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6월 22일과 23일의 역사 - 튜링테스트 통과, 5만원권과 미래, 바그라티온 작전 등

스마일루 2014. 6. 2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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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제작중인 5만원권]

 

5만원권 5주년...

지하경제에 활용되는게 아니냐는 논란이 많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사실 5만원권은 폐지 수순을 밟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시기를 떠나, 5만원권 도입 이후에 등장한 스마트폰과 전자결제시스템의 발전은,

정말 가까운 미래에 아예 지갑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으로 결제나 계좌이체가 가능해지는 식으로까지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현금이라는 것의 존재 의미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물론 '현금거래'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5만원권과 같은 고액권은 전혀 필요 없는 상황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수표와 5만원권의 장기적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논란이 있는  숨은 돈들을 양성화 시키는 과정을 진행하는 것은 어떨까?

 

 

 

 

 

 

- 링 크 -

 

6월 23일과 24일의 역사

7년전쟁과 유럽, 프레데릭 더글러스,

쿠베르탱과 올림픽의 부활

http://blog.daum.net/smileru/8888291

 

 

 

- 순 서 -

 

403년전, 1611년 6월 22일

영국의 탐험가 헨리 허드슨이 선원들의 반란으로 실종되었다.

 

102년전, 1912년 6월 23일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 탄생.

 

73년전, 1941년 6월 22일

제2차 세계 대전: 독일군을 비롯한 추축군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여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하다.

3년 뒤 같은 날 붉은 군대는 이에 대한 복수 작전인

바그라티온 작전을 개시하였다.

 

5년전, 2009년 6월 23일

대한민국에서 5만원권이 시중에 유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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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과 23일의 역사

Wikipedia

 

 

6월 22일: 엘살바도르교사의 날

1611년 - 영국의 탐험가 헨리 허드슨이 선원들의 반란으로 실종되었다.

1894년 - 파리-루엔(Rouen)간 최초의 자동차 경주 개최.

1906년 - 스웨덴의 국기가 제정되다.

1940년 - 프랑스나치 독일의 공세에 파리 시를 빼앗기고 항복.

1941년 - 제2차 세계 대전: 독일군을 비롯한 추축군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여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하다. 3년 뒤 같은 날 붉은 군대는 이에 대한 복수 작전인 바그라티온 작전을 개시하였다.

1965년 -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다.

1978년 - 명왕성의 위성 카론 발견

1986년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FIFA 월드컵준준결승전에서 손으로 공을 건드려 득점하다.

1998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잠수정이 대한민국동해안에서 어선 그물에 걸려 좌초

2002년 - 2002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스페인에 승부차기 끝에 PK 결과 5-3 으로 승리하여 아시아 최초로 4강에 진출한다. (터키도 일한 만시즈의 결승골로 세네갈을 1:0 으로 꺾고 4강에 진출함.)

2004년 - 이라크에서 무장유격대에 잡혀 참수당한 김선일 사망.  

 

6월 23일 : UN 공공행정의 날(United Nations Public Service Day)

1314년 - 배넉번 전투가 일어나다.

1534년 - 일본 센고쿠 시대 무장 오다 노부나가 탄생.

1758년 - 7년 전쟁: 크레펠트 전투.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독일크레펠트에서 이기다.

1760년 - 7년 전쟁: 란데슈트 전투. 오스트리아프로이센 간에 벌어진 전투. 오스트리아가 승리했다.

1887년 - 캐나다 의회가 로키 산맥 공원법을 통과시켜 캐나다의 첫 국립공원인 밴프 국립공원이 만들어지다.

1888년 -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공화당의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로 지명되다.

1894년 - 프랑스의 역사학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주창에 의해 고대 올림픽 부활을 위한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설립되다.

1894년 - 미국의 동물학자 알프레드 킨제이 탄생.

1912년 -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 탄생.

1925년 - 중국 광저우에서 반제국주의 시위대에 영국군이 발포하여 50여 명이 사망했다.

