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1월 2일과 3일의 역사 - 친일파 이학재, 국제우주정거장 첫방문, 추축국

스마일루 2014. 11. 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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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찍은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사진]

 

최근 미국 상업 우주 비행선들이 실패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더라. 무인화물선이 발사에 실패했고,

우주여행을 위한 민간우주비행선 역시 추락해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주로의 진출은 계속되어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무한한 가능성이 우주에 있다.

 

지금 우주개발에 주저하는 1, 2년은,

훗날 인류가 달을 해외여행 가듯 가볍게 갈 수 있는 날을

수십년씩 늦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링 크 -

 

11월 3일과 4일의 역사

- 우주개 '라이카', 미국 대륙군,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독립

http://blog.daum.net/smileru/8888366

 

 

 

- 순 서 -

 

105년전, 1909년 11월 2일

- 이등공송덕비건의소가 세워졌다.


78년전, 1936년 11월 2일

-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베를린-로마 추축을 선언하다.

 

14년전, 2000년 11월 2일

- 국제 우주 정거장에 첫 탐사팀이 도착하다.

 

 

 

 

 

 

 

 

11월 2일과 3일의 역사

Wikipedia

 

 

11월 2일: 서방 기독교위령의 날

1434년 - 장영실, 이천, 김조가 앙부일구를 제작했다.

1570년 - 북해에서 발생한 해일홀란드에서 유틀란트까지 덮쳐 천 명 이상이 사망하다.

1755년 - 프랑스의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탄생.

1795년 - 프랑스 혁명: 프랑스 총재정부가 발족되다.

1895년 - 첫 번째 가솔린 동력을 이용한 경주가 미국에서 개최되다. 1등 상금은 2천 달러였다.

1909년 - 이등공송덕비건의소가 세워졌다.

1914년 -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전쟁을 선포하다.

1917년 - 영국아서 밸푸어 외무장관이 유대인의 나라를 팔레스타인에 만들겠다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하다.

1930년 - 하일레 셀라시에 1세 에티오피아의 황제가 되다.

1936년 -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베를린-로마 추축을 선언하다.

1945년 - 일본사회당이 결성되다.

1950년 -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사망.

2000년 - 국제 우주 정거장에 첫 탐사팀이 도착하다.

2004년 - 조지 W 부시미국 대통령에 재선됨.

 

11월 3일: 파나마·도미니카 연방·미크로네시아 연방독립기념일, 일본문화의 날

1783년 - 미국대륙군이 해산되다.

1928년 - 일본의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 탄생.

1929년 -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다.

1945년 - 평양에서 조만식을 당수로 하는 조선민주당이 창당되다.

1957년 - 소련지구 궤도에 오른 첫 생물인 라이카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하다.

1987년 - 그리스·터키 총리, 별도 정상회담을 통해 상호 무력사용 포기 및 1년 이상 보류되고 있는 불가침조약 이행 합의. 두 나라는 역사적 배경으로 관계가 좋지 않은데다가 키프로스 문제를 둘러싸고 계속 반목을 거듭.

1992년 -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이 제42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다.

 

 

 

   1917년 - 영국의 아서 밸푸어 외무장관이 유대인의 나라를 팔레스타인에 만들겠다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하다.

 

   참고글 : 문명5BNW-(#1-14) 이스라엘 건국, http://blog.daum.net/smileru/8888367

 

 

 

 

 

 

 

 

 

1909년 11월 2일

- 이등공송덕비건의소가 세워졌다.

 

 

   이게 보면 단어도 어렵다. 이등공송덕비건의소? 보니가 이등공, 송덕비, 건의소, 라고 읽으면 맞는 것이더라. 이동공이 세운 공덕을 기리기 위한 비석(송덕비)을 세우는 걸 건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무소(건의소, 건립사무소)가 되겠다. 모금운동을 하고 그랬다는데...  

 

   그럼 여기에서 '이등공'이 누구냐는 물음이 생기게 된다. 바로 '이토 히로부미'를 부르는 말이다. 이토히로부미, 또는 그의 이름을 한글 발음으로 그대로 옮긴 '이등박문' 보다 높여 부르는 말이 바로 '이등공'인데, 그가 1909년 10월 26일에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사망하자 그런 추모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었다. (사진속에서 5번이 바로 이토히로부미)

 

   놀라운건, 그를 주도한 사람이 한국인 '이학재' 였다는 점이다. 일본사람이 했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식민지배를 당하고 있던 한국인이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한지 1주일만에 그를 추모하는 비석을 세우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학재는 누구인가? 뭐 상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보부상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일본이 한반도에 진출하면서 열렬한 친일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등공송덕비건의소를 세운 뒤에는 역시 친일파였던 흥성대운군의 서녀 사위이자 매국노 이완용의 이복 서형인 '이윤용'과 송덕비를 세우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경시청에 탄원서도 제출했다고.

