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1월 4일과 5일의 역사 - 이츠하크라빈, 일본유적날조폭로, 일반상대성이론

스마일루 2012. 11. 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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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미국 백악관 빌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만난

이츠하크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당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

 

그리고 1994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하는 '오슬로 협정'이 맺어진다.

그러나 1995년, 이스라엘 본토 출신 최초 총리인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유태인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평화를 위한 길은 말그대로 멀고도 험하다.

특히 민족주의를 등에 업은 극우세력의 공격을 이겨내야만 한다.

허나 평화라는 것은, 수 세대의 노력, 즉 '시간'만으로 분명 성취 가능한 일이다.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지구상에서 화해를 이루고 또는 이룰 뻔했던 국가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평화,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외적문제보단 오히려 내부에서의 평화반대가 항상 큰 문제가 된다.

그것이 평화로 가는 길은 가장 힘들게 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고 말이다.

그래도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은 그나마 이 정도 일지도 모르겠다.

 

 

 

 

 

 

 

 

 

- 순 서 -

 

96년전, 1916년 11월 5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독일의 과학학술지인 '물리학 연보'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

 

17년전, 1995년 11월 4일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유태인 청년 이갈 아미르에 의해 암살되다

 

12년전, 2000년 11월 5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 '일본 구석기 유적 날조' 보도

 

 

 

 

 

 

 

 

 

 

11월 4일과 5일의 역사

Wikipedia

 

11월 4일

1847년 - 독일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 사망.

1869년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저명한 과학 저널인 《네이처》가 창간하다.

1918년 - 4만 명의 독일 해군 대양함대 소속 수병들이 항구를 점령하면서 11월 혁명이 시작되다.

1926년 - 조선어연구회가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 음력 9월의 여덟번째 회갑을 기념하여 제1회 가갸날 행사를 가지다.

1950년 - 한국 전쟁: 중국 공산당 및 민주제당파, <항미원조연합선언> 발표. 이미 중국군은 한반도로 진주한 상태였다.

1952년 - 미국 국가안보국이 설립되다.

1956년 - 헝가리 봉기. 소련군,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점령. 카다르정권 수립

1983년 - 미얀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단절. 아웅산 묘소 사건 때문에 취한 조치였다.

1985년 - 한국방송공사에서 가요무대가 방송을 시작하였다.

1995년 - 이스라엘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유태인 청년 이갈 아미르에 의해 암살되다.

2007년 -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어있던 한국 선박 마부노호가 풀려났다. 

 

11월 5일: 영국가이 포크스 나이트, 스웨덴성자의 날

1605년 - 가이포크스 국회의사당 폭파 실패

1688년 - 영국 명예혁명

1738년 -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 탄생.

1757년 - 프로이센프리드리히 대왕의 군대가 로스바흐 전투에서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의 연합군을 쳐부수다.

1838년 -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으로부터 온두라스가 분리되다.

1872년 - 수전 B. 앤서니(사진)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하다. 그는 뒷날 이 때문에 100 달러 벌금을 물게 된다.

1879년 -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 사망.

1913년 - 배우 비비안 리 탄생.

1914년 - 제1차 세계 대전: 영국-프랑스, 對 오스만 제국 선전포고. 키프러스 합병 선언

1916년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과학학술지인 '물리학 연보'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 ""우주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인 리만기하학에 의해서만 분석가능한 휜 공간"" 라고 주장

1937년 - 조선중앙일보가 자진 휴간 끝에 폐간되다.

1940년 -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최초로 대통령에 3선

1970년 - 춘천호(의암댐)서 나룻배 전복. 승객 59명 중 31명 익사

1986년 - 김대중, 직선제를 수락한다면 대권 출마를 포기하겠다고 선언

1996년 - 베나지르 부토파키스탄 총리직에서 물러나다.

1998년 - 조치훈 명인, 세계최연소-세계최단기로 1000승 달성

2000년 - 일본 마이니치 신문, '일본 구석기 유적 날조' 보도 

 

 

 

 

 

 

#. 1916년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과학학술지인 '물리학 연보'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 

 

   아인슈타인하면 상대성이론을 떠올리고, 상대성이론하면 'E=mc^2' 이나 '빨리 움직이면 시간은 느리게 간다' 라는 것을 보통 떠올린다. 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이야 말로 아인슈타인의 업적중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보다보면 참 사람이 이렇게 까지 뛰어날 수 있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길게 말하면 재미없으니 아주 간단하게만 이야기해보자.

