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9월 30일과 10월 1일의 역사 - NASA발족, 일제의 조선토지조사사업 시작,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스마일루 2012. 9. 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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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Weekly Voice 개편 구상에 대한 많은 의견 감사합니다.
보완할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됩니다만, 일단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이제 주말마다 연재되는 Today in history, Weekly Voice와
수시로 연재되는 Smileru's Voice로 운영되게 됩니다.

 

이번주부터 10월 한달간 시범운영기간을 거칠 예정이니
부족한 부분에 대한 많은 지적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1년전 Weekly Voice 리뷰'는 Weekly Voice에서 간단히 하게 될 듯 하니 참고해주세요.

 

 

 

 

 

 

 

미국의 국가 항공 자문 위원회 NACA가 미항공우주국 NASA로 재 탄생하기 위해 명패를 떼어내는 모습.

 

미국은 그들이 좋아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하기도 했지만

그의 배경에는 영악하게 고려된 국익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인데,

그나마 '비군사적 국가기관' NASA의 설립은, 미국이 국익을 위해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인류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멋진 일이라고 평할 수 있을 듯 하다.

 

 

 

 

 

 

 

- 순 서 -

 

117년전, 1895년 9월 30일

소비에트 연방의 군인, 정치인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탄생.

 

102년전, 1910년 9월 30일

일본, 조선 토지 조사 사업 착수

 

54년전, 1958년 10월 1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 발족

 

 

 

 

 

 

 

 

 

 

 

9월 30일과 10월 1일의 역사

Wikipedia

 

9월 30일: 보츠와나(1966년)의 독립기념일

1791년 - 오페라 마술 피리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되다

1811년 - 프로이센 왕비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 탄생.

1895년 - 소비에트 연방의 군인, 정치인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탄생.

1910년 - 일본, 조선 토지 조사 사업 착수

1946년 - 제2차 세계 대전 전범 처벌을 위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12명의 나치 지도자에게 사형이 선고되다.

1947년 - 예멘, 파키스탄 국제연합 가입

1948년 - 대한민국 국회, 한글전용법안 가결

1949년 - 중국 공산당, 주석에 마오쩌둥(毛澤東)ㆍ수상에 저우언라이(周恩來)선출

1955년 - 미국의 배우 제임스 딘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다.

1961년 - 유럽 경제 협력 기구(OEEC)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로 확대·발족하다.

1963년 - 이준(李儁) 유해, 56년 만에 네덜란드서 환국해 서울 수유리에 안장

1966년 - 보츠와나 공화국(당시 베추아날란드 보호국)이 영국에게서 독립하다.

1980년 - 제록스인텔, 디지털 이퀴브먼트 등과 함께 개발한 이더넷 표준이 공개되다.

1981년 - 독일 바덴바덴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84차 총회,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서울특별시로 선정

1990년 - 대한민국 - 소비에트 연방 수교, 85년 만에 국교 정상화

1991년 - 분당신도시 시범단지 첫 입주

1999년 - 일본 도쿄 인근 핵연료 재처리 공장에서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하여 작업자와 인근 주민이 피폭당하다.

2002년 -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2단계 증축공사 개시

 

10월 1일: 대한민국국군의 날, 중화인민공화국국경절(1949년), 나이지리아(1960년), 키프로스(1960년), 투발루(1978년), 팔라우(1994년)의 독립기념일

1791년 - 프랑스 혁명: 입법의회가 소집되다.

1903년 - 제1회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보스턴서 개막

1926년 -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단성사에서 개봉하다.

1946년 - 미군정 지역에서 대구 10·1 사건 발생.

1946년 - 김일성종합대학북조선 평양에서 개교하다.

1950년 - 한국 전쟁: 대한민국 육군 3 사단 26연대, 강원도 양양군서 한국 전쟁 발발후 최초로 38선 넘어 북진

1953년 - 한미 상호 방위 조약, 미국 워싱턴 D.C.서 조인

1958년 - 미국 항공우주국(NASA) 발족.