1942년 - 제2차 세계 대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가스실에서 최초로 처형당할 첫 번째 유태인들이 파리 시에서 열차에 실리다.

1961년 - 남극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 행동 금지를 담고 있는 남극 조약이 발효되다.

2009년 - 대한민국에서 5만원권이 시중에 유통된다.

2010년 - 대한민국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다.

 

 

 

 

 

 

 

 

403년전, 1611년 6월 22일

영국의 탐험가 헨리 허드슨이 선원들의 반란으로 실종되었다.

 

 

   오늘은 좀 가벼운 소식들을 모아봤다. 우선 첫번째로 영국의 탐험가 헨리 허드슨... 1565년에 태어난 것으로만 알려지고 있는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데, 젊은 시절부터 탐험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북극해 탐험에 관심이 커서, 평생동안 북극을 거쳐 아시아로 이동하는 북서항로, 북동항로의 탐험에 전념했다. 실력도 나름 인정받아 동인도회사의 지원을 받기도 했는데, 결과 발견해낸 것이 바로 '허드슨 강', '허드슨 만', '허드슨 해협'이었다. 이는 나중에 영국의 캐나다 식민지 개척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유능한 탐험가였던 헨리 허드슨... 많은 것을 발견했고 북아메리카 개척에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는 끝내 북서항로, 북동항로를 완성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는 최후를 북동항로 탐험과정에서 맞게 되었다. 북동항로를 찾기 위해 허드슨 만에 진입했지만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하면서 겨울을 북극 지역에서 맞이하게 되었고, 식량부족 속에서 선원들과 불화가 생겨 자신의 아들과 선원 7명과 함께 작은 배로 버려지면서 실종되었다. 1611년 6월 22일이었다.

 

   한편 반란을 일으켜 허드슨 일행을 배에서 내리게 한 선원들은 이후 에스키모들과의 충돌에서 모두 사망했고, 놀랍게도 1632년에 허드슨 일행이 흔적으로 보이는 은신처가 근처에서 발견되었지만 그 뿐이었다.

 

     

 

 

 

 

 

102년전, 1912년 6월 23일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 탄생. 

 

 

   앨런 튜링! 오늘은 튜링에 대해서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워~낙 유명한 인물이라... 몇 줄만 써보면, 그는 뛰어난 수학자였고, 2차세계대전 와중에 독일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자동 계산 기계'를 만들었고, 후에 CPU를 연상시키는 '튜링 기계'라는 개념을 창시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연구를 통해 현대 컴퓨터 발명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는 것 정도가 있겠다. 그리고 그는 1954년에 동성애 논란속에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자살했는데, '애플'사의 한 입 베어먹은 사과로고가 그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애플사는 부인!)

 

   아무튼, 컴퓨터 쪽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튜링이 제안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튜링 테스트'다. 튜링은 1950년에 철학 저널 Mind 에 발표한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에서, '컴퓨터와 인간의 반응을 구분할 수 없다면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심심이'나 'Siri'같은 약간의 대화가 가능한 소프트웨어들이, 그것들이 아직 인간처럼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설령 말이 자연스러워진다고 해도 '생각을 할 수 있어서'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래도 튜링은 구분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면 '생각'을 한다고 봐야 하는 것,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한 셈인데...

 

   이후 '심심이'와 같은 '채터봇chatter bot' 대회라고 할 수 있는 '튜링 테스트' 대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튜링 테스트 방식은 제각각이긴 하지만,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채팅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전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6월 7일에 런던왕립학회가 주최한 '튜링 테스트 2014'에서 '유진 구스트만' 이라는 이름의 슈퍼컴퓨터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이었다. 방식은 5분간 판정단이 사람과 컴퓨터와 채팅을 하면서 30% 이상이 컴퓨터를 찾아내지 못하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다고 보는 것인데, 이번에 33%를 기록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유진 구스트만'을 만든 팀은 이미 다양한 튜링 테스트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었다고 하는데, 이번이 확실히 최고기록이었다고 한다.

