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2월 3일과 4일의 역사 - 미국-필리핀 전쟁 발발, 세계 암의 날, 스트로에스네르 파라과이 대통령

스마일루 2013. 1. 3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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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이 넘은 모두를 죽여라!"

- 뉴욕 저널, 1902년 5월 2일

 

1899년, 미국은 필리핀을 침공한다.

전투를 지휘하던 스미스 장군은 필리핀 게릴라에게 피해를 입자 격분해

'열살이 되지 않은 모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며, 체포한 죄수들도 10살 이상 모두는 처형되고 만다.

 

그렇게 필리핀에서는 수십만명의 민간인들이 미군에 의해 희생되게 되며,

이후 스미스 장군은 미국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지만

별도의 처벌은 받지 않고 은퇴하게 된다.

 

 

 

 

 

 

 

 

 

 

- 순 서 -

 

24년전, 1989년 2월 3일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가 파라과이의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2월 4일

세계 암의 날

 

114년전, 1899년 2월 4일

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나다.

 

 

 

 

 

 

 

 

 

 

 

 

 

2월 3일과 4일의 역사

Wikipedia

 

2월 3일: 일본세쓰분

1809년 - 독일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 탄생.

1867년 - 일본의 무쓰히토 황태자가 메이지 천황으로 즉위해 일본의 제122대 천황이 되다.

1930년 - 호찌민의 지도로 베트남 공산당이 창설되다.

1966년 - 소련의 무인 우주선 루나 9호가 처음으로 달에 연착륙하여 달 표면의 사진을 지구로 전송하다.

1969년 - 야세르 아라파트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의장으로 선출되다.

1972년 - 제11회 동계 올림픽이 일본 삿포로에서 개최되다(2월 13일까지).

1985년 - 남아프리카 공화국데스몬드 투투 사제가 요하네스버그 성공회 주교로 임명됐다.

1989년 -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파라과이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2009년 - 일본활화산 아사마 산이 폭발했다.

 

2월 4일: 스리랑카독립기념일(1948년), 세계 암의 날

1789년 -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선출되다.

1859년 - 코덱스 시나이티쿠스이집트에서 발견되다.

1899년 - 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나다.

1932년 - 제3회 동계 올림픽이 미국 뉴욕 주 레이크플래시드에서 개최되다(2월 13일까지).

1945년 -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이오시프 스탈린얄타 회담을 갖다.

2011년 - IANAIPv4의 할당 중지를 선언했다.

 

 

 

 

 

 

 

 

 

   #. 1989년 -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파라과이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1912년 독일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는, 군에 입대해 1900년대 초반 파라과이가 주변국과 벌인 영토전쟁에서 공을 세우면서 1951년 육군 총사령관자리에 오른다. 이후 그는 1945년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줄곧 혼란스러웠던 정치상황을 이용해 1954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는데 성공한다. 1904년부터 1954년까지 31명의 대통령을 가졌던 파라과이 민주주의의 몰락이었다.

 

   집권 이후 그는 여느 독재자들이 이 시기에 그랬던 것 처럼, 반공정책을 펼치고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한다. 그를 통해 초기에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의 성과를 거둬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부정선거를 통해 연이어 재집권했던 그에 대한 반대세력이 성장하자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자에 대한 가혹한 인권탄압을 시작했고, 권력 유지를 위해 1962년에는 군대와 경찰에 국가예산의 33%를 투입하기에 이른다. 경제성장을 위해 1970년에는 당시 세계최대규모였던 이타이푸댐 건설을 시작해 전력난 해소와 경기부양을 해나가려 했지만, 각종 악행으로 이미 그에 대한 반발 여론은 큰 상황이었고, 미국과 결탁해 파라과이 비밀경찰들을 미국에서 훈련시키고 그들을 이용해 반대파를 체포, 전기톱으로 반대파를 살해한다던지 처형당한 시체들을 광장에 버려두는 행동을 자행해, UN은 1974년에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를 대량학살을 이유로 비난하기도 했다.

 

   결국 스트로에스네르는 1989년에 역시 쿠데타로 쫓겨나게 된다. 연임을 위해 헌법을 수정하고 8번의 부정선거까지 한 끝에 얻어낸 35년 독재의 끝이었다. 이후 그는 브라질로 도망가 살다가 2006년 8월 16일에 93세의 나이로 갑작스런 뇌졸증 때문에 세상을 떠난다.

 

   스트로에스네르 시절 35년간 파라과이의 1인당 GDP는 416달러에서 2193달러로 성장했지만, 파라과이 의회는 스트로에스네르에게 대통령의 예를 갖추는 것을 거절, 유해도 송환하지 않았고 결국 스트로에스네르는 브라질에 묻혔다.

 

   뭐 이에 대해서 길게 코멘트 달 것은 없는 것 같다. 독재자는 비슷비슷하다고나 할까? 헌법 수정에 부정선거... 역시 독재자는 산업 발전 시절에나 어울리는 것 같다. 참고글도 한번 보시길.

 

참고 글

12월 30일과 31일의 역사 - 독재자 마르코스와 박정희 

 

 

 

 

 

 

 

 

   #. 2월 4일: 세계 암의 날

 

   세계 암의 날은 왜 2월 4일일까? 엄청난 궁금증이 밀려오지 않을 수 없다. 전세계적 암사망자가 2400만명 인것일까? 집계된 암사망자가 1억명을 돌파한 날이 2월 4일일까?