 

   글쎄, 뭔가 '지금이 일본제국에 잘 보일 때다!'라고 생각해 움직인 것처럼 친일활동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는데, 건의소를 세우고 2개월 뒤인 12월에는 3백만 조선 상업인들을 대표하는 것이라며 '한일합방찬성서'라는 문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상무조합본부 회원들은 그를 이학재의 단독행동으로 규정하고 그를 탈퇴시켜버렸고, '연안 이씨' 문중에서는 그를 족보에서 삭제하는 걸 논의하기도 했다 한다. 실제 삭제했다는 말도 있는데 확인되진 않은 듯 하다.

 

   어찌되었건 그는 한일 고위층의 큰 관심을 받을 정도로 '최고의 친일파'로 신임을 받았는데, 그의 최후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으로 넘어갔다는데, 그곳에서 잘먹고 잘 살다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심지어 일본 극우단체의 '한일합방기념비' 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하니, 친일파를 넘어서 그냥 '명예 일본인'이 된게 아닌가 싶다.

 

   아참, 이등공송덕비는 결과적으로 세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동상을 세우자는 의견과 돌비석을 세우고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자는 의견을 놓고 갈등이 있었고, (뭐지...) 그 외에 다른 친일 단체와의 이권다툼도 많았다고... 애초에 '추모'가 목적인건 확실히 아니었던 듯?

 

   아무튼 협박에 굴하면 또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친일행적을 한 사람들, 참 이해할 수 없다. 기회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듯 하고? 일본을 이길수 없다는 생각, 일본이 조선의 미래라는 어떤 스스로의 사상에 따라 행동하기도 했지만, 논리가 어떻게 되든 나라를 팔아먹는 행태를 하는건 당연히 용인받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오늘날 이학재를 비롯하여 친일행적을 한 사람들은 당연히 오늘날 친일파로 잘 분류되어 있는데, 이학재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찾아보고자 위키에 있는 링크를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조사보고서를 보려 하니 홈페이지 접속이 안되더라. (www.pcic.go.kr) 2009년 말에 4년 6개월간의 조사를 마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위원회가 활동을 마쳤는데, 이후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공개를 하겠다고 했지만 5년여가 지난 지금 홈페이지는 폐쇄 된 듯 하다. 씁쓸할 따름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 아닐까?

 

 

 

 

 

 

 

 

 

1936년 11월 2일

-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베를린-로마 추축을 선언하다.

 

 

   옛날부터 세계사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었을 때 좀 이해가 안 됐던 단어가 '추축국'이었다. '추축'이 뭐지? 영어로 'axis'인데 그냥 '축' 아닌가? '주축'(주된 축)인가? 그러다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궁금증을 해소했던 기억이 있다. '추축'이라는 단어가 아예 있더라. 뜻을 살펴보면, '1) 사물의 가장 긴요한 부분 2) 정치나 권력의 중심' 이라는 뜻인데, 바로 2)번 뜻으로 사용된 것이 추축국에서의 추축이겠다. 영어로는 '축', '추축'모두 'axis'인데, 한문과 한글로 바뀌면서 좀 더 중요한 축, 정치적 의미를 지닌 축, 을 표현하고자 '추축'으로 사용된 것이다.

 

   아, 아무튼... '추축국'이란 다들 잘 알고 계시다시피 2차세계대전을 발생시킨 국가들을 일컫는 말이다. 헝가리의 파시스트 총리 '주러 굄뵈시'가 추축국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의 삼국동맹을 주장했고, 1936년 11월 오늘,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베를린 로마 추축'을 선언하면서 추축국이 현실화 되었으며, 1940년 9월 27일에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추축이 구성되고 이후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등으로 추축을 확장해나갔다. 

 

   그들은 단순한 동맹을 넘어, 경제적인 상호 지원이나 교류와 함께 정치적으로도 서로 조율된 행동을 해 나갔고, 동시에 대놓고 전쟁을 준비해갔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딱 봐도 세계 평화에 위협적인 국가동맹이 어떻게 구성될 수 있었는지, 다른 국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고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그러한 역사 때문에 한국과 미국이 함께 훈련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함께 훈련하는 것에 대해 서로가 서로를 더욱 경계하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단순히 상호 방어를 위한 동맹이 아닌, 공격을 위한 추축국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게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2000년 11월 2일

- 국제 우주 정거장에 첫 탐사팀이 도착하다.

 

 

   문명:BE 연재도 시작했는데 우주에 대한 역사를 하나 다뤄봐야 겠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주 산업이 실질적으로 큰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우수 두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최고급의 과학기술력을 발전시키며, 첨단 산업분야로의 파급력이 적지는 않은데다가 인공위성 발사등을 위해 필요한 산업이고, 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우주 산업밖에 없으며 그래서 필요하지만, 실제 '돈'이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경제 파급효과들이 잘 안 드러나서 더 그렇겠다만...) 뭐 최근에는 슬슬 돈이 되기 시작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봤을 때 인류가 꾸준히 우주로 탐사선을 보내는 등의 개발을 계속 해 나간다는 것은, 확실히 인간의 과학적 호기심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냉전시절 체제 경쟁에 사용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먼 미래의 경제-군사적 활용성이 대두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쪽에서의 필요 이상으로 인류는 우주에서 많은 일을 진행해 왔다.