1964년 -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 개통

1969년 - 영국프랑스가 공동개발한 콩코드가 처음으로 초음속 비행에 성공하다.

1970년 - 브라질축구 영웅 펠레가 은퇴 경기를 갖다.

1982년 - 헬무트 콜서독 총리로 취임하다.

1997년 - 대한민국, 개인휴대통신(PCS) 상용서비스 개시

1997년 -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

 

 

 

   세개만 쓰기에는 좀 아쉬운데, 뭔가 쓸만한게 없는것 같다?

  

   #. 1895년 - 소비에트 연방의 군인, 정치인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탄생.

 

   1895년 9월 30일, 러시아 정교 사제의 아들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가 태어난다. 이후 농업 전문가가 되고자 했지만 그의 나이가 20살이 되었던 1914년에 군대에 발을 들이게 되고, 1917년에는 대위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바로 1917년에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시작되고 러시아가 내전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이 때부터 사회주의 쪽의 '적군(붉은 군대)'에 가담하였고, 기회를 노린 폴란드가 옛 왕국 영토를 찾기위해 공격해오는 소련-폴란드 전쟁에도 참가하여 1930년에는 여단장이 되었고, 1937년 스탈린의 대숙청 사건 이후 참모본부의 간부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때는 인류역사상 단일전투로는 사상최대였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가하게 되며, '게오르기 주코프' 소련 육군 최고 사령관 대리와 함께 스탈린그라드를 탈환하기 위한 '천왕성 작전'을 계획하고, 그로인해 독일군을 괴멸시키는데 성공하기에 이르며 큰 전과를 올린다.

 

 

   이후 그는 최고 계급인 '원수'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후 소련군의 반격을 지휘하며 2차세계대전을 마치게 되며, 1945년에는 유럽쪽에서 아시아쪽으로 이동해 '극동최고사령관'에 임명되어 만주에서 부터 한반도 북부까지 이동하며 일본군을 몰아낸다. 그리고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하게 되자 소련은 미국과 한반도를 나눠 가지려는 구상을 하게 되는데, 스탈린의 요청에 의해 그는 한반도 북부를 통치할 조선인 지도자를 추천하게 되니, 그가 바로 김일성이었다. 

 

 

 

 

   #. 1910년 - 일본, 조선 토지 조사 사업 착수

 

   1910년 8월 22일, 굴욕적인 한일 강제 병합이 시행된 뒤, 9월 30일, 일제의 조선 토지 조사 사업이 시작된다. 참 빠르기도 하다. 사실 이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해인 1905년부터 준비되어 왔었다. 당시 조선의 토지는 사실상 국유화 상태였다. 하지만 경작권은 농민이 가지고 있었고, 세금을 거둘 권리인 수조권은 지배계급이나 관리가 가지고 있었다. 이런 소유상태가 애매한 토지의 소유권자를 명백하게 하고자, 즉 자본주의화 하고자 일본이 실시하게 된 것이 토지 조사 사업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근대화, 자본주의화가 잘 되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당연히 그럴 일본이 아니었다. 일단 일본은 토지 소유자에게 자신이 해당 토지를 소유하고 있음을 신고하게 했는데, 앞서 말했던것 처럼 조선의 토지는 사실상 국유화 상태였고 따라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물론 그 어떤 계층, 직급의 조선인도 토지 소유 신고를 한다는 것이 애매한 상황이었다. 조선에 이미 자본주의가 정착했다는 가정하에서 조선을 자본주의화 시키겠다며 벌어진 계획이라고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 알 수가 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토지는 '주인 없는 토지'가 되었다. 일본은 토지를 신고하면 과중한 세금을 물게 된다는 유언비어도 유포하기도 했으니 뻔한 결과였다. 그 결과 조선인들이 쿵짝쿵짝 잘 경작하고 있던 조선 농지와 임야의 40%가 조선총독부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들 토지는 일본 기업들과 일본인 이민자들에게 싼값으로, 또는 아예 무상으로 지급되었다.