 

   보통 '빨리 움직이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라는 식으로 알려져있는 상대성이론은, 정확히는 '특수'상대성이론이다. 지구 위에 나 처럼, 우주공간을 움직이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정지된 것 같이 느끼는, 그러한 '특수한' 상황에서만 성립하는 이론이 바로 특수상대성이론인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이를 확장,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등, 가속도가 존재하는 곳에서도 성립될 수 있는 이론이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또 한번 영특한 능력을 발휘 하는데, '가속도'와 '중력'이 같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 그것이다. 질량과 에너지가 같다(E=mc^2), 가속도와 중력이 같다... '등가원리'를 밝혀내는게 아인슈타인의 특기인지도?

 

   이후 아인슈타인은 그 생각을 발전시켜, 중력장 하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고 중력은 시공간의 휨으로 설명된다는 주장을 담은 일반상대성이론을 1916년 11월 5일 발표한다. 이후 태양근처에서 빛이 휘는 현상(빛이 중력에 끌리는게 아니라, 중력에 휜 시공간을 타고 가다보니 빛 스스로는 똑바로 가는데 결과적으로 휘는 결과를 낳는다)을 비롯해, 빛이 중력에 의해 굴절되며 마치 렌즈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중력렌즈 현상등이 발견되어 일반상대성이론이 입증되게 되었고, 이후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예언된 '블랙홀'과 유사한 현상이 발견되고, 인공위성까지 발사되는 실험등을 통과하는등, 사실상 이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는 큰 논쟁의 여지가 남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은, 우리와 동떨어져 보이는 기초과학의 발전은, 결국에는 우리 생활의 향상을 이끈다. 아인슈타인이 밝혀낸 광전효과가 디지털 카메라에 쓰이고, 양자역학이 반도체에 쓰이는 것을 보면, 일반상대성이론도 언제 어떻게 우리 생활과 문명의 진보를 위해 쓰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GPS 위성등에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더 놀라운 뭔가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 1995년 - 이스라엘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유태인 청년 이갈 아미르에 의해 암살되다.

 

   유태인의 국가 이스라엘... 왜 이스라엘의 총리가 유태인 청년에게 암살당한 것일까?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영국령이었던 팔레스타인의 일부인 예루살렘에서 1922년 태어난 이츠하크 라빈은, 20살이 되던 1941년에 유대인 방위 특공대인 '팔마츠'에 2차세계대전 중 입대하여, 독일 나치가 세운 프랑스 괴뢰정부인 비시프랑스와 벌어진 시리아, 리비아에서의 전투에 참여한다. 7년만에 팔마츠의 부사령관이 된 이츠하크 라빈은 이스라엘 독립전쟁에도 참가해 이집트와 싸웠으며,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이스라엘 육군을 지휘하던 도중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이스라엘에서 대규모 테러활동을 벌이자 촉발된 6일전쟁에서, 육군을 통한 적 항공기 기습공격 작전을 제안, 그를 지휘하는데 성공하였고, 시나이 반도등을 점령하는 이스라엘의 완벽한 승리에 큰 기여를 한다. 이후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주미 이스라엘 대사를 지내고 1973년 노동당을 통해 국회로 진출한 이츠하크 라빈은, 1974년 이스라엘 본토 태생 최초의 총리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총리가 된 이츠하크 라빈은 자신이 육군을 지휘할때 점령한 시나이 반도에서의 이스라엘군 철수를 주장했고, 전쟁을 벌인 이집트와 협정을 맺어, 시나이 반도를 반환하는 대신 이스라엘 상품의 수에즈 운하 통과를 허가 받는다. 그리고 1977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가, 1984년부터 1990년까지 국방부 장관을 지낸뒤 1992년 다시 총리가 되는데, 이후 그는 PLO와 협상을 벌여 가자 지구와 요단강 서안지역의 자치를 팔레스타인에 맡기고 이스라엘이 철수한다는것을 약속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팔레스타인 자치안, '오슬로 협정'을 1994년 10월 합의하여 중동 평화에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PLO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며, 이후에도 중동 평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요르단과의 분쟁도 평화협정으로 종식시키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눈치챌 수 있다시피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리쿠드당의 네타냐후 당수를 비롯한 야권과 많은 극우파들이 이츠하크 라빈을 '배신자'라며 거세게 비난했는데, 오슬로 협정이 맺어진 뒤 1년뒤인 1995년 11월 4일, 중동평화회담 지지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타려던 순간, 유대 극우파 '카흐네차이' 소속 청년 '이갈 아미르'의 총탄 3발을 맞고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1996년 총선에서 리쿠드당의 네타냐후 당수가 총리에 당선하면서 이스라엘은 다시 극우파가 집권하게 되었고, 중동평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언제나 힘든것 같다. 그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인정 받는 것은 늘 역사가 흐른 뒤이고, 그 시대에 그들과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고통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의 이스라엘이 물론 아직도 불안정하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라도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이츠하크 라빈이 있지 않을까? 평화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며 힘든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건, 자칫 동물의 세계가 될 수 있는 이 세상에 정말 다행인 일인 듯 하다.

