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2월 2일과 3일의 역사 - 전두환 구속, 보팔 가스누출사고

스마일루 2012. 11. 2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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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반란중요임무종사, 불법진퇴,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상관살해, 상관살해미수,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

 

구속 당시 전두환의 죄목이다.

 

민주주의 성장사에서의 아픈 역사를 되돌릴 수도 없고

당시의 시대적 미성숙을 아쉬워 해야 의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적 성숙을 이뤄가고 있는 이 자리에 선 우리가

그것이 옳았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 아픈 역사가 다시 우리의 미래로 다가오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된다.

 

용납 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암흑기란 없다.

민주주의, 인권, 언론자유 등의 헌법적 가치란 그런 것이다.

 

 

 

 

 

 

 

 

 

 

 

 

- 순 서 -

 

28년전, 1984년 12월 3일

보팔 가스 사고: 인도의 보팔에서 아이소사이안화 메틸 가스가 누출되어 최소한 1만 8천 명이 사망하다.

 

17년전, 1995년 12월 3일

대한민국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다.

 

 

앞으로 Today in History는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준비되는대로 바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2월 2일과 3일의 역사

Wikipedia

 

 

12월 2일

1409년 - 라이프치히 대학교 설립

1804년 -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나폴레옹 1세가 황제에 오르다.

1805년 -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격파.

1869년 - 교황 비오 9세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다.

1899년 - 미국영국사모아 군도 분할협정이 체결되다.

1942년 - 우라늄 핵분열 연쇄반응 실험이 성공하다.

1961년 - MBC 라디오 (AM 900KHz), 서울 인사동에서 개국

1972년 -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가 일어났다.

2008년 - 타이 헌법재판소국민의 힘(PPP)정당 활동을 금지 시킴. 솜차이 옹사왓 총리직 해임

2010년 - NASA 연구진이 지구상 최초로 비소를 이용해 번성하는 생물을 발견하고, GFAJ-1라고 명명하다.

 

 

12월 3일

1921년 - 조선어연구회가 창설되다.

1971년 - 서울타워서울 남산에 세워지다.

1973년 - 파이어니어 10호가 처음으로 목성에 도착하다.

1984년 - 보팔 가스 사고: 인도보팔에서 아이소사이안화 메틸 가스가 누출되어 최소한 1만 8천 명이 사망하다.

1995년 - 대한민국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사태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다.

1997년 - IMF대한민국 정부간의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되어, IMF 구제금융 사태가 시작되었다.

1997년 - 오타와 협약 조인.

 

 

 

 

 

 

 

 

 

   #. 1984년 - 보팔 가스 사고: 인도보팔에서 아이소사이안화 메틸 가스가 누출되어 1만 8천 명이 사망하다.

 

   1984년 12월 2일, 인도 보팔에 있는 미국의 다국적 화학약품 제조 기업 '유니언 카바이드'(현재 다우케미컬이 인수)의 화학공장에서 아이소사이안화 메틸 가스(MIC)가 유출된다. 사실 이 공장은 살충제 & 비료 공장으로, 1969년에 인도 정부의 요청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1981년에 이미 '포스겐'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안전에 대한 우려가 있어 왔었다. '포스겐'은 1차세계대전때 쓰인 독가스로, 물과 만나면 염산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흡입했을시에는 물론, 피부에 닿았을시 수포와 물집이 생기며 폐는 녹아내리게 되는데, 그런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 또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참 보면 항상 작은 사고가 먼저 있기 마련이다. 

 

   1984년에 누출된 MIC는 포스겐과 메틸아민을 반응시켜 만들고, 고무와 접착제 생산에 이용되며 살충제의 원료로도 쓰이는 물질로 인체에 매우 유해하다. 하지만 유니언 카바이드는 항시 저온에서 관리되어야 하는 아이소사이안화 메틸 보관시설을, 시설 설치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설계방식으로 건설했고 안전관리 인원과 인원에 대한 교육을 줄인채로 관리했다. 사실 애초에 선진국에서의 안전 규제 강화를 피해 인도에 온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검증되지 않은 설계는 압력확인과 온도조절도 제대로 안되는 '완전히 잘못된' 설계였고, 결국 온도가 올라가자 압력이 증가해 저장탱크의 밸브가 파열되면서 2시간만에 탱크내의 MIC 85%가 누출된다. 무려 36톤이었다. (참고로 최근 구미에서 누출된 불산은 8톤이었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누출 후 2800명의 인근 주민이 사망했고, 최종적으로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2만명이 사망했다. 12만명이 실명, 호흡곤란, 위장장애등 영구손상을 입은채 살아가고 있으며,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 이상으로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는 20세기 최대의 인명사고라고... 후에 조사를 해보니 공장 부지에서는 기준치보다 2만배에서 6백만배 높은 수은이 검출되고 보팔 사람들이 마시는 물에서도 12가지의 유독 물질이 검출 되었다니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회사가 존재한다니!

