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1월 17일과 18일의 역사 - 간단: 미국총기협회 설립과 배경

스마일루 2013. 11. 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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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총을 개인이 소유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에서는 상상조차 못할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총을 없애면 범죄자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가득한데,

개인의 총기 소유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범죄자들이 총을 널리 사용하지 않고 있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추측이자 과도한 불안이다. (있다 없어지면 단기적으로는 확실히 위험하겠다만...)

 

결국 애초에 개인의 총기 소유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어야 하지만,

어떻게 보면 미국의 역사에서 개인의 총기 소유는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과거의 역사에 얽매여

안 좋은 필연으로 달려가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봐야 할 듯 하다.

 

 

 

 

 

 

 

 

- 링 크 -

 

11월 18일과 19일의 역사

게티즈버그 연설, 파나마운하와 미국의 대전략

http://blog.daum.net/smileru/8888140

 

 

 

 

- 순 서 -

 

142년전, 1871년 11월 17일

미국 총기 협회가 설립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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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과 18일의 역사

Wikipedia

 

11월 17일

1558년 -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으로 즉위.

1558년 - 잉글랜드 왕국 및 아일랜드 왕국의 여왕 잉글랜드의 메리 1세 사망.

1755년 - 프랑스의 왕 프랑스의 루이 18세 탄생.

1790년 - 독일의 수학자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 탄생.

1796년 - 로마노프 왕조의 8번째 군주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사망.

1869년 - 지중해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다.

1871년 - 미국 총기 협회가 설립되다.

1887년 - 영국의 장군 버나드 로 몽고메리 탄생.

1905년 - 대한제국일본 제국 간에 을사조약이 늑결되다.

1917년 -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사망.

1950년 - 텐진 갸초, 15세로 14대 달라이 라마가 됨.

1969년 - 미국소련 간에 전략 무기 제한 협상(SALT I)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시작되다.

1970년 - 더글러스 엥겔바트마우스에 대한 특허를 얻다.

2005년 - 이탈리아인의 노래, 이탈리아 공식 국가가 됨.

 

 

11월 18일: 라트비아독립기념일

1307년 - 빌헬름 텔이 그의 아들 머리 위에 놓여진 사과를 화살로 한번에 명중시키다.

1884년 - 우정총국에서 한국 최초의 우표를 발행하다.

1903년 - 미국파나마파나마 운하의 건설과 운영에 관한 헤이-뷔노 바리야 조약을 맺다.

1928년 - 월트 디즈니가 만든 최초의 사후녹음 애니메이션인 《증기선 윌리》가 개봉하다.

1978년 - 가이아나에서 짐 존스의 지시에 따라 인민사원집단 자살이 벌어지다.

1998년 - 첫 금강산 관광 유람선이 동해항을 출발.

2005년 -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서 개최.

 

 

 

1558년 -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으로 즉위.

1558년 - 잉글랜드 왕국 및 아일랜드 왕국의 여왕 잉글랜드의 메리 1세 사망.

참고글 : 5월 19일과 20일의 역사 - 인류역사 전환의 대흐름 : 앤 볼린, http://blog.daum.net/smileru/8888270

 

1869년 - 지중해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다.

참고글 : 5월 5일과 6일의 역사 - 수에즈 운하 국유화, http://blog.daum.net/smileru/8888262

 

1887년 - 영국의 장군 버나드 로 몽고메리 탄생.

참고글 : 문명4BTS-(#5-13) 롬멜과 몽고메리, http://blog.daum.net/smileru/8887604

 

 

 

 

 

 

 

1871년 - 미국 총기 협회가 설립되다.

 

 

   오늘은 공지대로 사정상 '간단:'이라 요 이야기 하나로 간단히 끝내고자 한다. 대신 길게! 사실 짧게 쓰는게 더 어렵다. 심지어 이런 주제라면 더더욱...  (위키피디아에 내용이 부족해, 네이버 사전을 함께 참고했다.)

