최초의 이 되다.

1882년 - 로베르트 코흐결핵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발견하다.

1905년 - 프랑스의 작가 쥘 베른 사망.

1976년 -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가 일어났다.

1976년 - 영국의 장군 버나드 로 몽고메리 사망.

1978년 - 대한민국의 시인 박목월 사망.

1989년 - 알래스카프린스윌리엄 만에서 유조선 엑손 발데스 호원유 24만 배럴을 누출하다.

1993년 -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이 발견된다.

2006년 -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추기경에 서임되다.

2009년 -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에서 일본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5:3로 승리하여 우승을 하였다. 이때 패배한 대한민국은 준우승을 하였다. 

 

3월 25일: 그리스독립기념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708년 - 콘스탄티노, 제88대 교황으로 즉위.

1306년 - 로버트 1세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르다.

1665년 - 크리스티안 하위헌스토성의 가장 큰 위성티탄을 발견하다.

1918년 -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다.

1942년 - 미국의 가수 어리사 프랭클린 탄생.

1947년 - 영국의 가수 엘튼 존 탄생.

1957년 - 서독·네덜란드·룩셈부르크·이탈리아·프랑스·벨기에유럽 경제 공동체를 설립하자는 로마 조약에 서명하다.

1992년 - 일본 나가사키 현 사세보 시에 테마파크인 하우스텐보스가 개장하다.

 

 

 

 

 

 

 

 

 

 

 

   3월 24일: 아르헨티나진실과 정의 기념일

   1976년 -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가 일어났다.

 

 

   요런 이야기는 옛날 옛적 이야기부터 해줘야 제 맛이다. 아르헨티나는 원주민 '인디오'와 '잉카제국'의 땅이었다. 그러다 158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스페인 식민지가 건설되게 되는데(그 영향으로 아르헨티나는 오늘날까지 스페인어를 쓰고 로마 카톨릭을 믿는다), 1810년 스페인이 나폴레옹에 의해 휘청이게 되자 혁명을 일으켜 독립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결국 1816년 독립을 선언하고 이후 브라질과 전쟁을 벌이며 우루과이의 독립을 돕는 등(우루과이는 자신들을 도운 아르헨티나에 대한 감사표시로 국기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게 된다. 이미지에서 왼쪽이 아르헨티나 국기, 오른쪽이 좌우가 뒤바뀐 우루과이 국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853년이 되어 헌법을 재정하고, 1912년에는 비민주적이던 정치제도가 로케 사엔스 페냐 대통령에 의해 비밀 선거, '남성' 보통 선거가 법제화 되며 민주화를 이룩한다.

 

 

 

 

   1900년대 전후로 강력한 농업국가이자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1900년대 초기에는 좌파가 집권하던 시기였으나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으로 정권이 교체, 보수정권이 집권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1946년에 '후안 페론'(오른쪽 사진)이 29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페론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훗날 '페론주의'로 불리게 되며 실패한 포퓰리즘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되기도, 반대로 누명을 뒤집어 쓴 올바른 정책으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길어지니 나중에 찾아보시길.

 

   여튼 페론 집권시절 초기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하던 아르헨티나는, 말기에 무역적자가 지속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래도 페론은 1952년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허나 1955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쫓겨나고 만다.

 

   이후 군부는 '페론주의자'들을 숙청하고 그들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군부는 여러 대통령들을 내세우게 되는데, 모두 군부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이 때 스페인으로 망명가있던 페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공 극우세력, 페론주의 극좌 세력과 연합해 군부를 궁지에 몰아넣었으며, 결국 1973년 10월에 부인 이사벨 페론을 부통령으로 지명한 뒤 대통령 선거에 출마, 당선되면서 재집권에 성공한다. 

 

   하지만 1973년 석유파동은 아르헨티나 경제에 큰 충격을 가하게 되고, 페론의 재집권이후 가해진 좌익세력에 대한 폭력은 사회갈등을 극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애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페론이 1974년 7월에 병사하게 되자 부통령이자 부인인 이사벨 페론(왼쪽 사진)이 권한 대행을 수행하게 되는데,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고자 페소화 가치를 50% 평가 절하하는 정책을 단행하자 물가가 급등, '초인플레이션'이 시작되어 경제 문제가 결국 더욱 극심해진다.

 

   결국 1976년 3월 24일, 오늘날 '진실과 정의의 기념일'로 쓰이게 된 그날, 군사쿠데타가 일어난다. 기업인들과 군부가 결탁해 일어난 쿠데타였다. 이들은 이사벨 페론을 체포하고 쿠데타를 성공시킨다. 국민들도 '올 것이 왔다'라는 분위기였다. 경제상황도 좋지 않아 페론 정권의 지지가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쿠데타가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쫓아낼 수는 있어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군부는 극우성향의 사업가, 변호사들로 경제부 인사를 꾸린 뒤 경제정책으로 '신자유주의'를 채택한다. 노동법을 개정하여 파업을 금지하고 최저임금을 동결시켰다. 그 결과 1년만에 노동자의 임금은 쿠데타 직전에 비해 79% 수준으로 떨어졌다. 빈곤율도 쿠데타 직전 5.8%에서 5년뒤인 1980년에는 12.8%로 급등했고 군사정권 말기에는 37.4%에 이르렀다. 그 덕분에(?) 일시적으로 페론 정부 말기의 '초인플레이션' 현상이 잡히는 듯 했다. 하지만 계속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외국자본의 무차별적인 유입을 유발했고 투기자본들이 아르헨티나를 뒤 흔들었다. 국내 금융기업들을 보호하려했지만 결국 아르헨티나 금융기관 25개가 파산했고 아르헨티나의 부채는 폭증했다. 결국 80년대에 접어들어 아르헨티나 내부적으로는 국민과 기업들이 모두 말살당한 가운데 과도한 자본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다시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이는 아르헨티나 국민들과 기업을 더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아르헨티나의 빈곤율 수치.

