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1월 16일과 17일의 역사 - 관용의 날, 최초의 수소폭탄, 마우스 발명, 진공관 발명

스마일루 2014. 11. 1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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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에 위협이 존재하고,

비 통제를 위한 효과적이고 강제 가능한 합의가 없는 현 상황에서

미합중국 정부는 자유 세계의 보호를 위해

이 거대한 에너지의 개발을 내다보는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11월 16일과 17일의 역사

Wikipedia

 

 

11월 16일 : 세계 관용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olerance)

1632년 - 뤼첸 전투에서 개신교 군대가 로마 가톨릭군대를 격파했지만 지도자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전사했다.

1904년 - 존 앰브로즈 플레밍진공관을 발명하다.

1952년 -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다.

1994년 - 해양법에 관한 국제 연합 협약이 발효되다.

1995년 - 노태우대한민국 대통령재벌 총수 등으로부터 2,358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다.

2001년 - 윈도 XP가 발매되다.

2002년 -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사스)의 첫 발병 사례가 중화인민공화국 광둥 성에서 발견되다.

 

11월 17일 : 유학생의 날(International Students' Day)

1558년 -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으로 즉위.

1790년 - 독일의 수학자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 탄생.

1796년 - 로마노프 왕조의 8번째 군주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사망

1851년 - 조선 고종비 명성황후 탄생.

1869년 - 지중해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다.

1871년 - 미국 총기 협회가 설립되다.

1887년 - 영국의 장군 버나드 로 몽고메리 탄생.

1905년 - 대한제국일본 제국 간에 을사조약이 늑결되다.

1969년 - 미국소련 간에 전략 무기 제한 협상(SALT I)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시작되다.

1970년 - 더글러스 엥겔바트마우스에 대한 특허를 얻다.

 

 

   1869년 -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다.

   참고글 : 5월 5일과 6일의 역사 - 수에즈 운하,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 등

 

   1871년 - 미국 총기 협회가 설립되다.

   참고글 : 11월 17일과 18일의 역사 - 간단: 미국총기협회 설립과 배경

 

 

 

 

 

 

 

 

   ◈ 11월 16일 : 세계 관용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olerance)

 

   세계 관용의 날? 뭔가 그 배경을 궁금하게하는 이름이더라. 찾아보니 일단은 1995년 '세계 관용의 해'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1995년이 세계 관용의 해가 된 이유는 바로, 2차세계대전 종전 50주년, UN탄생 주년, 유네스코헌장 50주년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국에게는 해방 50주년이자 분단 50주년이기도...)

 

   그렇게 세계 관용의 해였던 1995년 11월 16일에는 '관용과 원칙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면서 11월 16일을 관용의 날로 정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관용의 원칙에 관한 선언'은 참으로 멋지더라. 제 5조까지 있고 1~3조가 주 내용인데, 1조만 가져와 본다. 전문은 링크하였으니 한번 읽어보시길. 그나저나 우리 국가인권위원회는 또 등급보류판정을 받아, 대한민국 인권추락은 세계적으로 공인받는 수준이 되었는데, 아래 선언문을 보다보니 참 씁쓸하더라.

 

 

제 1조 관용의 의미


관용은 소중한 원칙일 뿐만 아니라 평화와 모든 국민들의 경제적, 사회적 향상을 위한 필요조건이기에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관용을 신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결의하면서,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1 관용이란 우리 세계의 문화와 우리의 표현 형태, 인간 존재의 방식 등의 풍부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며, 수용이며, 이해이다. 그것은 지식, 개방성, 커뮤니케이션, 사상과 양심과 신념의 자유에 의해 증진된다. 관용은 차이 속의 조화이다. 그것은 도덕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법적 필요조건이다.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덕목인 관용은 전쟁의 문화를 평화의 문화로 바꾸는 데 이바지한다.


1.2 관용은 양보나 겸손이나 은혜가 아니다. 관용은 무엇보다도 다른 이의 보편적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인정하는 적극적 태도이다. 관용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기본적 가치를 침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없다. 관용은 개인, 집단, 국가에 의해 행사되어야 한다.


1.3 관용은 인권, 다원주의 (문화적 다원주의를 포함), 민주주의, 법의 지배를 지지하는 책임감이다. 그것은 독단주의와 절대주의에 대한 거부를 뜻하며 각종 국제적 인권문서들이 정해 놓은 기준을 확인하는 것이다.


1.4 인권의 존중과 일치하는 관용의 실천은 사회의 불의를 용인한다든지 자기의 확신을 포기 또는 약화시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자유로이 자기 자신의 확신을 고수하고 다른 사람이 그들의 확신을 고수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원래 용모, 상황, 언사, 행위, 가치 등에서 다양한 인류가 평화롭게 지금 그대로 살아갈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임을 뜻한다. 그것은 또한 한 사람의 견해가 다른 사람에게 강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링크 : 관용의 원칙에 관한 선언 전문 - 유네스코 / 시민단체 "'등급 재보류' 망신..인권위원장 사퇴해야" - 연합뉴스

 

 

 

 

 

 

   ◈ 1904년 - 존 앰브로즈 플레밍이 진공관을 발명하다.