 

   특히 이 국제우주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 ISS)의 경우에는 정말로 그런 것 같다. ISS는 미국의 '프리덤 우주정거장' 계획과 러시아의 '미르2 우주정거장' 계획, 일본의 '키보 우주연구실', 유럽의 '콜럽버스 우주연구실' 계획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유럽은 유인우주선이 없기 때문에 자국 혼자서는 우주연구실을 발사해도 운용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결국 미국과 소련의 우주정거장 계획에 묻어가는 느낌이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 네 나라만 이 ISS 건설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벨기에, 덴마크, 스웨덴, 스페인,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위스, 일본, 캐나다, 브라질, 이렇게 16개국이 참여했는데, 한국은 미국이 참여를 제안해왔지만 비용이 너무 커 참가하지 못했고, 후에 우주입자검출기를 제작해 ISS에 장착하는 제안서를 NASA에 제출했지만 무산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국제우주정거장은 1998년 11월 20일 '자르야'를 시작으로 건설되기 시작한다. 이후 유니티, 즈베즈다와 같은 핵심 모듈들이 발사 된 뒤, 2000년 10월 11일 뼈대 역할을 하는 'Z1 트러스'가 발사되어 설치되는데, 그 후 2000년 10월 31일에 건설중인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첫번째 우주인들이 향하게 된다. 총 3명으로, 미국인 윌리엄 세퍼드, 러시아인 세르게이 크리칼레브, 유리 기첸코가 바로 그들이었다. (Expedition 1, 원정 1, 위의 3인 사진)

 

 

Expedition 1이 갈 때 즈음의 건설중인 ISS의 모습. 2000년 9월 18일.

 

 

   개개인에 대한 설명을 살짝 하면, 세퍼드는 네이비씰 출신이면서 MIT에서 석사학위를 딴 엔지니어로, 당시 52세였다. 우주왕복선과 소유즈 우주선을 모두 탑승해봤기에,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올라가 우주왕복선을 조종해 돌아와야 하는 임무의 캡틴 자격으로 제격이었다.

 

 

윌리엄 세퍼드, ISS에서, 2001년 2월 1일

 

 

   크리칼레브는 세퍼드에 비하면 평범한(?) 엔지니어였지만, 러시아 우주 계획에 많이 참여했었다.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인 샬루트 7호 계획에도 참여했고, 우주정거장 '미르'에는 직접 가보기도 했다. ISS에는 후에 다시 또 오게 되었다고. 기첸코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는데, 러시아의 '하르키우 고등군사파일럿학교'를 졸업했고, 후에 모스크바 주립대학에서 측지 및 지도 제작을 배웠다. 뭔가 군사적 정찰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1987년부터 러시아 우주계획에 참가하기 시작해 우주정거장 미르 등에서 일하기도 했다. 당시나이는 38세로 가장 어렸다.

 

 

유리 기첸코, ISS에서, 2000년 12월 1일

 

 

   그들은 11월 2일에 건설중인 ISS에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도착해 거의 5개월을 보내게 된다. 그 동안 그들은 일단 ISS의 생명유지시스템을 작동시켰고, 다양한 과학실험과 지구 촬영을 진행했으며, 두번의 러시아의 무인화물선과 우주왕복선 엔더버호, 아틀란티스호와 도킹하여 대형 태양전지판의 설치를 돕고 자잘한 장치들을 설치했고, 우울증을 막기위해 우주왕복선으로 옮겨가 우주왕복선 승무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NASA에서는 특히 장기간 우주체류에 따른 우울증을 막고자, 더 많은 시간동안 가족들과의 화상통화나 영화 감상등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하는데, 이는 심리학적으로 고립된 기간이 3개월을 넘어가면서 우울증이 극심하게 커지는 '3개월 장벽'(three-month wall)을 막기위해서 였다고 한다.

 

 

Expedition 1의 체류기간 동안 대형 태양전지판이 장착된 ISS, 2000년 12월 9일

 

 

   그리고 2001년 3월 8일, 두번째 우주인들(Expedition 2)이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 호를 타고 도착하게 되고, 그들이 타고온 우주왕복선을 타고 3월 21일에 140.98일만에 Expedition 1의 승무원들은 지구로 내려가게 된다. 그들이 처음 타고 왔던 소유즈 우주선은 도킹상태로 내버려 두었다. 비상시 ISS에서 탈출하는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2014년 현재, Expedition 40까지 ISS 방문과 귀환을 마쳤고, Expedition 41의 우주인들이 ISS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또 Expedition 1때는 3명만 ISS에서 머물렀지만, 이후 인원을 조금씩 늘려 현재 6명이 머물고 있다고 한다. 3명씩 교대되는 형태로 운영중이라고... ISS는 2020년까지 운영될 예정이라는데, 여러분들도 한번 갈 수 있게 도전해 보시길!? 아무튼 최근에는 ISS로 우주3D프린터까지 올라갔던데, ISS를 통해 많은 과학적 성취들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11월 2일과 3일의 역사

 

- fin -

  

 

  

  

  

 

 

오타수정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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