1975년 군사정권 집권 이후 급등하기 시작해 1982년 군사정권이 끝날때 까지 오른다.

그리고 2002년 아르헨티나가 파산할 때 다시 최고치를 기록하고, 현재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또, 쿠데타 세력은 집권하자마자 '국가재조직과정'이라는 최고정부기관을 대통령 위에 신설해 육해공 사령관이 수장 역할을 하도록 하고, 훗날 '더러운 전쟁'이라고 불리게 된 숙청작업을 시작한다. 학교나 체육관을 개조해 아르헨티나 전국적으로 300개의 수용소를 만들고, 독재에 반대하는 학생, 기자, 페론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을 감금하고 고문, 살해하였다. 그 결과 최소 9000명에서 최대 30000명이 살해되었다. 모든 종류의 인쇄물들, 방송등이 검열당했음은 물론이다. (오른쪽 사진은 발굴중인 비밀 수용소들)

 

   그렇게 아르헨티나의 모든 것이 망가졌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가 시작했고, 군사독재 체제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리더쉽을 잃은 군부내에서는 권력다툼이 거세졌다. 군사정권은 위기를 타개하고자 영국령인 포클랜드를 기습하여 전쟁을 유발하지만 영국군에게 패배하기에 이른다. 결국 바람앞에 등불이 된 군사정권은 대통령 선거를 승인하게 되고, 그렇게 1976년 부터 1983년까지 이어진 군사정권은 끝나게 된다.

 

 

 

 

   아참, 군사 정권 이후의 과정도 재미있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군사정권은 '자기사면령'이라는 말도 안되는 법을 공표하는데, 당연히 법원은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 결과 군사정권 직후 당선된 라울 알폰신 대통령은 '실종자 국가위원회'를 설치, '더러운 전쟁' 희생자와 관련된 만행들을 조사하게 하고 군부지도자들을 체포한다. 하지만 군부세력이 적반하장격으로 격렬히 반발하자 알폰신 대통령은 '국민화합법'과 '명령복종처벌불가법'을 통해 쿠데타 세력들을 사면해주기에 이른다. 다음 대통령인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도 국가화합을 명분으로 군부인사들을 포함한 289명에 대한 대통령 특별사면을 하고 만다. 사면, 사면!!

 

   하지만 2003년, 대통령에 당선된 '페론주의자'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대통령(왼쪽 사진)은 '국민화합법'과 '명령복종처벌불가법'을 폐기하였으며, 이후 아르헨티나 대법원은 해당 법에 대한 위헌판결을 내린다. 그 결과 대대적인 재조사가 시작되었고 588명이 기소, 오늘날 131명이 처벌받기에 이르며 조사는 아직도 진행중에 있다.

 

   또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3월 24일은 아르헨티나의 진실과 정의 기념일로, 이 날은 2002년 기념일로 제정되었다가 키르츠네르 대통령 시절인 2006년에 쿠데타 30주년을 맞아 공식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 날은 군사정권하에서의 '더러운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날이 되었다. 우리로 치면 4.19, 5.18 정도 되려나?

 

   추가로,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2002년 파산했던 아르헨티나 경제를 연 9%의 성장을 이끌어내며 회생시켰고, 정권말기 55%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는 재선을 포기하는데, 그 결과 2007년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오른쪽 사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키르츠네르 대통령의 높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인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010년 지병인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재선에 성공해 현재까지도 대통령자리에 있다.

 

 

 

 

   엉겹결에 아르헨티나 근대사를 짧게나마 살펴보게 되었다. 흠... 블로그에서 '오늘의 역사'를 쓰며 몇몇 나라들의 군사정권에 대해서 길고 짧게 다뤘던 것 같은데,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은 최악 중에서도 거의 탑 클래스다. 우리나라의 박정희 정권도 그렇고 아시아나 중동 등 각국 대다수의 군사정권이 산업들을 국영화하거나 국가가 산업을 주도하는 '보호무역' 방식의 경제성장을 선택하여, 훗날 부패로 실패했더라도 경제적으로 초기에 성과를 보였거나 우리나라처럼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반면,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를 선택해 완전히 나라를 말아먹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G5 수준의 국가가 아닌 이상 채택하기 어려운 경제정책이다. 물론 G5 국가들 조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지만...

 

 

100%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GDP 평균이라고 했을 때의 라틴아메리카 주요 4개국의 GDP.

2002년 경제위기 이후 평균까지 추락했다가 급속하게 성장하는 아르헨티나의 모습이 보인다.

 

 

  

   허나 흥미롭게도 오늘날 아르헨티나는 GDP를 23위까지 끌어올리며 4천만의 인구로 어느정도 재기에 성공한 상황이다. 성장 속도도 빠르다. 인구도 많지만 아직 산업국가의 면모를 갖추진 못한 라틴아메리카... 필시 아프리카 같은 곳 보다는 라틴아메리카가 베트남, 인도 같은 곳 다음으로 크게 부상할 지역이라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라틴아메리카의 맹주는 아르헨티나가 되지 않을까? 그런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이후 파탄에 이르렀다 다시 재기에 성공한 아르헨티나는 국제사회에 어떤 인상을 안겨주게 될까?

 

 

 

 

 

 

3월 24일과 25일의 역사

 

- fin -

 

 

 

 

 

 

 

오타 수정 (201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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