 

   그 이유는 '새천년을 위한 암 대항 세계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파리 헌장이 2000년 2월 4일에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국제 암 억제 연합(UICC, Union for International Cancer Control)이 2005년에 '세계 암의 날'을 만들었다. 이런거 찾아보면 꼭 허무한 듯?

 

   오늘날 매년 1200만명이 암 판정을 받고 있으며, 760만명이 암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참으로 끔찍한 현대적 질병이 아닐 수 없다. 음... 여기서 끝내기에는 너무 짧으니까 암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면, 암의 유전자를 추적해본 결과, 1000만년전 서아프리카 지방에서 우리의 선조 유인원에게 침투한 암 유발 바이러스의 RNA(DNA와 다른 것)가 오늘날 전 인류에게 퍼졌고, 그것이 유해한 물질, 즉 '발암 물질'에 의해 자극받아 작동하기 시작하면 암세포가 만들어져 암에 걸리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암에 걸리는 원인은 1000만년전 원숭이의 잘못 때문이랄까?

 

 

 

 

 

 

 

 

 

 

   #. 1899년 - 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나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겠다. 쿠바는 콜럼버스가 쿠바를 발견한 이후부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서서히 쿠바는 독립의 조짐을 보였고, 그 와중 미국은 루이지애나를 프랑스로부터 구입하는 등 영토를 구입해 확장을 지속하고 있었으며 스페인에게 쿠바를 팔 것을 요청하니 그것이 1853년이었다. (오른쪽은 스페인 최대 영토)

 

   이후 1867년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구입한 미국은, 1895년에 다시한번 쿠바에 관심을 가진다. 쿠바인들이 독립을 위해 무장봉기를 일으키자 그를 지원한 것이다. (결국 봉기는 실패했고 10만명이 수용소에서 사망한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 처럼 쿠바도 독립하기를 빌었지만, 미국 매킨리 대통령등은 경제적, 지정학적 관심이 컸을 뿐 쿠바의 독립에는 관심이 없었다.

 

   1898년에 다시한번 쿠바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자 미국은 1월에 쿠바에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메인호'라는 해군함정을 쿠바로 보낸다. 그런데 1898년 2월 15일 오후 9시 40분에 메인호가 갑자기 폭발로 침몰해 266명의 미 해군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직도 스페인군의 기뢰가 원인인지, 보일러실 폭발이 원인인지는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이로인해 결국 미국과 스페인간의 전쟁이 벌어진다. 땅을 돈주고 사서 넓히던 미국이, 무력을 쓰기 시작한 첫 시작이었다.

 

   결국 전쟁은 1898년 10월에 미국의 승리로 끝난다. 이 전쟁의 와중에 역시 스페인의 식민지던 필리핀에서도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필리핀 사람들은 1898년 6월 12일에 독립을 선포하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미국에게 패배한 스페인이, 2000만달러에 필리핀을 미국에 팔아넘기는 조약을 받아들이면서 필리핀이 미국 지배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필리핀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1899년 1월 1일에는 초대대통령 '아기날도'가 취임하기까지 하지만, 결국 1899년 2월 4일,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우월한 화기를 가진 미군에 맞서 필리핀 주민들은 다수가 칼을 들고 싸웠다. 전쟁의 진행은 느렸지만, 꾸준하게 미군의 승리가 계속되어, 1900년 5월에는 미군 장군으로 아서 맥아더 주니어(훗날 한국전쟁에서의 맥아더 장군의 아버지이다)가 부임했고, 1901년 3월에는 초대 대통령 아기날도가 사로잡히게 된다.

 

   1901년 9월에는 필리핀이 이 전쟁에서 유일한 승리를 달성하게 되는데, 이후 격분한 미군은 닥치는 대로 모든 마을 건물을 부수고 필리핀인들을 학살하는 식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시작했으며, 1902년 7월 필리핀 잔당이 전멸했을 때에는 60만명의 필리핀인이 희생된 뒤였다. (최소 20만에서 최대 600만명까지의 이야기가 있다)

 

   결과적으로 필리핀은 미국에게 패했고 식민지가 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독립투쟁이 계속되어, 1934년에 미국은 필리핀의 군대를 미국이 통제하는 대신 자치를 인정하는 '피딩스-막다피 법'을 통과시켜 필리핀을 연방 형태로 부분 독립시켰고, 해군 기지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필리핀을 완전히 독립시키는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필리핀은 일본 제국에게 점령되며, 결국 100만명의 필리핀이 사망하고 일본 제국이 패망한 1946년 7월 4일, 필리핀은 드디어 미국으로부터 독립한다. 하지만 필리핀의 독립 기념일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1898년 6월 12일로 정하고 있다. 그 이후 미국, 일본의 지배는 독립을 위한 항전의 연장선으로 본 것이다. 

 

   미국과의 전쟁... 미국이 제국으로 등장해간 과정과 함께 피해를 보기도 하고, 독립을 얻기도 했다. 필리핀 사람들이 미국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떨까? 일단 필리핀 사람들은 반미 감정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가적으로는 미국과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스페인을 몰아낸 것도 결국은 미국이었고, 일본을 몰아낸 것도 미국이었다. 최근 남중국해를 놓고 벌어지는 중국과의 갈등은 미국과의 협력을 더욱 가속화 하고 있다. 힘의 논리란 이런 것인 듯 하다.

 

 

 

 

 

 

2월 3일과 4일의 역사

 

- fin -

 

 

 

 

 

 

 오타 수정 (20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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