 

   튜링이 세상을 떠난지 60년이 되는 해에 벌어진 이 사건... 굉장히 놀라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고, 일각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사기 범죄등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벌써 우려하고 있다. 생각은 해봐야 할 듯?

 

   그런데, 책 '특이점이 온다'로 유명한 '레이 커즈와일'은 '유진 구스트만'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컴퓨터를 찾아내는 5분의 시간이 너무 짧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 3분의 1을 속이면 된다는 기준도 너무 낮다는 주장이 나왔다. 커즈와일은 2029년에 튜링 테스트를 가볍게 통과할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는데...  확실히 레이 커즈와일이 공개한 '유진 구스트만'과의 대화내용을 보면 확실히 컴퓨터스러운게 사실이긴 하다. 질문도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확실히 튜링 테스트를 진정으로 통과하는 봇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어떤식으로 질문에 대답하게 알고리즘을 짜야 할지 그 방식이 상상도 안된다. 정말 튜링의 말처럼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것일까?

 

참고글 : “유진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허튼소리!” - 블로거닷넷

 

 

 

 

 

 

 

73년전, 1941년 6월 22일

제2차 세계 대전: 독일군을 비롯한 추축군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여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하다.

3년 뒤 같은 날 붉은 군대는 이에 대한 복수 작전인

바그라티온 작전을 개시하였다.

 

 

   확실히 히틀러는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유럽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히틀러는, 게르만족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불가침조약을 맺은 소련을 침공해 우랄산맥까지 진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 '고맙게도' 전쟁에 대한 전략적 판단보다는 망상을 이룰 생각만 가득했던 것이다. 

 

참고글 : 문명5G&K-(#2-11) 우랄산맥을 넘어 - 마지막 회 

   그렇게 히틀러의 망상을 이뤄주기 위해 독일군 300만명이 동원된 역사상 최대의 군사작전인 '바르바로사 작전'(오른쪽 지도)이 1941년 6월 22일에 시작되었다. 초기에 독일군은 승전을 이어갔지만, 소련의 격렬한 저항과 보급문제 등으로 고전하기 시작하다가, 단일 전투로는 사상 최대의 전투였던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08~1943.02)에서 패배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되고 만다.

 

   그리고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펼쳐지면서 스탈린이 원했던 '제2전선'이 서유럽에 형성되었고, 독일군의 신경은 분산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발맞춰 연합군인 소련군도 총공세를 계획하니 그것이 바그라티온 작전이었다.

 

   애초에 바그라티온 작전은 6월 중순에 진행될 계획이었지만 보급 문제등으로 연기되었고, 이에 스탈린은 바르바로스 작전을 복수하는 의미로 6월 22일을 디데이로 정했다. 독일군은 소련군의 그러한 총공세를 예상하긴 했지만, 소련군의 거짓 정보등에 휘둘리면서 공격 방향을 예측하는데 실패했고, 다른 방향으로 소련군이 공격해오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양동작전이라 생각하여 위치를 고수하다, 차례차례로 각개격파당하여 완전히 괴멸되고 말았다. 독일군 지휘관들은 철수를 요구했지만 히틀러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지휘관을 해임해버리는 악수를 뒀다.  

   그런 가운데 소련군은 바그라티온 작전(왼쪽 지도)을 차근차근 전개해 갔다. 세 방향에서 출발한 군대는 벨라루스 민스크에 모여 3년만에 민스크를 해방시켰고, 독일의 중앙집단군을 격파시킨 뒤 폴란드까지 진격하였다. 5주간 700km를 진격한 것이었고, 85만여명의 독일 중앙집단군은 최소 38만여명이 전사하고 최소 25만명이 부상, 16만명이 포로 잡혀, 10%도 안되는 6만명만 남는 상상초월의 괴멸적 피해를 입었다.