 

   이에 대한 피해보상은 놀랍게도 20년뒤인 2004년에 이뤄졌는데, 보상액은 56만건에 대해 500달러가 지급되었다고 한다. 500달러라니! 이 중 1퍼센트 5000명 정도는 2~3천달러를 받았다는데, 사람 목숨이 그 정도 밖에 안되는 건가 싶다. 심지어 사망자 보상신청 22149건중 15100건만 보상되었다고. 물론 3천달러가 안 넘는 선에서... 주민들의 투쟁은 아직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고 한다. 정말 끔찍할 따름이다.

 

 

 

 

 

 

 

 

 

 

   #. 1995년 - 대한민국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사태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자 12월 12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1980년 5월 18일 전두환의 집권에 반대하는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 전두환은 1988년 퇴임 직후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구속 위기를 맞았고 대학생들도 그의 구속을 외치며 집회를 열었지만, 이어서 정권을 잡은 충실한 전두환의 부하, 노태우에 의해 그를 피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은둔 생활을 했지만, 전두환과 대립각을 세우던 김영삼이 1993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문민 정부가 출범하자 수만명의 국민이 전두환등을 반란을 일으킨 죄로 고발하면서 다시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전두환을 불구속 기소하는데 그친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허나 1995년, 노태우가 비자금 혐의로 구속되자 다시 전두환 처벌 요구가 거세졌고, 김영삼 대통령도 5.18 특별법을 제정하여 공소시효를 정지시킨다. 또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불구속 기소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부당하다고 판결내리면서 검찰의 재수사가 시작되게 된다.

 

   결국 1996년 1월 24일, 전두환과 관련자 16명이 반란혐의로 구속된다. (위키내에서 날짜가 다른듯?) 전두환은 재판과정에서 5.18진압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좌파세력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6년 12월 16일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선고받았으며 1997년 4월 17일 확정판결을 받는다. 전두환의 죄는 "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반란중요임무종사, 불법진퇴,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상관살해, 상관살해미수,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 였다. 이후 스스로에게 내린 5.18진압을 잘했다며 스스로에게 준 훈장도 박탈당한다.

 

   하지만 8개월뒤인 1997년 12월 22일,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사면받는다. 추징금은 사면받지 못했는데, 2205억중 532억만 납부해 1673억이 환수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노태우는 2629억 중 2286억을 납부, 387억 남음)

 

   참 보면 5.18때도 그랬고, 전두환이 가졌던 생각도 그렇고, 정부에 반발하는 시위는 모두 좌파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박정희 시절 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이어진 우파들의 뿌리깊은 고정관념이다. 물론 실제 종북세력, 고정간첩들이 없는 게 아닌 건 확실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위하면 빨갱이' 라는건 그것이 바로 색깔론이고 고정관념이다. 생각해봐라. 우파 대통령한테 반대하면 다 빨갱이라고? 에이, 논리적으로 그게 말이되나? 그러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면 자신에 대한 모든 반대를 무시하게 되고, 불통, 반민주주의적 성향을 보일 수 밖에 없다. 안될 일이다. (사진은 쌍용차 노조 진압 당시 사진)

 

   또한 전두환 역시 88올림픽을 유치하고 물가를 안정시켰다는 점 등이 평가받고 있는데, 박정희의 경우 더욱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지만, 이런 경우 도덕적으로 헛점이 있는 논리이지만 시장주의자들이 좋아하는 공리주의 적으로도 경제보다 민주주의를 위하는 것이 더욱 공리를 취하는 길이며, 또한 100년, 1000년 뒤에 어떤 국가가 더 잘살고 국민이 만족하는 국가가 되어 있을지를 생각해본다면, 즉 지속가능한지를 본다면, 역시 경제성장 보다는 헌법적 가치인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맞는 길이다. 성장할 것인지도, 분배할 것인지도 민주주의가 선택할 수 있고 말이다. 왜 독재를 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건가? 성장과 민주주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민주주의 성장사에서의 아픈 역사를 되돌릴 수도 없고 당시의 시대적 미성숙을 아쉬워 해야 의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적 성숙을 이뤄가고 있는 이 자리에 선 우리가 그것이 옳았다고 인정 하는 순간, 그 아픈 역사가 다시 우리의 미래로 다가오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된다. 용납 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암흑기란 없다. 민주주의, 인권, 언론자유 등의 헌법적 가치란 그런 것이다.

 

 

 

 

 

 

 

12월 2일과 3일의 역사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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