 

   결국 엄청난 수의 조선 농민들이 일본기업과 일본인 이민자 대지주 아래에서 소작농으로 연명해야 했는데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농업을 주업으로 하던 많은 조선인들은 살길을 잃게 되었고, 그들은 역시 계획대로 아주 싼 값에 도시나 광산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고용되었다. 쉽게 조선인들이 자력으로 살 기반을 빼앗아 버린 다음, 부려먹었다는 소리다. 이로인해 많은 조선인들의 비극이 시작되었으며, 일부는 만주쪽으로 건너가게 되면서 오늘날 '조선족'이라 부르는 한국계 중국인들의 급증이 시작되게 된다. 일제에 의한 근대화? 수탈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 1958년 - 미국 항공우주국(NASA) 발족.

 

   1958년 7월 29일 설립된 미항공우주국 NASA는, 1958년 10월 1일 공식으로 발족되어 업무를 개시한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에 성공한지 1년만이었다. 물론 미국이 이때부터 갑자기 로켓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여러 기관들이 존재했으나 대부분 군사기관이고 행정부처 수준이었다. 하지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 관련된 기관들을 통합해 우주 관련 연구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기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에 따라 1958년 1월 14일, 국가 항공 자문 위원회(NACA)의 책임자 '휴 드라이덴'은 '우주 기술을 위한 국가적 조사 계획'을 발표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의 위신 및 군사적 필요성의 양면에서 생각하면, 이번 도전(스푸트니크)에 휩쓸린 우주 정복을 위한 조사 및 개발의 계획을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긴급하고 중요한 과제이다. (중략) 그 때문에, 비군사적인 국가 기관에 의해서 과학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는 제안이 이루어졌다. (중략) NACA는 우주 개발 기술의 주도권을 취해 그 성과를 급속히 확대해 연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중략'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내가 확인하지 못했지만, 미소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속에서 '군사적 이유'로 동기가 부여된 우주개발을, '비군사적 국가기관'에 의해 풀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물론 NACA라는 기관을 확장시키기 위한 NACA의 논리 비약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미국의 우주기술을 소련을 압도하게 성장시켰음은 물론, 군사적 분야를 넘어 인류의 과학적 지식을 어마어마하게 늘려주게 된 '신의 한 수' 였다.

 

   그렇게 NASA가 발족하게 되고, 이 때부터 본격적인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시작된다. 이후 미국은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유리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궤도를 1시간 48분간 도는데 성공하면서 스푸트니크 1호 이후 다시한번 소련에게 한방을 먹게 되지만, 한달 뒤인 5월 5일, 미국도 '앨런 셰퍼드'를 우주에 '내 던져'(우주선을 탄도비행 시킴) 15분간 비행하게 하고, 1962년 2월 20일에 '존 글렌'을 2시간 동안 비행하는데 성공하면서 소련과의 격차를 1년 정도로 줄인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NASA발족 11년 뒤인 1969년 7월 20일, 미국은 달에 인간을 착륙시키면서 소련을 넘어서게 된다. 잘 나가던 소련은 왜 밀리게 된걸까? 그 이유는 소련과 달리 앞서 말한 '비군사적 국가기관'에 의해 수행된 우주 연구에 대한 접근 방식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소련은달까지 갈 수 있는 로켓 개발에 실패했지만, 미국은 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넘어온 '폰 브라운' 박사와 같은 과학자들이 그를 성공시켰다는 것에 큰 이유가 있다. '비군사적 국가기관', 독일에서 '자유를 찾아 넘어온 독일 과학자'들... 그 결과 NASA가 승리하였으니, 이는 자유주의의 미국이 사회주의의 소련을 이기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자 작은 실험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9월 30일과 10월 1일의 역사

Wikipedia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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