 

 

   뭐 그랬단다. 끝이다. 흠... 뭔가 2차세계대전사를 다룰때마다 참 느낌이 묘하다. 따지고 보면 70년밖에 되지 않은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역사인데 이렇게 와닿지 않을 수가 없다. 딴 행성의 이야기 같다. 너무 영화화, 게임화가 많이 되어서? 유럽역사여서? 규모가 상상이 안되고 현실과 너무 괴리가 커서? 모르겠다. 이렇게 역사가 잊혀지고, 무감각해지며, 반복되는 것일지도... 

 

 

 

 

 

 

 

5년전, 2009년 6월 23일

대한민국에서 5만원권이 시중에 유통된다.

 

 

   5만원권 발행이 5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요즘에 그래서 이를 다루는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라? 다음주 월요일이 되면 기사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될 것이다.

 

   당시 5만원 발행의 이유는 수표발행과 관리비용이 줄어들고, 1만원권 역시 사용이 줄면서 1만원권 관련 비용이 줄고 개인의 현금 휴대가 간편해진다는 것이었다. 뭐 결국 3천억원에 육박하는 수표 대체 효과를 기대했던건데...  

 

   그런데 요즘 보면 5만원권의 환수율이 낮다는 말이 나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1만원권은 환수율이 95%에 달하는데, 5만원권은 2014년 1~5월까지 27%로, 예전에도 낮았던 40~60% 보다 더 낮아진 상황이다. 발행 초기에야 회수가 안됐다고 하더라도 이젠 5만원권의 비중이 2014년 1~5월 기준으로 66.5%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환수율이 낮아도 너무 낮은 것이다.

 

   결국 돈이 어딘가에서 '현금저장'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그것이 꼭 '지하경제'에 쓰인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각종 고액거래에 유용하게 사용된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정상적인 현금 거래라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금융기관에 그 돈을 입금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환수율이 이렇게 낮아질 수는 없다. 확실히 '지하경제'에 쓰이는 비중이 높다고 봐야 하는 상황...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의 2000만원, 3000만원 논란 속 현금도 5만원권이지?

 

   참 문제다. 내가 볼 때는 당장은 그래도 10년 정도를 내다보고 5만원권의 폐지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물론 5만원권이 유용한 것은 맞다. 나도 당장 축의금 등을 낼 때 5만원권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고, 지갑에 한 장 있으면 편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지 않나? 카카오톡도 전자결제서비스에 나선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고, 이미 앱을 이용해 더치페이 결제 같은 것도 가능한 상황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NFC나 블루투스 기술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손쉬운 결제가 가능해질 것이다. 지갑이 사라지는 세상, 머지 않았다. 내가 10년이나 준 건 너무도 많이 준 것일거다.

 

   여하튼 전자 결제가 그 정도로 활성화 된다면 고액권이 존재할 이유는 사라지게 된다. 애초에 한국은행이 5만원권의 발행 이유로 들었던 수표나 1만원권 관련된 비용절감과 같이, 전자 결제의 확대로 5만원권 관련 비용의 절감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오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때 가서도 5만원권이 여전히 유용하게 쓰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지하경제에서의 사용이 아닌지 잘 분별해봐야 할 일이다. 혹시 현금 사용은 급락했는데 여전히 5만원권은 여전히 회수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런지?

 

   뭐 정치적인, 경제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현금은 이제 사라진다고 봐야 하며, 스마트폰의 지문인식 기술, 근거리 무선통신, 웨어러블 기기 등의 발전을 목격하고 있는 지금 그 미래는 곧 다가올 것이다. 물론 컴퓨터가 등장한 이후 종이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현금은 꽤 오래 명맥을 유지할 것이겠지만, 내 말은 산더미같은 출력물 대신에 PDF파일을 많이 이용하는 것처럼, 5만원권까지는 분명 필요없는 세상이 정말 머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장 10년안에 5만원권을 은행에 맡기지 않으면 휴지조각이 된다고 선포하면 무슨일이 일어날지도 궁금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돈이 쏟아져 나오는거 아닐까 싶기도? 이번 글은 여기까지다.

 

 

 

 

 

 

 

6월 22일과 23일의 역사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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