 

   요즘 참 말이 많다. 미국의 총기소지 논란... 아무리봐도 총기 소지의 장점이란 것은 찾을 수가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총기사고가 나고, 경찰들은 범인이 공격할 것에 대해 우려한 나머지 오인사격을 일삼곤 한다. 이러한 것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독특한 사회문제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오히려 '미국 총기 협회'(The National Rifle Association of America, NRA)는 총기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 어린 아이들은 물론 모두가 총을 소유해 무장해야 한다는 왠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NRA의 자만감, 자신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한 '총기 소유의 정당성'에 대한 NRA의 자신감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미국에는 총기 소유에 대한 '권리'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건간에 총기 소유는 우리에게 안 좋아보이겠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역사적 관점에서 충분히 흥미롭기 그지 없다.

 

 

미국 총기 사용 현황관련 통계.

한해에 총기 사건-사고 관련 사망자가 3만 2천명이다.

실질적으로는 공식 통계의 2배 이상이라는 말이 있다.

 

참고로 한국의 총기 사건-사고 관련 사망자는

한해에 평균 18명이다. 인구수에 비례해 봤을때(6배 정도)

미국의 '공식적' 사망자가 약 300배 더 많다.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783년 독립에 성공한 이후, 1787년에 제헌 회의가 시작되어 그 해에 '미국 연방 헌법'이 완성된다. 이 '미국 헌법 전문'은 '연방'을 규정하고 그를 운영하기 위한 대통령과 의회의 구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다가 1789년, 헌법이 제정된지 2년만에 헌법에 새로운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를 주장한 인물은 버지니아 주 대표로 독립전쟁에 참가했고 훗날 미국의 4대 대통령이 되는 '제임스 매디슨'이다. 매디슨은 연방의 권력이 너무 커져서는 안된다며, 따라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헌법조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총 '10조'로 이뤄진 미국의 '수정헌법', 즉 '권리장전'이다. 이 권리장전에는 국교 금지, 종교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불합리한 체포-구속 금지, 일사부재리의 원칙, 배심원에 의한 재판 보장 등의 내용이 있다. 우리의 헌법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결국 이 '권리 장전'이 1787년의 '미국 헌법 전문'보다 더 일반 국민들에게 영향이 큰 헌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에 바로 그 문제의 조항이 있다. 수정헌법 제2조, '무장의 자유'이다.

 

 

잘 규율된 민병대(militia)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되어서는 아니된다.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수정헌법(권리장전) 2조와 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이 블로그의 '오늘의 역사'를 열심히 보셨거나 미국의 역사를 아시는 분들은 무릎을 탁! 치실 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독립 당시, 각 주들의 '민병대'로 부터 무장활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대륙군'으로 뭉쳐져 조직화 되었지만 초반에는 엉망진창이었고 말이다. 다행히 힘겹게 독립에 성공했고 대륙군은 해산되어 각 주의 민병대로 돌아갔지만, 이후 민병대들은 인디언들로부터 방어활동을 해야 했다. 그리하여 결국 정규군의 필요성을 느낀 나머지 1784년에 다시 연방의 군대인 '미국 육군'이 탄생하게 된 것이고 말이다.

 

참고글 : 11월 3일과 4일의 역사 - 미국 대륙군, http://blog.daum.net/smileru/8888366

 

   그렇게 미국이 독립을 하여 자리를 잡아가던 일련의 과정에서 '민병대'는 미국을 만든 실질적인 힘 그 자체였다. 그 민병대란 무엇인가? 평시에는 사냥 등을 하던 사람들이, 국가가, '주'가 필요로 할 때 민병대라는 이름으로 뭉쳐 무장활동을 하는 조직이 아니겠는가? 결국 평시에도 무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필요시에 무장을 하여 미국과 '주'를 위해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애초에 '자유'를 가치로 세워진 국가이기에 강제적인 징집제도 같은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민병대를 튼튼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독립전쟁 과정에서의 병력부족으로 징집 법안이 통과되긴 했었다)

 

   물론 1784년에 '미국 육군'이 조직되었지만 당시 미국 육군의 힘은 매우 약했으며, '연방'을 견제(미국 육군을 견제)하기 위한 '주'의 힘(민병대)이 필요하다는 매디슨의 주장 역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강력한 민병대가 필요할 수 밖에 없어 1789년의 수정헌법에 '무장의 자유'가 추가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미국인들은 총기를 소지할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받게 되었는데, 그를 더 강화시킨 계기가 또 있었다. 바로 미국의 '남북 전쟁'(1861~1865)이다. 남북전쟁은 다들 아시다시피, 노예제도 폐지 논란을 비롯한 남북 '주'들간의 갈등에서 시작된 미국의 내전으로, '링컨'의 북부연방의 승리로 끝이났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노예제도의 갈등으로 인한 '주'별 갈등, 그리고 '연방의 해체'와 '무력충돌'... 이러한 사건이 앞으로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결국 '주'의 힘이 너무 강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 밖에 없었고, 그는 주마다 소유하고 있는 '민병대'의 약화가 필요함을 뜻했다. 또 그 말은, 개개인의 총기 소유 제한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돌아갔다.