 

 

 

 

 

 

 

 

 

 

 

 

#. 2000년 - 일본 마이니치 신문, '일본 구석기 유적 날조' 보도

 

   우경화된 일본에서 좌파신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마이니치 신문... (위키에서 마이니치 신문을 확인해 보시길) 그 마이니치 신문이 '신의 손'이라고 불리며 교과서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의 고고학 유물 조작을 2000년 11월 5일 폭로한다. MBC PD수첩의 황우석 줄기세포 조작 폭로사건이 떠오르기도 하고?

 

   1950년 태어난 후지무라 신이치는 197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하면서 유물을 탐사하러 다니기 시작한다. 화학회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별안간 1981년 미야기 현 사사라기 유적지에서 4만년전 유물을 발견한다. 3만년 이전의 유물이 일본에서 발견된적이 없었기에 일본 고고학계는 크게 흥분했고, 이후에는 일본 최초의 인류가 60만년전에 출현했다는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유물을 여럿 발견했다. '신의 손'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그는 도호쿠 구석기 문화연구소의 이사장 직책까지 맡기에 이르며, 그의 발견으로 일본의 교과서는 뒤바뀌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2000년, 한 제보자가 마이니치 신문에 이메일로 후지무라 신이치의 사기행각을 제보하는 일이 벌어진다. 마이니치 신문에서는 조작과정을 정확히 포착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 보다는 동영상을 촬영하기로 하고 먼 곳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복 1개월만인 2000년 9월 5일, 미야기 현 가미타카모리 유적지에서 자신이 만든 유물을 땅에 파묻는 장면이 포착되고, 이후 그가 그 장소에서 자랑스럽게 유물을 발굴하듯 꺼내는 장면까지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11월 4일, 마이니치 신문은 조작장면을 포착한 것을 숨긴채 호텔에서 후지무라 신이치의 인터뷰 일정을 잡는다. 40분간 자기 자랑을 하던 후지무라 신이치는, 자리에 있던 취재팀장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포착한 조작 장면 영상을 틀어주었다. 10분동안이나 아무말도 없었던 후지무라 신이치는 결국 조작을 인정했다.

 

   이후 정밀조사가 벌어져 다수의 유물이 조작으로 판명되었고, 고고학계에서 추방되었다. 그의 책을 출간한 출판업체, 교과서업체들도 책들을 회수하느라 큰 타격을 입었다. 애초에 그가 찾아낸 30km 거리의 유물조각이 정확히 맞는다던지 의심거리가 많았지만, 일본인들은 그에 열광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우경화되어가던 일본에 근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독도 문제로 우리도 많이 들어 알고 있는 대표적 극우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당시 후지무라 신이치가 발굴 사실을 교과서 첫머리에 내세우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연대가 앞선 문명이 일본에 존재했다"라고 까지 썼다고하니, 이 정도면 조작이 아니라 병에 걸린게 아닌가 싶다. 일본은 언제쯤 정신을 차리게 될까? 진지하게 그 시기와 그를 유발할 사건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11월 4일과 5일의 역사

Wikipedia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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