 

   존 앰브로즈 플레밍! 그렇다. 바로 왼손 법칙, 오른손 법칙의 그 플레밍이다. 1885년에 그 법칙들을 정리한 플레밍은 1904년에 최초로 진공관을 만들어 냈는데, 1948년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고 1960년대에 널리쓰이기 전까지, 진공관은 거의 반세기간 초기 전자기술 시대의 핵심 부품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고전력 소자에 일부 사용되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것 같다. 단순히 전류와 자기장에 대한 법칙만 밝혀낸 것이 아니라 진공관이라는 실용적인 물건까지 개발해 냈다는 것... 더불어 1900년대 초에는 마르코니와 공동연구를 하여, 마르코니가 인류 첫 대서양 무선통신을 성공하는데도 기여했다고 하더라. 단순한 물리학자를 넘어, 훌륭한 공학자이기도 했던 셈이다. 참 대단하고, 많은 과학자, 공학자들이 그러한 과학과 현실의 연계와 관련하여 본받아야 할 인물이 아닌가 싶다.

 

 

 

 

 

 

   ◈ 1952년 -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공부했던 '에드워드 텔러'... 그는 '불확정성의 원리'로 유명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로부터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는데, 독일에서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자 1935년에 미국으로 이주한다. 이후 학생들을 가르치다 '맨해튼 계획'에 참가해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원자폭탄 다음 단계는 수소폭탄이다' 라는 주장을 줄곧 했다고 한다. 이후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1949년에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면서 시작된 미국의 수소폭탄 계획에 참가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수소폭탄 설계를 제안하게 되고, 이후에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인 '스타니스와프 울람'이 그 설계를 수정해 최종적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딴 '텔러-울람'설계를 완성하게 되면서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은 현실이 된다.

 

   태평양의 '에니워틱' 환초에서 시행된 미국의 첫 수소폭탄 실험은 11월 1일에 시행되었다. 실험에 앞서 이미 1년도 넘게 전에 주변 주민들은 모두 이주된 상황이었다고... 폭발과 함께 섬은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폭 5km의 불덩어리, 높이 37km와 폭 161km의 버섯구름이 관측되었다.

 

 

인류 첫 수소폭탄 실험의 전과 후 항공사진. (위/아래)

Elugelab이라는 섬이 사라져 버렸다.

 

 

   출력은 10.4메가톤으로,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700배 이상이었다. 실험은 11월 1일에 시행되었지만, 미국은 실험이 성공했다는 것을 16일에 발표했다. 그래서 위키에 11월 16일의 역사로 기록된 듯 한데... 아무튼 16일 발표당시 미국 원자력 위원회의 발표 내용은 인상적이다.

 

 

"세계 평화에 위협이 존재하고,

비 통제를 위한 효과적이고 강제 가능한 합의가 없는 현 상황에서

미합중국 정부는 자유 세계의 보호를 위해

이 거대한 에너지의 개발을 내다보는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일부 내용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수소폭탄 실험

 

  

 

 

 

 

 

   ◈ 1970년 -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마우스에 대한 특허를 얻다.

 

   오늘 이상하게 '공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의도한건 아닌데... 사실 최초의 마우스는 1952년에 캐나다 군사프로젝트 과정에서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마우스는 아니었다. 바로 '트랙볼'이었다. 볼을 직접 손굴리는 형태로, 최근에도 디자이너들에 의해 사용되고는 있지만 확실히 편한 형태는 아니었다.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된 트랙볼 마우스가 대중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1970년(1967년?)에 공학박사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스탠포트 연구소에서 가로-세로 방향으로 바퀴가 달린 형태의 마우스를 최초로 개발했다. 처음에는 쓸모없다며 박대받은 것으로 유명하기도 한데... 아무튼 마우스 개발과 동시에 특허를 냈는데, 1980년대 중반부터 애플의 매킨토시와 함께 PC시대가 시작되었을 때는 특허가 만료된 후여서 특별히 돈을 벌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특허가 유효하던 시절에도 마우스 기술의 사용료를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하니, 참 애초에 이런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발전하는게 아닌가 싶다. 왜 'WWW'(월드와이드웹)도 그렇잖아?

 

   참 마우스라는 것은 대단한 장치가 아닌가 싶다. 가끔은 나도 쓰면서 놀란다. 마우스를 움직일때 화면의 포인터가 움직이는 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포인터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그 감각을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하는 것에서 말이다. 단순히 익숙해져서라기 보다는, 손으로 잡고 움직이는 마우스라는 기술의 근본이 너무 사람과 잘 맞는게 아닌가 싶다. 터치나 음성인식, 나아가 안구인식이나 뇌파인식 방식의 인터페이스가 나오더라도, 마우스라는 장치는 그 속에서도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지 않을까?번주는 여기까지다.

 

 

 

 

 

 

11월 16일과 17일의 역사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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