 

   재미있는건, 이야기가 총기 소유 제한 쪽으로 흘러가게 되면 패배한 남부맹방 쪽 주들이 자신들을 완전히 말살하려는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을 것 같은데, 반대로 북부연방 쪽 장군들이 크게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북부연방의 군대가 남부맹방 군사 한명을 맞추는데 1000발의 탄약을 소비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더 나은 총기의 개발과 보급, 그리고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왜 총기 소유 제한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았는지는 내가 정확히 찾지 못했지만, 가만 보니 일단 북부연방이 이긴 상황에서 남부맹방이나 추가적인 내전에 대한 우려보다는, 남북전쟁 초기에 북부연방이 병력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민병대를 약화시킬 총기 소유 제한 쪽의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던것 같다. 더불어 애초에 헌법에 무장의 자유가 들어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총기 소유 제한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그래 뭐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북부연방 장군들이 주도한 1871년의 미국 총기 협회, NRA다. NRA는 이후 미군 복무를 대비한 민간인의 총기 훈련과 총기의 제조를 맡았고, 사격 대회에 팀을 출전시키기도 했다. 시작은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시대가 흐르면서 '민병대'를 내세운 총기 소유 권리의 명분은 약해져갔고, 각종 총기사고와 함께 총기 소유 규제 움직임이 190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NRA는 수정헌법을 내세워 통해 각종 총기 규제법의 위헌 판결을 이끌기도 했고, 협회 회비, 기금 모음, 총기 및 관련 상품 판매, 로열티, 총기 기업들의 지원금으로 올린 수입을 이용해, 로비가 합법화되어있는 미국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법을 폐지하고 특정 정치인을 지원하기도 했다. (참고로 NRA의 수입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11년에 2억3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500억원이다) 최근의 경우 총기 소유를 반대한 '엘 고어'의 낙선과 '조지 W. 부시'의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그러다보니 많은 미국 대선 후보들은 일단 총기 소유를 찬성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NRA 임원 출신으로 미국 대통령이 된 사람이 8명이나 된다고...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이 된 지금에서야 총기 소유 반대를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이겠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NRA가 계속되는 총기 규제 목소리에 대한 대책으로, 총기 활용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하여 청소년층에까지 총기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이스카웃 활동시 실사격 이벤트와 총기 사용 교육을 지원하는 것이 그러한 것 중 하나인데, 개인적으로는 참 우려스럽다. 이렇게까지... 시대의 흐름속에서 발버둥치는 것이라고 봐야하려나? 그러나 그것이 성공한다면?

 

 

   음... 난 미국의 독립과정과 헌법, 민병대 쪽으로만 미국 총기배경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었는데, 글을 쓰면서 찾다보니 직간접적인 이유들은 정말 많더라. 어찌되었건 큰 맥락은 미국의 독립과 남북전쟁이라는 굵직한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본다면, 미국의 독립과정에서 유럽국가의 개입이 빨리 이뤄져 쉽게 독립했거나, 애초부터 징병제로 시작해 정규군이 강력해지고 민병대의 중요성이 떨어졌거나,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면, 그러한 역사적 사건으로 결과로 오늘날의 사회문제인 총기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비효과'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참 흥미로운듯 하다. 

 

   여하튼 미국의 총기 규제 논란이 이번에는 실효성있는 정책을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 어렵긴 하겠지만 이번에는 뭔가 한걸음이라도 더 나아가야 안타까운 희생을 줄일 수 있고, 총기 규제로 가는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는가?

 

 

 

 

 

 

 

11월 17일과 18일의 역사

 

- fin -

 

 

 

 

 

 

문장 어색한 부분 수정 (2013.11.18)

문장 어색한 부분 수정 (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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